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座標) 2부

 

사령관의 호통에 머릿속이 하얬다. 찰나적으로‘뭐지? 뭣 때문에 사령관 저 토록 뿔이 났을까?’ 동시에 혹시…하는 생각이 들자, 사령관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이 새끼야! 내가 언제 미제 군복만 입고 다녔어? 그 걸 누가 미제랬어?”, 아! 역시 나였다.

 

생각해 보면 목포출신의 그 쫄따구, 생긴 건 오늘날 유시민 같이 안 생겼는데… 어쨌든 그 촉새 같은 전라도 쫄따구 놈이 본부에‘사령관님은 미제 군복만 입는다.’라고 소문을 냈던 모양이인데 당시로는 국군의 철통 같은 대북 무장(군기 및 반공사상)으로 북괴가 꼼짝 못할 시기였기에 소위 보안대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너무 할 일 없는 보안대가 그 정보를 입수하고 사령관 숙소까지 찾아와 정보 공개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정말 다행인 것은 그 보다 더한 치도곤이 떨어질 줄 알았던‘사모님 팬티’사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유추컨대 촉새가 발설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령관 입으로‘팬티’얘기를 하기엔 명분도 체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령관의 호통에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어찌 되었건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더불어 어지럼증이 나며 서 있기가 불편했다. 솔직히 그랬다. 비록 별 하나지만(당시는 그랬다)장군이 명목만 갖다 붙인다면 아무리 5대장성이라지만 육군 병장 한 놈 생매장시키는 거야 여반장(如反掌)인 것이다. 생매장이 아니라 소지하고 있는 권총으로 즉결처분을 하고 이유를 만들면 될 만도 했을 때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노라니 어지럼증이 깊어지며 몸이 약간 흔들리며 휘청거렸던 모양이다. 순간“나가! 이 새끼야!”라는 또 다른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며 후다닥 사지(死地)를 벗어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장 내일부터 사령관님 얼굴을 어떻게 보며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새로운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아~! 당장 이 밤이 새면… 어쩐다? 어쩌나? ‘닭아 닭아 우지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라며 흐느끼던 심청이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그 밤을 머릿속만큼이나 하얗게 알밤을 까고 말았다.

 

지피지기는 백전불태라고 했던가? 알밤을 까고 생각해 보니 적이 저렇게 강성할 때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하는 법. 그래! 이 정도면 사령관이 막나가자는 것이고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미제 군복 문제가 아니라‘팬티’때문이라도 더 이상은 일을 크게 벌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사령관의 약점을 알았으니 그것으로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요오씨! 입술을 잘근 씹으며 그날로 사포타지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 길로 온다간다 말도 없이 본부로 올라가 드러누웠다.(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 군의 내무반(막사)엔 하사관이나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고참병들이 따로 잠자는 베치카 옆의 알토란같은 장소 즉 내무반 속의 내무반이 있었다) 그런 나를 본포대장님이나 주임상사님(인사계)이 보며“이 놈 왜 여기 와 있는 거야”라며 한마디씩 던졌지만 꼼짝을 않고 잠만 퍼질러 자거나 화장실만 다녀왔다.(그러는 사이 정말 몸살이 났고 꼼짝할 수 없어 의무대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곳에서 또 다른 대형사건이 터졌지만 이 번 썰과는 관계가 없기로, 혹시 기회가 되면..)

 

그렇게 사나흘 본부에서 편하게 사포타지 하고 있는 사이 사령관은 내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을 대하기 면구스러워 내가 다른 졸병을 시켜 수발을 들고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랬던 내가 4~5일 사령관 숙소를 비운 것을 그 때야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사포타지 마지막(강제에 의해 중단하던 날)날 본포대장님이 내무반 속의 내무반에 누워 있는 내게“오병규! 숙소에 내려가 관물 챙겨와!”, 그 순간 나는 나의 사포타지가 통해 본부로 올라오라고 하는 줄 알고 기분 좋은 표정과 말투로“아! 그렇습니까? 아! 드디어 본부 귀신이 되는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 포대장님!”깎듯이 인사까지 드리고 숙소(관사)로 내려가 주섬주섬 내 개인 관물을 챙기고 본부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관물을 풀고 정리할 시간도 없이 포대장이 나타나더니“오병규! 가자! 관물 다 들고 나와!” 딱 한마디. 내가 군대 짬밥을 2년 반 가까이 먹었는데 포대장의 그 말을 모를 리 없다. “음~! 사지 아니면 험지로 전출?”다시 아랫도리에 힘이 쫘~악 빠진다. 제대 6개월 남겨두고 이게 무슨 사달이람???

