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춘풍 니타추상(我己春風 你他秋霜)을 탓한다.

중국 산서성 고평시 서남쪽5k 쯤에 양곡현(楊谷縣)이라는 곳이 있고 그 곳에는 백기대(白起臺)라는 유적이 지금도 남아있단다. 백기대라는 것이 생긴 뒷날 후세의 어떤 시인이 이렇게 노래했다.

 

고대팔척진두로(高臺八尺盡頭顱): 팔척의 백기대가 모두가 두골이니,

하지구구만골고(何止區區萬骨枯): 장수가 공을 이루려면 일만 명의 뼈가 뒹굴고,

시석무정연투승(矢石無情緣鬪勝):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 화살과 돌에는 사정이 없다,

가련항졸유하고(可憐卒有何辜): 항복한 군사에게 무슨 죄가 이시랴!!!

 

백기(白起)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몇 대(代) 전의 장수였다. 싸움터에 나가서 패해 본 적이 없는 천하명장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진시황의 천하통일은 백기가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백기가 활약하든 당시를 전국7웅이라고 했고 그 중에서 진(秦)이 가장 강력했고, 조(趙)나라나 연(燕)나라가 진나라에 필적할 정도의 국력이 있었으나 나머지 나라는 쇠퇴하거나 망한 시기였는데 어쩌다 진과 조가 국력을 걸고 한판 싸움을 벌이게 됐었다. 당시 조나라에도 백기와 버금가는 장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염파(廉頗)장군’인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나라의 왕은 간신들의 음해공작에 솔깃한 나머지 염파를 보직해임하고 새파란‘조괄’이라는 자를 사령관으로 삼아 전장에 내 보냈다. 결국 조괄은 백기를 당해 내지 못했고, 조나라 군사45만이 포로가 되었다. 백기는 그 포로들을 하룻밤사이 모조리 처단을 하여 두 번 다시 깝죽거리지 못하게 조나라의 씨를 말리고자 처단한 시체의 머리만 효수하여 본국으로 가지고가 그 두개골로, 마치 임란 때 왜군이 조선군들의 귀만 잘라 이총(耳塚)을 쌓듯 영루(營壘)를 쌓고 두로산(頭顱山)이라 이름하고 그 산위에 어리어리한 대(臺)를 쌓았으니 그것이 곧 백기대(白起臺)인 것이다.

 

조나라의 45만 대군이 하룻저녁에 몰살당하기 전의 얘기다. 조(趙)나라엔 염파 외에 조사(趙奢)라는 유명한 장수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온갖 병서와 육도삼략을 공부하고 무예를 익혀 성장한 후 나라의 간성이 되었다. 특히 그는 군문에 있을 때 많은 공을 세워 나라에서 상을 주면 군사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집에 가져가는 일이 없었다. 또 일단 왕명을 받은 이후론 군중에서 숙식을 하며 한 번도 집안일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었고, 어디 까지 군사들과 기쁨과 괴로움을 함께 했으며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아랫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뒤 결정을 내려 전장에 나아가면 반드시 이기고 돌아왔다.

 

그런 그에게 외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그 자 이름을 조괄(趙括)이라 했다. 조나라 군사45만이 하루 밤 사이 몰살되게 한 바로 그 놈이다. 조괄 역시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병서나 육도삼략(六韜三略) 따위의 책자를 보며 군사(軍事)에 관한 것들을 열심히 익혔으나, 처음부터 아비만한 장재(將材)가 되지 못했던지, 겨우 면무식이나 할 정도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익혔음에도 금수저 출신으로 아비의 덕까지 보며 워낙 허명(虛名)이 컷 던지라 제법 출세를 하여 군 고위층으로 행세하고 거들먹거리며’병법에 관한한 우리나라에서 나만한 사람이 없다’라며 자만하게 되었다.

