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을 받고 1년 남짓 살았던가? 갑자기 위암판정을 받아 수술을 했고 그 후로 심경의 변화가 생겨 마당 있는 집을 찾아 이사를 한 게 15년 전이다. 북한산을 중심으로 동네 명칭만 다를 뿐 양쪽 집 사이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두 집 다 마음만 먹으면 요란한 등산차림이 아니더라도 뒷산 산보하듯 할 수 있는 입지적 조건이 좋은 곳이다.
세입자가 세 번 바뀌고 네 번째 세입자 분은 누구나 알만한 고명한 교수님이다. 이 양반이 나처럼 위암수술을 받았는데 치유를 목적으로 북한산 등산을 자주 간다는 것이다.(사실 내가 그랬다. 위암수술 후 산골로 가기 전 일주일에 3~5회 북한산을 올랐고 효과를 많이 보았다.)그러기 위해 잠시 우리 집을 거처로 삼겠다는 것이다. 보통의 양식대로 2년 후면 또 다른 세입자가 나타날 것이고… 그런데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기 반 년 이전부터 계속 살고 싶으니 계약연장을 해 달라는 것이다. 나나 마누라는 투기라는 걸 모른다. 남들은 전세금 올려 또 다른 부동산 취득한다지만 우리는 전세반환도 빚이라 생각하고 올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무튼 그렇게 8년을 살던 양반이 올 초 갑자기 이사를 가야겠다며 집을 내 놓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세입자를 바꾸는 것 보다 너무 오랫동안 한 양반에게만 집을 맡겼던(?)터라 이젠 집안 구조도 가물가물 해 오기도 하고 또 그 상태도 한 번 점검(?)해 보고 싶었기에‘그리 하십시오’라고 했는데, 부동산에 의뢰하면 2~3일도 안 걸려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났는데 문재인 시대의 부동산 정책 탓인지 모르지만 열 달이 가까워도 방이 안 나는 것이었다. 상대와 계약일자는 부득부득 다가오는데 집은 안 나가고 살고 있는 집을 저당 잡히고 대출을 해서라도 전세금반환을 하려니 한도 금액이 넘는다며 대출이 안 된단다. 세입자인 교수님을 불편하게 해 드리거나 실수를 할 수는 없고 마지막 판단은 제2금융에 저당을 잡히는 수밖에….
한 달 이자가 웬만한 월급이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 보따리장사로 조금 남겨둔 통장의 돈도 줄어들고 수입원인 마누라 전방(廛房)도 문가 정권 이후로 10년 넘은 직원 둘을 내 보낸 처지니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궁여지책(窮餘之策), 궁하면 통하는 법. 15년씩이나 세를 주었던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지난 7월 하순에 이사를 했다.) 그동안 살던 집을(2층 구조) 난방, 수도, 화장실 천정, 바닥 등, 아무튼 토대만 그냥 두고 거금을 들여 수리를 시작했다. 나름 일종의 개혁(改革)을 시도한 것이다. 지금 두 달 째 확 뜯어 고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업자에게 일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은 이렇게 저 부분은 저렇게, 주인 된 입장에서 내 취향대로 고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여 요즘은 제천에 머무는 시간보다 서울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 이제 조만간 개혁이 끝나면 그에 걸 맞는 방법으로 1.2층을 따로따로 사글세로 돌리고 그 보증금으로 제2금융의 대출금을 상환하면 개혁의 목적을 이루고 해피 모드로 돌아설 것이다. 이와 같이 개혁은 주인(국민)의 의도대로 되어야 해피 해 지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깔끔하고 토속적인 보리밥 식당이 있다. 상경을 하면 가까이 사는 아이들과 아니면 피곤해 하는 마누라를 꼬드겨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더하여 부침개나 황태구이 하나 더 시켜 막걸리 한 병 마시는 게 내 취향이다. 이곳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은 북한산 등산객(우리 집 앞으로 북한산 둘레길이 지난다.)들이다. 하산 길에 나처럼 보리밥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담소를 나누는 그런 곳. 그날도 역시 보리밥에 황태구이와 막걸리를 시켜 주안상(?)마주보고 마누라 한 잔 따라주고 권(勸)커니 작(酌)커니 하고 식사를 거의 마쳤는데, 솔직히 알딸딸한 눈으로 우리가 차지한 테이블 저쪽 너머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의 사나이들 넷이 자리를 차지하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식탁 위에는 막걸리 빈병 2개 그리고 식사는 끝난 것 같은….)누구더라…??? 취했다기보다는 그런 유명인사가 이런 곳에 올 리가 없다는 나의 주관적 판단이 그랬던 모양이다.
