꾸짖음과 응징(膺懲)

중국에 첫발을 내 디딘 곳은 산동성이었다. 어디든 처녀방문지는(그곳이 국내일지라도) 문화나 관습이 다른 관계로 약간의 불안감(?) 또는 경이로운 것들이 많다. 처음 며칠 간 새벽잠을 깨우는 요란한 굉음이 있었다. 다름 아닌 ‘헬기’가 비상하는 굉음이었다. “이상도 하지? 근처에 비행자이 없는데…(하긴 헬기야 비행장이 꼭 있어야 하는 아니지만.)”하며 깨어나, 빨갱이 국가라 군사훈련을 세게 하는구나…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통역 아이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더니 그야말로 앙천대소를 하더니만“그거이 토라지입네다”하는 것이었다. 타랍기(拖拉機: 토라지)는 우리의 경운기 같은 것을 소형트럭으로 개조해 만든 것으로 짐은 많고 힘이 부칠수록 헬기소리보다 더 요란한 굉음을 낸다.

 

아무튼 중국이라는 공산국가엘 처음 가보니 신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주하는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시골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털털거리던 (현대 엑셀)택시가 운행을 멈추는 것이었다.(당시 중국엔 현대 엑셀이나 대우의 르망이 폐차수준에 있었음에도 운행을 하며‘한궈더(made in korea)’라고 기본요금을 더 받았었다.)탈 때부터 워낙 낡아 불안했는데 결국… 그런데 알고 보니 차가 퍼진 게 아니었다. 도로를 가득 메운 돼지 떼 때문이었다. 세상에 마. 소. 양. 염소 따위의 짐승을 방목하는 것은 보아왔지만 돼지를 방목하는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던 것이다.(그 후 이런저런 여행지에서 돼지를 방목하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한동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돼지 떼를 따라가며 신기해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도 그러하지만 개 중에 꼭 튀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일행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고 역주행 하는 놈이 가끔씩 있었다. 목동(?)이 처음엔 길 다란 회초리로 살살 달래며 U턴을 독려하지만 말을 안 듣는다. 그러면 그 목동은 태도가 일변(一變)하며 호되게 등짝을 후려갈기면 그때서야 통증으로 인한 괴성을 지르고 되돌아가 일행과 합류하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개를 품에 안고 빨고 하는 식으로 지극히 사랑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개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는 경우가 꽤 있다. 보통은 그러려니 하지만 심신이 아주 피로한 가운데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면 기분자체가 찜찜할 뿐 아니라 머리까지 아파오는 경우도 있다. 어떤 땐 비몽사몽가운데 일어나 방문을 열고‘콩이! 콩이! 조용해!’라며 사람 타이르듯 타이르면 멈춘다. 어느 날인가 멧돼지 아니면 고라니나 노루가 내려왔는지 천등산이 무너질 정도로 짖기에 역시 종전대로 조용히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찌나 성질이 나는지 빤쓰(한 밤중이니 보는 사람 없음)바람에 냅다 달려가 손에 잡히는 대로 안 죽을 만큼 패 주었던 것이다.

 

일본과의 전쟁은 그리고 그 성과는 어찌 됐는지,…그것 보다는 요즘 솔직히 ‘조국’으로 인해 신문 볼거리도 많고 재미(?)난 기사가 많아 하루하루가 즐겁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재미가 이런 건 줄 알았다면, 나도 쓸 만한 교수 한 놈 만나 한 이틀 교습 받고 논문 정도는 썼을 텐데…까이꺼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책이 아닌 신문 읽고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한데….

 

조국 “더 꾸짖어 달라…딸 부정입학 의혹은 가짜뉴스”

출처 : http://news.chosun.com//html/2019/08/21/2019082100710.html

 

 

‘꾸짖다’, 아랫사람(개인이나 집단)의 잘못한 일을 지적하면서 나무라다가 사전적 의미다. 의미상 잘못한 일이라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일상의 잘못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잘못한 일이 법에 배치되거나 저촉된 일이라면 꾸짖음이나 나무람으로 끝날 일이 아니고 법에 반한 응징(膺懲)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꾸짖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끼리 통하는 단어이지 사람과 짐승(동물)간에 사용하는 단어는 아닌 것이다. 즉, 근간 밝혀지고 있는 조국의 비리는 인간으로 저지를 비리가 아니다. 그 정도가 정상적인 인성을 타고난 인간의 것은 아니다 라는 의미다. 짐승도 저런 식의 비리는 저지르지 않는다.

 

방목한 돼지 새끼도 회초리 한두 대면 제갈 길을 찾고 무리들에 흡수가 된다. 우리 집 콩이는 살살 타일러도 말을 안 듣기에 몇 대 호되게 얻어맞고 그런 버르장머리를 고쳤다. 꾸짖어서 될 일 같으면 개돼지도 꾸짖어 교화(敎化)를 시킬 수 있다. 그러나 조국의 그것은 꾸짖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교화 될 수 있는 단계의 인간이 있지만 조국은 교화로 끝 낼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조국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꾸짖음이 아니라 교도(矯導)가 시급한 것이다. 따라서 헌법을 무시하고 법을 저촉(抵觸)한 인간이 갈 곳은 바로 교도소(矯導所)인 것이다. 응징(膺懲: 깨우쳐 뉘우치도록 징계함) 받아야 할 놈이 죄인을 응징하는 장관 후보에 올랐다니 해 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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