 

사실 아버지 되는 조사는 자식 조괄의 그릇 됨됨이를 이미 알고 죽기 전 아내와 조괄 본인에게 유언하기를’너는 결단코 조나라의 장수가 될 인물이 아니니 장수가 되지 말라’며 숨을 거두었음에도 그렇게 경험도 일천한‘조괄’이라는 놈은 하찮은 제 놈의 헛된 실력을 믿고 출전의 했던 것인데, 아래 참모들의 조언을 듣지 않고 대가리 숫자 많은 것만 자랑하며 천방지축 까불다 결국 자신의 병사45만 명을 하루 밤 사이에 몰사를 시키며 종래 나라를 망국으로 몰고 간 것이다,

 

오늘의 핵심은 위의 썰이 아니다. 성명 미상 조괄(趙括)의 어머니는 참으로 현명하고 지혜로웠다고 한다. 한마디로 요조숙녀(窈窕淑女)였는데, 남편 조사가 유언하기를’너는 결단코 조나라의 장수가 될 인물이 아니니 장수가 되지 말라’고 했을 때 조괄의 어머니가 조사에게 그 까닭을 묻자 조사는“무릇 전쟁은 사람이 죽는 곳이오. 그러나 괄은 너무 쉽게 말을 하오. 조(나라)가 괄을 장수로 삼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기어이 그를 장수로 삼겠다면 조나라의 군대를 무너지게 할 자는 틀림없이 조괄일 것이오.”라고 했다.

 

조괄이 장수가 되어 출정하려 하자 그 어머니는 왕에게 글을 올려 조괄을 장수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왕이 어째서 그렇소?”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당초 첩이 그 아비를 모실 때 그는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먹이고 마시게 하며 대접하는 사람이 수십 명이었고, 친구는 수백 명이었습니다. 대왕과 종실에서 내리는 상은 모두 군리와 사대부에게 나눠주었고, 명령을 받은 날에는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괄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되자 동쪽을 향해 조회를 받는데 군리들이 감히 그를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왕께서 내리신 돈이며 옷감은 집에다 쌓아 놓고, 날마다 살 만한 싸고 좋은 땅과 집이 없는지 보고는 그것들을 사들이며 갭투자와 부동산 투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그 아비에 비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비와 아들의 마음이 이렇게 다르니 왕께서는 제발 보내지 마십시오!”

 

왕은 “모친은 그만두시오. 내가 이미 결정했소이다.”라고 했다. 조괄의 어머니는 이에 “왕께서 기어이 그 애를 보내시겠다면, 그 애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더라도 첩을 연루시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왕이 허락했다. 조괄이 45만 대병을 몰살 시키고 죽었지만 조괄의 어미는 무사히 조씨 집안의 조당(祖堂)을 지켰다는 중국판 전설 따라 삼천리~~

 

장경태

민주당 장경태, “추미애, 아들과 연락두절하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https://www.chosun.com/politics/2020/09/10/D4FGWVPEABDG3CQ7KTGLKV3MCY/

 

하~! 요새키 봐라! 생겨 처먹은 게 어벙하게 생겨가꼬. 하긴 이 놈 뿐이겠나? ‘대깨문’과 문재인 패거리가 이 따위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국민은 (조국 부부를 포함)추가의 아들을 미워하거나 추가 모자간의 애틋한 골육(骨肉)의 정을 끊자는 게 아니다. 제 새끼가 귀여우면 남의 자식 귀여운 줄도 알아야 하는데 제 새끼로 인해 군기가 무너지고 제 새끼로 인해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더도 덜도 말고 최서원 여사와 정유라 사태의 100분지 1만이라도 저희 새끼들에게 공정의 잣대로 측량을 했다면 국민들이 이토록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어딘가에‘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즉,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현판이 매달려 있다던데, 하는 꼬라지는 아기춘풍 니타추상(我己春風 你他秋霜)하는 이 개수작을 탓하고 분노 하는 것이다.

 

내 말은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현판은 지금도 매달려 있을 텐데 대통령님께서는 눈깔을 감고 사는지 아랫것들의 개차반 짓을 눈감고 있는 것에 울화가 치미는 것이다. 차라리 그 놈의 현판을 광화문(박정희 대통령님 역작)현판 부수듯 없애면 밉기나 덜 하지….

 

 

사족:

아기춘풍 니타추상(我己春風 你他秋霜)이라는 말은 없음.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을 빗대 급조했음.

넓고 깊은 海諒 바람.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