누구지?? 아! 그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했던‘김병준’교수다.(당장 마땅한 직이 없으니 그냥 이렇게 호칭 한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한 사람은 현역 의원이다.(이름을 알지만 누구라고 않겠다. 괜히 어울려 다니며 파벌 조성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으니…)어!? 저 양반들이 이런 곳엘 왜 왔지? 그리고 현역의원과 미상의 두 사람을 대동하고…? 그때야 가만히 살펴보니 등산복 차림이다.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출출한 나머지 그 식당에 들린 게 틀림없다.
순간 슬그머니 주체치 못할 감정이 인다. 중요한 직은 없어도 오늘의 자유한국당을 구성(構成)한 인물 아니던가. ‘아줌마!(워낙 오래전부터 단골이라 종업원들과 친한 편이다.) 여기 막러리 한 병 더!’ 잠시 후 배달된 막걸리를 잘 흔들어 그쪽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대뜸‘네 분께 막걸리 한 잔씩 따러드리러 왔습니다.’라고 고하려 하는데, 내가 그쪽 테이블로 다가가는 모습을 발견한 김병준 교수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자 나머지 세 사람도 나를 처다 보는가 할 시간도 없이 역시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저는 이 동네에 사는 민초입니다. 나라가 나라 같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야당이 야당 같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정권교체를 해야 합니다. 힘을 내셔야 합니다.’일방적으로 내 얘기만 하고 막걸리 한 잔 씩을 치고 물러났던 것이다. 아마도 많이 당황들 했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한마디 할 시간이나 틈도 주지 않고 내 말만 했으니….
카운터에서 그날의 식비를 내가 계산하고 싶었으나 김영란 법(금액이 미달하더라도)인지 뭔지 또는 그곳이라고 그런 광경을 삐딱하게 보는 눈이 없을까 그리고 침소봉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싸구려 보리밥 한 끼를 대접 못하고 돌아선 게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내가 결코 대단치 않은 이 얘기를 하는 것은, 늙은 촌로(나는 개량한복 입기를 좋아함.)가 허름한 옷차림으로 다가올 때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목적이나 의도를 알고 천천히 일어나기도 또 그 때서야 빈 잔을 내밀고 술 따라지기를 기다릴 텐데 작고 가냘픈 촌로 하나 다가서는 모습을 보고‘발딱’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고 나는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민심(民心), 그들은 민심을 두려워 한 것이지 자신들 보다 늙은 촌로의 나이를 두려워 한 게 아닌 것이다. 정치가라면 지도자라면 민심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문재인과 그 패거리들이 민심을 두려워 않는, 저 오만방자(敖慢放恣)함이 언젠가 민심으로부터 치도곤(治盜棍)을 맞을 날이 점점 가까워 오기에 해 보는 소리다.
데레사
2019년 10월 2일 at 10:03 오전
非理法權天.
아닌것은 이치에 지고 이치는 법에 지고 법은 권력에 지고
권력은 하늘, 즉 민심에 진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은 요즘입니다.
요즘같으면 정의가 이기는게 아니라 이기는게 정의라는 느낌이죠.
아무리 그래도 결국은 하늘에,민심에 질거라고 생각합니다.
ss8000
2019년 10월 3일 at 9:05 오전
한비자에 나오는 좋은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집약하면 사필귀정이 되겠지요?
두 놈이 천벌을 받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