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발목을 골절 당한 게 벌써 두 달이 가까워 온다. 다행히 수술결과도 좋고 하여 입원 10여일 만에 퇴원했고 2주일의 텀을 두고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며칠 전 반 키프스로 갈았고 정확히 두 달 되는 날 기프스를 뜯어낸단다. 퇴원 후 집안에서도 휠체어에 의존하여 생활했지만 반 기프스로 되던 날부터 목발에 의지하여 약간씩 걸음마를 하고 있다.”정말 고생 많이 했다.”는 말은 아내에게 하는 말이지만 내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나의 고생은 나 자신이 자초한 고생일는지도 모른다. 즉은 아내의 골절사고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사고가 나던 그날 샤타맨인 나는 평소대로 아내의 새벽출근을 돕기 위해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렸고 아내가 타면 출발할 참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내는 막 나오려다보니 챙겨야할 물건을 잊고 현관문을 나왔으며 그 사실을 알고 다시 드나든 시각이 평소보다 약2-3분 늦은 것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나는 항상 그 2-3분을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고함을 지르고 눈을 부라리는 경향이 있다. 늘 지르는 그 고함과 눈 부라리는 게 두려운(?)아내는 자연 급히 서둘게 되었고, 차고 앞의 경사져 얼어있는 빙판을 캄캄한 새벽에 발견하지 못하고 미끄러지며 그만 그런 사고를 당한 것이다.(하늘에 맹세코… 변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날은 아내가 약간 늦었지만 고함을 지르거나 잔소리를 늘어놓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재수가 없으려니…..)
입원 시에는 간병인을 두고 적당한 시간에 마음 내키면 한 차례씩 병문안(?)을 했지만, 퇴원 후에 솔직히 GR같은 내 성격을 아는 아내는 간병인이나 가사 도우미를 두자고 했으나 나 자신이 불편하다며 반대하고 직접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뭐, 처음엔 대충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다리 부러져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으며 입맛은 살아있는지 꼬박꼬박 3시 세끼를 다 찾으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아래층의 딸아이가 약간의 보조를 해준다고는 하지만 저도 아이 키우랴 살림하랴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 결국 앓느니 죽는다는 격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설거지며 청소며 아내의 잔심부름(커피 좀,,, 물 좀,,, 티슈 좀,,, 약 봉지 좀,,, 목발 좀,,,,등등 자질구레한 일들이 무지하게 많다.)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저녁엔 저녁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어쩌다 내가 주방까지 드나들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일까?’가끔씩은 아내를 도운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전업주부(專業主夫)가 되어 살림(?)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일인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소위 살림이라는 것을 하면서 짜증스럽다거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보다는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내의 다리가 부러진 원인제공에 대한 미안함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그런 재미.(중략)
개혁(改革)의 사전적 의미가 무엇인가. 체제나 제도를 합법적 그리고 점진적으로 새롭게 고쳐 나가는 것을 이르는 게 아니던가. 뭐, 거창하고 어렵게 생각하거나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집안의 개혁을 골똘히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개혁을 위한 몇 가지요소가 있을 법도하다.
첫째: ‘동기부여’라는 것이다. 만약 나의 성질이 gr같지 않고 아내의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나나 우리집안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고 부지불식간 개혁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러 개혁을 하기 위해 성질을 부리고 다리가 부러진 것은 아니지만 우연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개혁의 의지도 불태우는 것이다.
둘째: 개혁은 강요를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개혁을 빙자한 강요는 개혁이 아니라 쿠데타이며 천지가 어지럽게 뒤집히는 개벽(開闢)인 것이다. 내가 아내의 강요에 의해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살림을 산다면 그것은 집안의 개혁이 아니라 개벽이요 비 호감의 대상인 쿠데타가 되는 것이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럼없이 자신이나 주위 사람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게 개혁인 것이다.
