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신 때가 초등학교 3년 때이든가 그랬다. 그때만 하더라도 장례식장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객사(客死)를 해도 살던 집으로 시신을 모셨다가 장례를 치를 때다. 고인의 관이 방안을 나설 때 멀쩡한 바가지를 엎어 놓고 내리 밟아 산산조각 내는 걸 처음 보았다.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 다음 해 이든가? 아니면 좀 더 시간이 흘렀든가 친척 형님 혼례 때인데 형수님 될 신부의 가마가 도착하자 그 형님네 삽작(대문이랄 것도 없는 사립문의 갱상도 방언)앞에 역시 바가지를 엎어 놓고 쎄리 밟아 쪼개 버리는 것이었다. 또한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역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는 그런 광경을 구경하지 못했는데, 서울로 환도한 후 도시 생활을 하며 결혼도 하고 젊은 시절, 집(아파트가 아님)없는 서러움에 이사도 무척 많이 다녔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이삿짐꾼들이 마지막 짐을 가져 나가며“바가지 같은 거 없어요?”, 70년대 말? 아니면 80년대 초? 아무튼 그 시절에 흥부가 톱질하던 바가지가 있을 턱이 없었다. 하여“바가지가 있을 턱이 있나요?”하자, “아! 플라스틱 바가지라도 좋아요!”, 그렇게 플라스틱 바가지를 엎어 놓고 내리 밟는데 박으로 킨 바가지처럼 잘 깨지지 않고 몇 차례 밟아 그예 깨트려 버리는 것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아까운 바가지는 왜 깨트리는 겁니까?”하고 소심 아니 조심스럽게 묻자“일종의 벽사(辟邪)나 액땜 같은 겁니다.” 아~! 그랬구나. 그게 벽사나 액땜이라는 걸 깨닫는데 무려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득도(得道)의 길이 이리 어려운 것이다.
[박제균 칼럼]한 나라 두 언어 ‘이상한 문재인 랜드’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00810/102377874/1?ref=main
위 칼럼을 읽으며 문득 바가지라는 단어기 떠오르고 위에 표현한 옛 추억 역시 상기(想起)가 된 것이다.
바가지에 얽힌(?) 아니 연관된 우리 속담이 여럿 있는 것으로 기억 된다. 그 중 내 기억에 있는 것으로만…
1)집에서 새는 바가지들에서도 샌다 : 천성이 나쁜 사람은 어디 가든지 똑같다.
2)모주 장사 열 바가지 두르듯 : 내용이 빈약한 것을 겉만 꾸미어 낸다는 말.
3)동냥은 아니 주고 쪽박만 깬다: 이런저런 원하는 건 안 들어 주고 방해만 하는 것.
제위께서 칼럼을 읽어 보면 아시겠지만, 칼럼의 내용과 바가지에 얽힌 속담과는 여합부절(如合符節)이다. 한마디로 멀쩡한 바가지(민심)를 삽살개와 그 패당들이 산산조각을 낸 것이다.
지난 날 할머니와 어머니는 쓰시던 바가지가 깨지기라도 하면 송곳으로 한 뜸 한 뜸 구멍을 내고 실로 꿰어 다시 사용하시곤 했었다. 그렇게 민심을 모아야할 위정자 놈들이 오히려 성한 박을 쪽박을 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청와대 앞에서 살풀이를 하든지 아니면 청와대 정문 앞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고마 쎄리 밟아 문때든가… 그렇게 액땜이라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