 

막사를 나서니 부대 1호차 즉 사령관의 찦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령관의 분신 같았던 따까리에게 마지막 예우를 해 주었던 것이다. 1호 차를 내 주다니….본포대장을 선임 탑승으로 한 짚차는 부대를 벗어나 두세 시간을 산 넘고 물 건너 달렸다. 그리고 어떤 부대를 들어서는데 언젠가 전임 사령관님을 모시고 왔던 예하 대대였다.

 

옛날 그런 얘기가 떠돌았었다. “장관 집 식모가 장관 보다 더 세다”라는…사실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다. 요즘이야 핸폰으로 직통(直通)이 가능하지만 옛날엔 전화를 식모가 먼저 받아서 장관이나 마나님께 전해 올리는 수순이 있었다. 군대라고 다를 게 없다. 사령관 따까리가 사령관 노릇한다. 특히 예하 대대의 대대장이 어쩌다 관사의 당번병에게 밉보이기라도 하면 상관인 사령관과 소통이 원활(圓滑)하지 못했다. 다른 방법으론 할 수 없고 개인적으로 무슨 부탁을 하려 해도 중간에‘사령관님 부재중, 주무신다, 잠시 출타 중…)물론 전시이거나 훈련 중에야 그럴 수도 그래서도 안 되지만 사적인 일을 그런 경우가 있다. 그래서 대대장이지만 개인적으로 당번병과 먼저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대장이 나와는 소통이 잘 안 되는 인물이었다. 혹시라도 업무 차 사령부에 오면 박대(?)를 몇 차례 했었던 기억이 있다. 가령 차라도 끓여 내야 하는데 무시 했거나 위에 설명한 데로 개인 전화를 무시한 것도…. 대대장은 나를 보자마자“햐! 이 놈이 이런 델 다왔네 반갑다. 새키~!” gr! 반갑기는…(속으론 아! 이제 죽었다고 복창해야 했다. 저 원수를 만났으니…)

 

죽은 듯 영혼이 없는 듯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더 큰 문제는 대대장이나 안면이 있는 장교의 비아냥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우(?)들이었다. 제대 6개월 남겨 둔 고참병 알기를 뉘 집 똥개 취급을 했다. 내심 세상에서 제일 편한 군대 같지 않은 군대생활을 한 따까리 출신에 대한 질투 아니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하는 경계심?

 

그렇게 일주일 정도 보냈을까? 이번엔 대대장이 직접 관물을 챙기라며 명하더니 다시 자신의 찦차에 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이웃 부대로 나를 짐짝 내려놓듯 하고는 사라진다. 그곳은 군단 예하의 사단포병 대대였다. 그곳 인사계의 명에 따라 대대장님께 전입신고를 하고나자 대대장은“너도 고생이 참 많다. 아무튼 제대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남은 군대생활 즐겁게 하기 바란다.”

 

언젠가 밝혔지만 나는 사실 포병이 아니었다. 무슨 까닭인지 아니면 옥황상제님이나 염라대왕님의 실수 인지 보병 하고도 105(지금도 이런 게 있는지 모르지만)즉 60mm박격포 훈련병이었다. 그런 걸 졸지에 포병이 되어 그것도 전혀 훈련이나 공부한 적도 없는 144 측지(測地: 다른 병과와는 달리 머리가 우수해야 하는..)병과로 바뀌고 어쩌다 사령관 숙소의 당번병이 되었던 것이다.

 

처음 측지 병으로 전환 된 후 같은 부서의 장교와 선임 병에게 측지 교육을 며칠 받았지만 워낙 수학과는 거리가 먼 놈이라 무슨 소리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 달을 받아도 뭣한 판에 며칠이라니…아마도 내가 사령관 숙소로 배치된 것은 워낙 측지에 문외한이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으니 숙소에 가서 허드렛일이나 하라고 보낸 것이 아닐까?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것은 며칠 후 이번엔 이곳 대대장님이 또 군장을 차리라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 놈의 팔자야!! 군대 가기 전 돈암동 점집 한군데서 사주를 짚어 봤더니 나더러‘역마살(난 이 소리를 듣고 그 후로는 절대 점 같은 건 안 본다)’이 끼었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한 얘기였던가? 역시 군장을 차리고 배낭과 따불 백을 지고 나가면 당연히 있어야 할 찦차는 안 보이고 육군 중위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리곤“오병규?”하며 확인을 한다.

 

오늘도 어찌 하다 보니 너무 깁니다. 매조지는 내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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