셋째: 공감대가 형성 되어야한다. 개혁이란 게 무조건적으로 좋은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개혁을 위한 목적의식이 뚜렷하지도 못하면서 위정자(여야를 막론한 국개) 몇몇이 작당하여 정략적으로 저희 입맛에 맞는 제도나 법을 뜯어 고친다면 그것을 어찌 개혁이라 할 수 있겠는가. 개혁이란 최소한의 국민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민주적 다수결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어느 정권이나 개혁을 부르짖다 개혁은커녕 개판만 만든 정권들 아니던가.
개혁이란 위의 3대요소를 더해 도도히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은 막히면 돌아가지 억지로 뚫으려 들지 않는 것이다. 개혁을 주창해 보지만, 대다수가 반대하고 막히면 숨을 고르고 달리 생각을 고쳐 돌아갈 생각도 했어야 했다. 특히 잃어버린10년 정권의 개혁은 잔잔히 흐르는 물결이 아니라 언제나 요란한 폭포가 되었다가 떨어지며 물거품이 되었고, 항상 성난 파도가 되어 격랑만 일고 소란만 했지 순항을 하지 못한 고로 좌초만 하고 만 것이다. 그러한 즉, 나만큼이나 성질머리 그렇고 그러한 인간이 철부지 아마츄어 아해들을 데리고 정치를 한답시고 개혁을 주창해 보지만 제 몸도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인간이었으니 집안 단속인들 제대로 할 것이며 어찌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안하게 하겠는가. 너무도 진부한 얘기로’수신제가’도 못한 놈들이’치국평천하’를 논했으니 이 얼마나 졸라 웃기는 얘긴가 말이다. 대구 말구 개혁이란 미명을 뒤집어 씌어 날뛰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평상심을 잃고 치적 쌓기나 골몰하며 엉뚱한 과욕을 부렸으니 모든 재앙과 다름없는 피해는 국가와 국민에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강태공이 주무왕에게 아뢰기를,”천하의 이(利)를 같이 하는 자는 천하를 얻을 것이며 천하의 이(利)를 독점하려는 자는 천하를 잃을 것입니다. 하늘에는 계절이 있고 땅에는 재화(財貨)가 있습니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천하 만민들과 함께 향유하는 것이 인정(仁政)즉, 어진 정치입니다. 인정(仁政)이 있는 곳에 천하의 마음이 돌아가는 것입니다.”라고 했단다. 이 말이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며 현금의’문재인과 새민련’에 고언을 하고 싶은 것이다.
뭐, 사실 내 자랑도 아니고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의 권위는 아버지의 도덕성과 인격 등 모든 면에서 존경할만한 위치에 있을 때 모든 가족이 순종하고 동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마지못해 가장의 폭거에 따르는 척 할 뿐인 것이다. 가족 성원이 가장을 불신하고 도덕성을 의심하면 가장의 권위가 아닌 가부장적 강제 된 힘에 순응하는 척 할 뿐이지 동참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고 그리되면 집구석 콩가루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의 문재인과 새민년이 꼭 그 짝이다.
BY ss8000 ON 10. 18, 2015(문재인과 새민련에 보내는 고언에서…)
정봉주 손잡은 김의겸, 언론개혁 거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것”
https://news.joins.com/article/23735575…
그 때나 오늘이나 저 놈들 아가리에서 나오는 개혁(改革)이란 게 어쩌면 촌치도 다르지 않은지….난 그래서 저 기사 아래 이런 댓글을 달았다.
쥐xx들의 적반하장(賊反荷杖)
고양이 목에 방울 달 것 이라고? 우리 입은 비뚤어 져도 말은 바로 하자. 예로부터 고양이 모가지에 방울 단 놈이 누구냐? 쥐xx 아니었나? 그렇다면 이 놈이 그 쥐xx 맞고….명색 최고위급 쥐xx가 적폐(부패)에 연루 되어 제 스스로 떠난 거 아니었나?
잘못을 알고 떠난 쥐xx가 잘못도 없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그리고 방울 달릴(개혁당할) 고양이는 누구냐? 이런 걸 쥐xx들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쥐xx들이 아가리만 벌리면 개혁(改革)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