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그 놈의 전화기 때문에….

 

 

이 새벽에 일어나니 삭신이 쑤신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감기 몸살이 아닌 중노동(?)에 의한 근육통이다. 드디어 약 3주 간에 걸친 금년 겨울 김장을 끝냈다. 여하튼 마누라는 일에 관한 정말 겁 대가리 1도 없는 여자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우선 김장 얘기만 해도 그렇다. 매년 치루는 대사(大事?)이지만, 항상 나와는 이견(異見)있다.

 

매년 배추김치만 하더라도 120~150포기를 한다. 포기 수에 관한 나 역시 불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3남매에게 고루고루 균일하게 30~40포기씩 그리고 서울 집과 이곳에 또한 같은 양의 김치가 저장 된다. 그리고 배추김치 외에, (금년의 예로)총각김치, 갓김치, 파김치, 깍두기, 동치미까지 6종의 김치를 고루 분배했다.(미리 밝혔지만 여기까진 불만이 전혀 없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을 마누라 혼자 하는 것이다. 수량은 워낙 많고 시간은 없으니 매주 주말(토. 일)3주 간 나누어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매년 겪는 연례행사이지만 이 기간 동안은 마누라와 냉전을 벌인다.

 

사실 마누라를 극진히 사랑하는 내 주장은 젊디젊고 튼실한 3남매의 며느리 사위를 몽땅 동원하여 한꺼번에 하고 마누라 몸 아끼라는 충정을 몰라주고, 먹고 사는데 바쁜 애들은 뭣 하러 불러 내리느냐며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내 의견을 잘라 버리는데서 항상 의견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그게 혼자 할 수 있는 일인가?

 

공치사 하자는 게 아니라, 여름부터 가을까지 배추와 무 기타 김치 재료 땀 흘려 기른 공은 차치하고라도 그것들을 뽑고 다듬는 일은 내 손이 가야 하는 것이다. 그 뿐인가? 소금물에 절이고 씻고 하는 과정도 그러하지만 그런 과정 속의 허드렛일은 마누라의 명령(소금 가져와라! 양념 가져와라! 등등..)에 따라 차로, 리어카로 또는 카터로 집과 비닐하우스(매년 이곳에서 김장을 한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수도시설도 되어 있고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해만 나면 나중엔 덥기까지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집과 비닐하우스까지 거리가 100m가까이 된다)사이를 하루 종일 오가며 마누라의 시중(?)을 든다고 상상해 보면 그 노고가 얼마이며 짜증과 근육통이 안 일겠는가? 그 기나긴 3주 간이라는 인고(忍苦)의 시간이 그제로 끝나고 마지막 아들며느리 몫의 김장을 끝으로 마누라는 아들며느리와 함께 한양으로 올라 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마누라와 매년 충돌(衝突) 하면서도 완강하게 거절 못하는 게 또 하나 있다. 김장철이 되면 3남매로부터 각각“아버님! 아빠(장인어른!)! 올 김장도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50만원도 그보다 좀 못한 금액이라도 통장으로 입금시켜 주는 그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돈이 뭔지…(그런데 올 해는 내 생일과 겹쳐 따블로 보내 왔다. ㅋㅋㅋ..이런 신나는 일을 왜 그만 두겠는가? 몸이 부서져도 이런 건 계속 해 갈 참이다. 큭..^^)사실 오늘의 주제는 위의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IT강국이고 정보의 시대라고 하지만, 내가 정말 싫은 게 하나 있다. 전화기다. 소위 핸드폰이라는 전화기 말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놈을 손안에 넣고 만지작거리는 건 둘째 치고 그놈을 들여다보느라고 자라목처럼 구부정하게 하는 꼬락서니란….난 이게 마음에 정말 안 든다. 몇 세대 지나면 인류는 자라목처럼 구부정하게 진화될 게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특별히 약속이 없는 한…) 전화휴대를 안 한다.

