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은 재위 초기 손빈을 등용해 위나라를 제압하는 등 명성을 떨쳤지만 이내 자만에 빠졌다. ‘술과 여색을 탐닉했고 화려한 궁궐을 지어 풍악을 즐겼으며, 40리나 되는 수렵장을 건설했다. 황당무계한 궤변을 일삼는 자들을 가까이에 두며 지적 허영에 빠졌다. 재상 전기(田忌)의 충언도 듣지 않아 전기가 울화병으로 죽을’ 정도였다. 9년씩이나 학정(虐政)을 일삼았다.
그런데 그를 180도 변화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먼저 맹자(孟子)를 만난 것이다. 맹자는 제선왕에게 진정한 왕도(王道)를 주입시켰다. 두 번째 종리춘이라는 여인을 만나 그녀의 간언(諫言)을 듣고 크게 깨닫고 심지어 그녀를 왕후로 삼고 그 지혜를 빌려 국정을 살폈다.
어느 날 제선왕이 만조백관들과 질펀하게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수문장이 달려와 한 여인이 왕을 만나게 해 달라며 생떼를 쓴다고 보고를 한다. 그녀의 이름이 종리춘(鍾離春)이라고 했다. 기록에 의하면 종리춘의 ‘이마는 몹시 높고 눈은 움푹 들어갔으며 코와 목뼈가 심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등은 흡사 낙타와 같았고 머리털은 가을 풀 같이 억세었으며 피부는 옻칠을 한 듯 새까맸다. 옷 또한 다 떨어져 있었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눈에 커다란 붉은 반점도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용모가 형편없었던 것이다. 그런 여인이 무작정 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데다 심지어 ‘내가 지금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 시집을 가지 못했다. 내가 장차 후궁에 거쳐하면서 대왕을 섬길 작정이다’라고 당당히 말하니 병사들은 미친 사람 취급하며 내쫓으려 했지만 제선왕은 그 여인을 안으로 들이도록 했다.
종리춘은 왕 앞에 부복하며 아뢰기 시작한다. “왕께서는 지금 네 가지 잘못을 저지르고 계십니다. 우선 진나라는 위앙을 등용하여 나라의 재정과 군사를 튼튼히 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진나라의 군대가 쳐들어 올 것이 분명한데 임금께서는 좋은 장수를 양성하지도 않고, 국경 방비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시니 이것이 첫 번째 잘못입니다. 다음으로 임금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신하가 있는 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왕께서는 나라 다스리는 일을 방기한 채 충신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계시니 두 번째 잘못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첨을 일삼는 자와 황당무계한 말만 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왕께서 이들을 의지하고 계시니 이를 세 번째 잘못이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왕께서는 큰 궁궐을 짓고 넓은 동산을 만들며 화려한 누대를 쌓았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지칠 대로 지쳤고 나라의 재정이 탕진됐으니 이것이 네 번째 잘못입니다. 이 같은 왕의 잘못으로 지금 우리 제나라는 몹시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있습니다. 왕께서는 어찌 이런 상황을 보지 못하십니까?”
그 순간 제선왕은 옥좌에서 내려와 종리춘의 손을 맞잡았다.“그대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나의 허물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는 즉시 잔치를 파했으며, 간신을 추방하고 충신들을 대거 등용했다. 종리춘을 왕후로 책봉하라는 하교도 내린다.
자치통감에 또 이런 얘기가 기록되어 있다. 전국시대 위나라의 문후가 악양(문후(文侯) 때의 장수)으로 하여금 중산국을 공격하여 멸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 위격을 그곳의 영주로 삼았다.
어느 날인가 한가로울 때 문후는 좌우의 대소신료들에게“나는 어떤 군주요?”라고 물었다. 모든 백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어진 군주라고 말했다. 그런데 반열(班列)에서 한 신하가 벌떡 일어나“중산국을 멸망시킨 다음 동생을 그곳에 봉하지 않고 아드님을 봉했으니 어찌 어진 군주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외친다. 대소신료들이 돌아보니 임좌(任座)라는 미관말직의 신하다. 문후가 그 소리를 듣고 버럭 질을 내자 임좌는 황급히 도망치듯 그 자리를 물러났다.
임좌가 물러난 후 문후가 이번에는 임좌의 친구 되는 적황이라는 인물에게 물었다. 그러자 적황은“어진 군주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임좌 때문에 화가 덜 풀린 문후는“그대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라며 다그치듯 물었다.
적황이 조용히 아뢰기를“신이 듣기에 군주가 어질고 후덕하면 신하들이 솔직해진다고 했습니다. 방금 전 임좌는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했고, 소신은 바로 이 점에 근거하여 어진 군주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그 말을 들은 문후는 크게 깨달은바 있어 크게 기뻐하며 적황으로 하여금 임좌를 다시 불러들이게 해 몸소 그를 맞이하여 중용했다.
진산(塵山) 조은산 선비는‘시무7조’로 혼군(昏君) 문재인의 어리석음을 크게 나무라며 현군(賢君)으로 거듭 나라는 충정(忠情)의 상소문을 올렸지만 문재인은 아직 어떤 언급도 없다. 법으로 한정된 문재인의 5년 임기는 반을 넘기고 이제 그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위의 사례 제선왕은 제위19년을 통하여 9년씩이나 학정을 일삼던 폭군이었다. 그러나 맹자라는 대학자와 총리춘이라는 애국녀를 만나며 성군으로 거듭났다. 또한 스스로가 성군(聖君)인양 오만(傲慢)에 빠졌던 위문후는 한 신하의 기지(機智)의 언변으로 성군이 된 것이다.
문재인 아직 늦지 않았다. 임기의 3분의 1이상이 남아 있다. 세 가지 버르장머리를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거듭나면 주군 노무현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고 생목숨 끊을 이유 없다.
첫 번째, 대북관계를 재조정 할 것.
두 번째, 반일정서를 멀리하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할 것.
세 번째, 제발, 국민을 갈라치기하여 국론분열을 조장하지 말 것.
더하여 현임 대소신료들을 모조리 삭탈관직(削奪官職)하고 새로운 인물을 등용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우선 육조(六曹)의 판서들만이라도 삭탈관직 해야 하고 그 중 특히 문재인을 이 지경으로 몰고 온 사색당쟁의 거두(巨頭)해골 이某 대감, 시임(時任)도승지 노某와 호조판서 김某는 제주도로 유배를, 병조판서 정某는 적과의 내통한 죄를 물어 북쪽의 삼수갑산으로 유배를 특히 전임 조某와 현임 추某 형조판서 양인은 지엄한 국법을 농단(隴斷)한 죄를 물어 능지처참(凌遲處斬)한 후 그 모가지를 광화문 4거리에 효수(梟首)하여 백성들의 울분에 보답한다면
성군은 아닐지라도 권좌에서 내려온 후 그 생명과 더불어 양산 땅의 노후는 보장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