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曹操)의 악행(惡行)이 불러온 결과

삼국지를 읽다보면‘여백사(呂伯奢)’라는 인물이 잠시 등장한다. 한말(漢末)성고(成皐:지금의 하남성 영양 범수진)사람으로 조조의 아비 조숭(曹嵩)과는 결의형제를 맺은 둘도 없는 막역지우(莫逆之友)였다. 조조가 역적 동탁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한 후 고향으로 달아나는 도중 중모현 현령 진궁(陳宮)에게 사로잡혔으나 진궁 또한 동탁의 전횡과 역적질에 비분강개(悲憤慷慨)하던 중이라 조조를 방면한 후 함께 달아나다 성고 땅에 이르러 여백사의 집에 투숙하게 되었다.

 

막역지우의 자식인 조조가 쫓기는 몸이 되어 자신의 집을 찾아왔지만, 마침 집에는 손님을 대접할 마땅한 술이 없었다. 여백사는 식솔들에게 적당히 자란 돼지를 한 마리 잡을 것을 명하고 스스로 좋은 술을 구하러 외출한 사이, 돼지를 잡기위해 칼 가는 소리와 식솔들의 주고받는 얘기에 의심을 품은 조조는 여백사의 명에 의하여 식솔들이 자신들을 죽이기 위한 것으로 착각하고 앞뒤 가릴 것 없이 여백사의 식솔을 모조리 죽이고 장원을 빠져나오다 술을 사오는 여백사를 만난다.

 

의아한 여백사가“최고의 명주 마오타이를 사 오느라 시간이 좀 지체 되었네. 어서 들어가세”라고 말했으나 조조와 진궁은 바람처럼 말을 몰아나간다. 한 마장이나 갔을 까? 조조가 갑자기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급히 제동을 건다. 궁금해 진 진궁이“무슨 일이오?”그러나 조조는 두 말없이 말머리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채찍질을 가하여 나귀를 타고 유유히 집을 향해가는 여백사를 따라잡는다. 다시 돌아온 조조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여백사는“잘 생각 하셨네 어서….”뒷말을 이어가기 전 여백사의 모가지는 조조의 칼날에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조조가 여백사노인의 목을 찍어 그가 타고 있던 나귀 발아래로 떨어트리자 이 꼴을 본 진궁이 깜짝 놀라며“죄없는 사람인 줄 알면서 일부러 죽인다는 것은 커다란 불의를 범하는 짓이요”라고 꾸짖자, 조조는 태연히“차라리 나를 보고 천하 사람을 저버리라고 할지언정, 나는 천하 사람이 나를 저버리게 할 수는 없소. 다시 말하면 나를 위하여 남을 죽일지언정, 남이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을 용서 할 수는 없다는 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조의 간사함과 잔혹함이 세상에 들어나는 대목이다. 그 해가 서기190년 단기2523년(고구려 고국천왕6년, 신라 벌휴왕 원년, 백제 초고왕19년)이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서기193년이다. 썰을 이어가기 전 잠시 조조(曹操)의 가계(家系)를 살펴보면, 원래 조조 네는 조가(曺哥)가 아니라 하후(夏候)였었다. 후한서(後漢書)에 조등(曺騰)이라는 인물이 잠시 등장한다. 환관(宦官) 즉 내시였다. 소위 십상시(十常侍)의 난이 일어나기 이전의 환관으로 한나라 마지막 황제 헌제와 영제 그 윗대의 환제(桓帝)를 옹립한 공로로 후(候)라는 작위를 받고 네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며 30년 넘게 권력을 농단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미 밝혔지만 씨 없는 내시로 자식이 없으므로 양자를 들였는데 그가 바로 조조의 아비 조숭(曹嵩)이었다. 즉 돈과 권력에 미쳐 본 성인 하후 성을 버리고 조가 성으로 갈아탄 것이다.

 

어쨌든 그 조숭이 동탁의 난을 피해 산동 낭야(진시황이 불로초 불사약을 구하러 3천 명의 동남동녀를 떠나보냈던 곳)에 피난해 있었는데, 서기193년 조조가 자신의 위치가 웬만큼 안정이 되자 자신이 있는 연주(兗州)고을로 모시고 오게 하는 도중 서주(徐州)라는 곳을 지나게 되자 그곳의 책임자였던 도겸(陶謙)이라는 인물이 오늘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는 조국(曺國)같은 조조의 눈에 잘 들기 위해 부탁도 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부하 장수인 장개(張闓)라는 인물에게 조숭을 호위하여 연주까지 잘 모시라는 명을 내리며 500명의 호위병까지 붙여 주었다. 그러나 조숭을 호위하고 가던 장개는 어느 날, 한 밤 중 호위병들을 선동하여 조숭을 비롯한 처첩 등 전 가족을 모조리 죽이고 억만의 재물을 겁탈한 뒤 회남(淮南)이라는 곳으로 달아나 버린 것이다.

 

오늘의 삼국지 얘기는 이쯤에서 끝내자. 하지만 글 제목에도 있듯 한 인간의 악행(惡行)을 하늘이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 오늘날 조조의 후예 쯤 되는 조국의 악행을 지켜보노라면 조조가 죄 없는 여백사의 목을 친 후 태연히“차라리 나를 보고 천하 사람을 저버리라고 할지언정, 나는 천하 사람이 나를 저버리게 할 수는 없소. 다시 말하면 나를 위하여 남을 죽일지언정, 남이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을 용서 할 수는 없다는 거요”라고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에 문득 생각나는 吳국지 개국지 고사 한 토막 올려 봤다. 그리고 조국이 이 고사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 개과천선(改過遷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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