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이 쉬워 이것저것 하다 실패하거나 제대로 안되면, ‘하다하다 안 되면 농사나 짓지…’라고들 한다. 어쩌면 과거엔 건강한 신체와 노동력이 있고 그것으로 땀 흘리고 각고의 노력을 하면 입에 풀칠은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젠 자연환경도 변하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날씨도, 농약이나 화학비료의 마구잡이 살포로 병충해의 진화(進化)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힘이나 노력만으로는 절대불가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농업은 과학이다.
귀촌(歸村) 5년 차, 전문 농업인으로 귀향한 귀농(歸農)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찌하다보니 꽤 너른 농토를 소유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일부는 무상으로 이웃이 붙이게 하고 그래도 남는 것은 휴한지로 남기면 풀 때문에 어쩔 수없이 아무 거라도 파종이든 모종이든 해야 한다. 그러나 전업(專業)이 아니다 보니 파종이나 모종 이후에 제대로 돌보지 않은 즉 매년 적자가 나고 결국 (투자자)마누라에게 해마다 지청구를 듣곤 했다. 그냥 텃밭이나 가꾸라며…
온몸의 근육과 뼈마디가 쑤시고 아프다. 이런 걸 삭신이 쑤신다고 하든가? 곰처럼 일하는 아내의 입에서도 허리, 팔다리가 아프다며 괴로운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여간 된 게 아닌 모양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든가? 모두가 초보 농사꾼의 무지한 잔꾀에서 시작된 업보(?)다.
작년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면소재지에 있는 어떤 식당으로 마을지인(귀촌을 목적으로 한 어정쩡한 농사꾼들)들과 외식을 하러 갔을 때 식사가 나오기 전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힘 좀 덜 드는 농사가 뭘까?’로 고민들하고 있을 때, 옆 테이블의 어떤 이가‘콩 농사를 지으세요! 콩은 비료나 농약을 덜 주는 작물입니다’라고 권장(?)하는 바람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콩 농사에 돌입했었다.
농자금(農資金) 현황.
흙 돋우기(마사토)10차x65,000=650,000원
배수로 공사(굴삭기)3일x450,000=1,350,000원
밭 평탄작업(트랙터)1,200평x300=360,000원(로타리 작업)
관리기(골 파기, 비닐(멀칭)덮기)아랫집 선미아빠 부부=260,000원(중식 대 2만 포함)
비닐2권(마끼)x46,300=92,600원(비닐 조금 남는 거 선미아빠 줌)
콩3말x35,000=105,000원(5kg남음. 두부 만들어 먹겠다고 함.)
새총2병x9,000=18,000원(콩 심었을 때 새가 먹지 못하게 하는 농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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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2,835,600원(콩 농사를 짓기 위해 순수하게 마누라 주머니에서 나온 농자금)
추수결과
콩 타작경비.
이 반장, 아랫마을 영술 아우 각11만원(중식대 만원 포함)=220,000원
도리깨10,000원X2=20,000원
………………………………………………..
SUBTOTAL:240,000원
콩 소출5가마X210,000(금년시세)=1,050,000원
1,050,000-240,000=810,000(콩 농사수익)
순수농자금=2,835,600원
2,835,600-810,000=2,025,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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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Total:-2,025,600(마니너스 금액)
이상이 금년 영농실적이다.(2015년 콩이 두 가마니 정도 아직도 창고에서 뒹군다)
어쨌든 마치 무엇에 홀리듯 콩 농사를 시작했는데 애써 파종을 한 후 콩 싹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자 이번엔 산비둘기와 어치 떼가 싹들을 따 먹는 것도 모자라 아예 싹들을 뽑아 버린다. 그때 앞집 이PD가 선배 농사꾼 입장에서 내게 처방 해 준 게 있었으니….(하략)
BY ss8000 ON 7. 3, 2015 ( 산골일기: 2015 영농보고에서…)
귀촌한 다음해부터 미리 밝혔지만 농사가 힘과 땀으로만 되는 게 아닌 과학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몸으로 버텨보려고 어금니를 깨물고 무리를 해 본 결과가 위의 보고서다. 원래 가방끈이 짧지만 개 중에도 과학과 수학 과목은 더욱 젬병이었으니 영농(과학)이란 어쩌면 내게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나 보다.
아무튼 매년 품종을 달리해 가며 영농(?)을 시도해 보았지만 단 한 번도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농자금을 대 주는 마누라는 매년 농번기가 시작되면 그냥 텃밭이나 가꾸며 채소나 길러 먹자며 하소연을 하지만 그래도 땅을 놀리면 땅에(집 앞 텃밭도400평)대한 결례고 죄악이라며 고집을 부려 농자금을 타낸다. 그러나 언제나 위의 영농보고서처럼 죽을 쑤다보니..결국 작년부터 남아도는 농토를 이웃에게 무상임대 해 주고 집 앞 텃밭은 과실수를 드문드문 심어 농사를 완전 포기했다.
