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차탄(嗟歎)을 했지만, 인생 70 넘어가니 세상일들이 그냥 허투루 보이질 않는다. 원래 가방 끈 짧은 놈이 이런데서 주저리주저리 읊기도 옮기기도 하는 게 스승을 모시고 배운 학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70을 넘게 살아온 경험이나 귀동냥의 전환(轉換)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경험 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라고 하지 않든가.
오늘은 좀 엉뚱하게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나름의 대오각성(大悟覺醒)했다. 대오각성이라는 단어를 달리 표현하면 득도(得道)가 아닐까? 득도라는 게 어떤 목표를 세워 놓고 그 목표를 향해 정진 또 정진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만이 득도는 아닐 것이다. 어떤 양반은 득도를 하기 위해 길을 떠나 수행과정에서 해골바가지에 담긴 자리끼를 마시고, 어떤 양반은 엉뚱하게 달걀을 품는 똘 짓을 해 가며, 또 어떤 이는 남가일몽(南柯一夢)한 자락의 꿈속에서 득도를 하고 해탈(解脫)의 경지에 오르기도 한 것이다. 각설하고….
나는 이 나라 대다수의 남정네들이 그러했듯 가부장적 가장이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일정부분 여성들을 권위를 높이는 데 동조하고 일조도 한 것 같다. 가령 결혼 후 두 여동생이 아내에게 시누이 노릇을 하려들면 패서라도 버르장머리를 고쳤거나 아버지 어머니가 시부모인연 하실 때면 그 부당성을 요목조목 따져 두 사이를 원만하게 조정했다든가.
설거지, 확실히 언제부터 내가 식사 후 내 밥그릇과 빈 그릇들을 개수대에 가져다 놓았는지 기억은 없다. 어쩌면 밥상에서 식사를 하다가 식탁이라는 개념으로 바뀔 때가 아닐까? 하고 유추해 본다. 어쨌든 내가 먹은 밥그릇은 개수대까지 만이라도 가져다 놓으면 아내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된 것이 기왕 그곳까지 왔으니 직접 설거지를 시작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한두 번 시작했던 설거지가 지금은 아내가 있어도 자연스럽게 내가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부부싸움하고 성질났을 땐 빼고…)그 뿐만 아니다. 아들놈에게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집안 청소와 설거지 정도는 직접 해서 며느리 손을 덜어주라고(하긴 어릴 적부터 보아왔으니 당연한 것으로…)가르쳤으며,(아래 부분은 두 분 사돈어른께서 안 보셨으면 한다. 특히 김포 사돈어른.)사위 둘에게도 똑 같이 주문을 했었다. 당연히 온 가족이 모였을 때 그 뒤처리는 사위 둘과 아들 그렇게 셋이서 다정히 하고 있다.(난 거짓말 같은 거 꾸며서 안 한다. 조선일보 민완기자가 조사해 보면 사실유무를 안다.) 따라서 이 썰을 읽는 가부장적 사내들은 오늘부터라도 설거지를 한 번 해 보시기 바란다.
설거지를 하다보면 귀찮음 보다는 어떤 즐거움 같은 게 있다. 그게 바로 설거지에서 얻는 깨달음 득도(得道)인 것이다. 그릇 하나하나에 세척제를 묻힌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준다. 연후 시원하게 쏟아지는 수도꼭지에 하나하나 세척해 내면 뽀얗고 반짝이는 그릇들이 하나하나 식기 건조기에 쌓여 나갈 때, 단순한 가사노동이 아니라 깨끗해진 그릇들을 보고 기분이 좋고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에 성취(成就)감을 분명 느낀다. 물론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힘들겠지만 그것으로 기쁨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득도인 것이다.(하략)
BY ss8000 ON 7. 8, 2019(설거지에서 득도(得道)하다에서….)
지난 12일은 조부님 기제사고 열흘 뒤인 지난주 토요일은 선친의 기제사다. 요즘 시국(時局)이 그러하기에 조부님 기제사엔 우리 부부만 다소곳이 지냈다. 선친 기제사도 오붓하게(?) 둘이서만 지내려 했는데 아이들이 굳이 오겠다니 말릴 수도 없고… 마누라는 참 우직한 때가 많다. 제수는 간단하게 하라고 그만큼 잔소리하다시피 하지만 제상에는 아무리 줄여도 30여 개 대소 접시가 올라간다. 그러니 그 제수를 장만하는 또 다른 그릇과 장비(?)등등 제사 후의 설거지꺼리가 보통이 아니다.