 

말인 즉 아주 원행을 하지 않는 한 전화기는 그 옛날 안방의 전화기처럼 소파 팔걸이 옆에 항상 비치가 되어있다. 다시 얘기하면 내 전화기는 마누라와 공유를 하고 있다. 나 없는 사이 전화나 메신저가 오면 마누라가 대신 받기도 또 전달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풀어 얘기하면 마누라에게 거리낄 것도 감출 것도 없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로 내 전화기는 마누라와 공유한다는 것이다.

 

김장을 저희 차에 바리바리 싣고 있는 아들놈과 며느리, 잠시 후면 마누라는 그 차를 타고 한양으로 출발할 것이다. 이래저래 심신이 피로하지만 매년 겪는 초겨울 행사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나와 마누라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전화기가‘딸꾹질’을 한다. 뭔가 싶어 가죽뚜껑을 열고 보니 초등학교 여자동창이다.

 

초등학교 여자동창은 보험설계사다. 뭐…솔직히 친한 것도 아니고.. 그 때는 알지도 못했지만, 동창회 참석(사실 나는 이 동창회도 10여 년 전부터 참석했다.)한 후에야 알게 된…그런데 얘기를 듣고 보니 일찍 사별을 하고 젊은 시절부터 보험설계사가 되었다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줄까 하고…그렇게 시작된 그녀와의 설계사와 피보험자의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처음에 나와 마누라 그리고 농사용 화물차 심지어 아들딸 며느리사위(자랑이 아니라 각자 가지고 있다)것 까지 부탁하고 종용했던 적이 있었고, 손녀 넷의(아들며느리 딸 사위로부터 보내오는 매월 일정금의 용돈은 허투루 안 쓴다. 네 아이들을 위한 보험을 10년 이상 모았더니 지금은 큰 금액이 됐다.)학자금을 위한 보험도 몽땅 그녀에게 든 것이다. 어느 핸가는 내 덕분에 회사로부터 포상을 받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자랑까지 한 그녀.

 

어느 해이든가? 보험 하나만…거절할 수가 없어 마누라에게 부탁을 하고 마누라 가게로 찾아가고 그래서 여전히 마누라도 그녀의 피보험자(?)가 되고 그래서 남편의 동창으로서 친분(?)도 있는 그녀다. 그런데 가끔 그녀로부터 전화가 오면 마누라는 왜? 모든 보험을 그 여자한테만…하고 불만이 조금 있었던…결국 나중엔 아들딸 며느리 사위 차는 저희들 나름으로 옮겨가게 한…암튼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도 지닌 그런…그런 그녀로부터‘딸국질’이 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아침 이 순간에도 후회가 된다. ‘딸~꾹’차라리 그 자리에 나나 마누라가 없었더라면…평소 같으면 누구누구라고 마누라에게 말을 했을 텐데… 암튼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도 지닌 그녀의 딸국질이다. 순간적으로 전화기를 덮어 버렸다.

 

“뭔데? 왜 그래! 누구야?”생전 질투를 모르는 여자인데 어제 따라 하지 않던 짓을 한다. 그래도 그냥“‘보험(그렇게 부른다)’이야”했거나 전화기를 넘겨주고 직접 보라고 했더라면 될 것을 순식간 짜증이 나고 말았다.“그건 알아서 뭐해!?”라고 쏘아붙이고 말았다.(김장 때문에 심신이 피로한 탓이었다)아무것도 아닌“카드번호(내 차의 보험이 완료되어…)좀 알려 줘요!”라는 딸국질에….

 

3주 간을 아이들의 김장을 위해 이곳과 한양을 오르내린 마누라 역시 말은 안 해도 심신이 피로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신경이 곤두 서 있을 텐데…아무것도 아닌 전화기 때문에 마음을 상(傷)하게 하고 보냈으니 자긴들 마음이 편할까? 에에이~! 참 그 놈의 전화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각 다섯 시 10분 전이다.(마누라는 항상 6시에 기상한다.) 잠시 후 전화라도 해야 겠다. “잘 잤어? 몸은 괜찮아? 사랑해!!!”라고……

 

아~!!! 전화기 공유… 이거 지소미아 같은 거 아닌가? 나는 그래도 마누라와 전화기 공유할 것이다. 우리 둘을 갈라놓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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