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양배추와 화해
나는 음식에 관한 많이 까탈스러운 편이다. 절대 안 먹고, 가려먹고, 몸에 좋다는 것들 특히 보신탕, 민물고기, 장어,….따윈 입에도 안 댄다. 생선도 오징어, 북어(명태), 게, 새우 정도 그러나 바다 회는 또 환장을 한다.(아마도 비린내가 안 나서?)
벌써 사오 년이 지났나 보다. 이 반장네 개가 고라니 한 마리를 잡았다. 그 고라니를 이PD가 불고기를 해 먹겠다고 가장 이웃인 최공을 초대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의 까탈스런 입맛을 아는 이PD는 아예 날 부르지도 않는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날 그 고라니를 먹다가 중간에 최공이 급히 병원엘 갔었단다.
최공은 토산불x 이었단다. 미루고 미룬 수술을 은퇴하고 귀촌 후 한가한 때 했다는 게 고라니 파티 댓 새 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파티 중에 봉합한 자리가 터져 아무소리 없이(거시기 수술했다는 얘기는 차마 못하고…)일어나 집으로 건너와 병원에서 다시 봉합을 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매너 없는 행동으로 보였는데, 할 수 없이‘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라는 변명을 해 준 게 한 입 건너 두 입 째 그만‘고라니 고기 먹다가 탈이나 병원 갔다’로 와전이 되고 두 집안의 부인끼리 싸움이 나고… 지금까지도 가장 가까운 이웃끼리‘흥~! 칫~! 뽕~!’으로 지내고 있다.(중략)
지난 9월30일 일요일 이PD네를 면소재지 횟집으로 초청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노골적으로 그랬다“나 지금 솔직히 괴롭다. 당신 없을 땐 좋았는데….최공네와 울근불근 하는 통에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PD 왈“그냥 모른 척 하세요”한다. 그래서 성질을 벌컥 내며“그걸 말이라고 하쇼?”아무튼 소주 여섯 병을 마시며 설득 끝에 화해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덕분에 며칠 설사를 심하게 하는 희생을 치루고 있지만…..
10월2일 이번엔 최공네 부부를 면소재지 왕갈비 집으로 초청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이PD네 앞에서 한 얘기 그대로“ 나 많이 괴롭다. 이PD귀국 후 두 집안이 아직도 냉랭해 하는 것 지켜보니 힘 든다.”, 인간들이 다 그런가? 최공네는 부인까지 이구동성으로“형님이 왜 불편해 해요?”라고 반문을 한다. 기가 막힌다. 그래서 그 불편함에 대해 자초지종을 얘기 했다. 지금 내 입장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며 두 집안이 화해를 않으면 나는 두 집안 다 안 볼 수도 아니면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논지(論旨)를 폈다.(하략)
BY ss8000 ON 10. 5, 2018 (산골일기: 화해(和解)의 정석(定石)에서….)
올해는 이상하게 양배추 농사(?)가 잘 됐다. 모종 100포기 가까이 심었는데 80% 이상 알이 꽉 찼다. 마누라는 장마철 오기 전에 서울 집으로 좀 올리란다. 지난 일요일 실한 놈 30여 포기 수확했다. 한군데 모아 보니 엄청 많다. 바로 옆집 문샘(고교교사, 부부는 주말에만 옴), 윗집 최공네, 그리고 울 건너 앞집 이PD네 각각 다섯 포기씩 차에 싣고 다니며 분배(?)를 했다. 전부 몰래 하려다 문샘에게 들켰고 나머지 두 집은 몰래 배달을 했다. 그러나 문샘에게는 절대 함구하라는 부탁을 했고‘알겠습니다. 형님!’이라는 다짐도 받았다.
2018년 10월 5일‘화해(和解)의 정석(定石)’이라는 썰을 풀고 두어 차례 이PD네나 최공네 와는 같은 방법으로 식사자리를 한 후 더 이상 그 두 집안의 화해를 주도하지 않았다.‘그래! 니들 편한 대로 살아라!’ 일종의 포기다. 솔직히 두 집안 때문에 나의 용돈도 적잖이 썼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도저히 화해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 이 날까지 양가와는 따로 따로 식사를 여러 차례 했지만 더 이상 양가의 화해를 종용하거나 권고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두 집안의 불목(不睦) 때문에 나는 지금도 고래 등이 됐다가 새우등이 되기도 한다. 이 불편함을 어디다 호소할까? 결국은 이런 식으로 썰로 푸는 수밖에…
배달을 끝내고 두어 시간 뒤…역시 내 생각이 주효(奏效)했다. 먼저 최공에게서 전화가 왔다.“이 양배추 형님이 갖다 노셨수?”,
“뭐? 웬 뚱딴지 아닌 양배추? 난 금시초문인데??”,
“아니!? 누가 양배추를 다섯 통이나 집에 갖다 놨길래…”,
“그 참! 누구야? 아우님이 세상 헛살지 않은 탓인가 보네. 나는 이 날까지 누가 그런 거 하나 갖다 주는 사람이 없으니…그것도 몰래 말이야”
“아따! 형님 왜 또 이러슈? 이거 많은데 두어 통 드릴까?”
“에에이~! 우리도 잔뜩 심었어. 그건 아우님이나 드셔…”
그리고 덧붙였다.“혹시 앞집 이PD아냐? 그 기밖엔 없잖아?”
“글쎄요?….”
“전화 한 번 해보지?”
“……..” 그리고 다른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뒤 역시 이PD로부터 전화가 왔다. 역시 최공과 같은 질문이다.
“이 양배추 오 사장님이 갖다 노셨죠?”,
“글쎄요? 난 모르는 일인데….근데 아까 보니 최공이 그쪽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 같던데 혹시 최공이 아니겠어요?”
“최공이 왜?….”
얼른 말을 끊고“아~! 왜겠어요? 친해 보자는 화해의 제스쳐 겠지? 고맙다는 전화나 한 번 해 보지 그래요?” 그러나 이PD는 내 말 끝에 쓰다 달다 말 대신“금요일이든 토요일이든 식사 한 번 하시지요”란다. “아이고! 그럽시다. 식사 아니라 술은 못하리까?”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글쎄다. 두 집안이 양배추로 전화를 하고 화해를 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어쨌든 그 양배추가 내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두 집안의 화해를 위해 내가 얼마나 수고하는지 알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수고로움 때문이라고 속내야 어떻든 화해를 하지는 않을까? 그 때까지 나는 수고할 것이고, 다만 두 집안의 화해를 위해 서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불편하지만 평화는 유지되고 있으니까. 이상의 나의 얘기를 문재인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
크든 작든 개인이든 국가든…. 화해라는 것은 중재자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자아(自我)를 앞세운 중재는 중재가 아니라 자신의 공적(功績)이나 치적(治績)을 부풀리기 위한 것이다. 통일 대통령? 평화 대통령? 역사가 그렇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탐심(貪心) 또는 욕심(慾心)이 있는 한 중재 또는 화해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