텃밭 한쪽에는 50평짜리 비닐하우스 두 동이 있다. 차마 그것마저 놀릴 수 없어 한 동에 20평 가량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고 나머지 30평엔 고구마를 심었다. 배추와 무는 8월 중순에 모종과 파종을 했으니 논외로 하고, 고구마는 5월부터 물을 주고(비닐하우스) 신경을 썼더니 순이 어찌나 잘 자라는지 마치 칡넝쿨만큼이나 온 밭을 덮었다.
‘옳거니! 금년 고구마는 대풍을 이루겠다.’며 쾌재를 부르고 엊그제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는데 줄기는 그토록 무성하고 화려했던 놈들이 알맹이는 없다. 전체 고랑 수가 다섯 고랑인데 한 고랑 캐는데 두어 시간 그렇게 다섯 고랑을 캔 결과 한 상자도 안 되는 수확(?수확이란 단어가 부끄러운,,,)을 했다.
캐기 전 최소한 예닐곱 상자는 나오겠지…하는 야무진 꿈을 꾸고 아예 상자를 일곱 개 갖다 놓았다. 두 고랑인가 캐다가 성질도 나고 한심도 하고 하여 앞을 바라보니 상자가 잔뜩 쌓인 게 눈에 뜨이자 난 그만 미친놈처럼 혼자 삶은 소대가리가 되어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때 웃고 싶어 웃었을까? 너무 기가 막히고 허탈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깔깔깔…. 한마디로“고구마의 배신”인 것이다.
고구마의 배신에 미친놈처럼 아니 삶은 소대가리처럼 웃다가 문득 튼실한 고구마 줄기만큼이나 허우대 멀쩡한 인간들이 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배신행위가 너무도 흡사하여 사진을 찍어 보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오늘의 현실을 두고 나처럼 삶은 소대가리가 되어 깔깔 거리는 인간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두 번은 속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덧붙임,
고구마 수확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도 직접 지은 농산물을 친지인 몇 분에게 나누어 드리겠다고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 주소를 물었는데,…오늘은 천상 가까운 면소재지(고구마 주산지)로 가서 사서라도 택배를 보내야겠다. 다행히 아직 전화 안 드린 몇 분계시기에 그나마 손해(?)를 덜 볼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ㅋㅋㅋㅋㅋ….
땅 속에 있는 걸 캐 보지도 않고 기대만 잔뜩 하고 박스를 일곱 개 씩이나….ㅋㅋㅋㅋ
참 거시기 빠지게 이틀을 고생만 했다. 내가 저 꼬라지를 보자고 고구마를 심었던가?
데레사
2019년 10월 19일 at 9:42 오전
농사가 보통 힘드는게 아니죠.
힘들게 일하고 본전도 못 찾고….속 상하시죠?
콩이 많이 있으면 차라리 인터넷으로 판매광고를 한번 내어 보시죠.
그러면 잘 팔릴텐데요.
ss8000
2019년 10월 20일 at 12:11 오후
그럼에도 사람들은 농사를 가볍게 본다거나 천하게 봅니다.
농사는 분명히 과학입니다. 그래서 가방끈 짧은 사람은 농사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즉 머리에 지식이 많이 든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그나저나 누님 죄송합니다.
사실 누님도 전화의 대상이었습니다마는
전화를 못 드렸습니다. 그 점 양지해 주십시오.
내년엔 전화를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꾸~뻑!
미미김
2019년 10월 19일 at 11:35 오전
?Lol!!! ???
방금 토론마당 에서 끝까지 읽고 마지막 에서는 제 주위를 한참 두리번두리번 찾았습니다. 제 배꼽을요.
웃지 않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수확한 고구마 양( 토론마당서는 사진을 볼수가 없어) 을 보니… 에게게…정말 이게 전부???
미리 준비한 7곱 개의 상자가 너무 무색한 모습…. 망연자실 황당해 하셨을걸 생각하면 웃지 말아야 하는데 또 웃음이 납니다.
선생님께 무어라고 위로해 드려야 할지….?
근데 정말로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런 배신을 고구마가 때릴수 있는지.
또, 무엇보다 그 고구마의 배신을 지인들에게 대신 갚아야 하신다니…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냥 이실직고로 대신하시면 될것같은데… 그리고 수확한 고구마는 포슬포슬 삶아서 맛나게 드시기바람니다.
감사합니다.?
ss8000
2019년 10월 20일 at 12:16 오후
미미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아래 데레사 누님께 답변을 드렸습니다마는…
고구마 캐는 내내 미미님도 생각을 했습니다.
가까이 계시면 좀 나눠 드릴 텐데…하는,
그러나 태평양 건너에 계시니 솔직히 전화드릴 부담(?)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혹시라도 북미주에 잠시라도 안착하는 날
고구마 농사 짓게 되면 꼭 택배 하겠습니다. ㅎㅎ…
어제 노란통에 담아 보았더니 4/3정도 차더군요.
대충 15kg내외. 지금 이걸 누구 코에 붙이나? 고민 중입니다.
3남매에게 나눌 수도 없고…한 날 한 시 모여서 한꺼번에 쪄서
고구마 파티를 할까? 하는 생각도….고민 중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