마누라가 더 미련한 건, 그런 제수를 마련하며 며늘아이나 딸아이들을 단 한 번도 부르지 않고 혼자 장만하는 것이다.(이런 행동은 김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게 아니다. 매년 최소150포기 이상은 하고 깍두기, 동치미, 파김치, 알타리, 등등..)그럴 때마다 나는 볼 안에 밤 두어 개 문 것처럼 불만을 토로하지만‘까짓 얼마나 된다고’하며 고집을 피운다. 그런데 아무리 혼자 한다고 하지만 허드렛일 또는 잔심부름은 5분 대기조처럼 대기상태로 있는 내가 해야 하니 솔직히 성가시다. 그렇다고 마누라가 원치 않는 아이들을 내가 부를 수도 없고…
제사 음식을 먹고 마시고 떠들고… 며느리나 딸아이들이 설거지라도 할 태세면‘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게 하고 이것저것 삼남매에게 나누어 주며 그리곤 늦었으니 빨리 가라고 서둘러 아이들을 각자의 집으로 보낸다. 그리고는 오가(吳哥)네 조상님 제사 준비하느라 피곤하여 그냥 쉬고 설거지는 다음날 아침 일찍 하겠으니 그리 알라며 안 방으로 들어가는 게 공식화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또 그렇다. 아무리 마누라가 하겠다고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을 뻔히 아는데 그 뒤처리까지 마누라에게 맡길 수는 없는 게 내 입장이라 새벽잠 없는 내가 항상 윤이 반짝거릴 정도로 설거지를 해 두는 것 또한 공식이다. 왜냐면 미리 밝혔지만 설거지에서 얻는 득도(得道)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의 얘기다. 무슨 찌개든가 아니면 볶음 채이던가? 마누라가 깜빡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온 집안이 연기로 휩싸일 정도로 태우고 말았다. 당연히 냄비바닥도 까맣게 눌어붙었다. 당황하는 마누라를 안심시키고 바로 긁어 설거지를 하려 했으나 워낙 눌어붙었기에 쉽지 않다. 마누라가 하겠느니 내가 하겠느니 하며 실랑이를 벌이다, 아무튼 얼마간 물에 불려두기로 하고 개수대 한쪽에 두었다.
얼마 뒤 마누라는 잠시 외출을 나가고 집안에 덩그마니 홀로 남은 나는 아까 물에 불린 냄비가 생각나 설거지나 할까 하고 주방에 가 보니 아무리 찾아도 냄비가 보이지 않는다. 앞뒤 베란다는 물론 싱크대를 홀랑 뒤졌지만 냄비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반 시간 정도를 찾으니 짜증이 난다.“이 놈의 여편네가 냄비를 어떡했어?”그렇게 짜증이 고개를 들 때 뒤 베란다 구석진 곳에 신문지에 덥혀있는 냄비를 발견하고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내가 마누라 성격을 아니까.
잠시 후 돌아온 마누라에게“왜 냄비를 감춰 놓고 그래!? 한참을 찾느라 짜증났잖아!?”라며 짐짓 노여워하자 마누라 왈“자기 힘들 텐데… 그래도 자기보단 젊은 내가 해야지…”순간 입 밖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여보! 마누라 나 당신 겁나게, 허벌나게 사랑해!”소리가 목구멍까지 절로 나왔다.
재택근무 남동생에 흉기 휘둘렀다, 30대 누나 ‘독박가사’ 분노
https://news.joins.com/article/23735441?cloc=joongang-home-newslistleft
(이 기사가 나던 날이 기제사 날이다.)
나는 스스로 지금도 가부장적 남편이고 아비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으로 지금도 마누라나 아이들에게 명령조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가부장적 모습을 위와 같은 것들로 상쇄(相殺)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뭇 수컷들이여! 좀 수컷답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