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예인(藝人) 나훈아

 

진헌공(晉獻公)은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진문공(晉文公) 중이의 아버지다. 그도 한 때는 청사에 남을 성군이었지만 지나치게 여색(女色)을 탐해 자신의 소생인 공자(公子)셋을 죽게 하고 형제끼리 왕위계승을 위해 골육상잔(骨肉相殘)을 벌이게 하는 등 나라를 위태롭게 한 인물이다. 그가 한 때 서쪽의 이민족인 이융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왕의 딸인 여희(驪姬)와 그의 여동생을 빼앗아 자기 나라로 돌아 왔다. 문제는 여희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색을 지닌 요녀(妖女)였다.

 

아무튼 늙은 진헌공은 여희의 미색에 빠져 정사를 멀리 했고 그 결과 여희와의 사이에 해제(孩提)라는 아들이 태어났다. 그 아이가 점점 자라며 여희의 망상(妄想)이 익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즉 그녀의 어린 새끼를 보위에 올리기 위해 궁중의 암투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궁중에 우시(憂施)라는 궁중악사 겸 배우가 있었다. 놈은 한갓 궁중의 악사 겸 배우였으나 진헌공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마치 오늘날 문재인의 총애를 받고 청와궁의 모든 행사를 제 마음대로 요리하는 자처럼 궁중의 대소 문화행사를 주관하는 주무관이 우시였다.

 

늙은 진헌공의 눈을 피해가며 여희와 우시는 첨엔 눈이 맞고 결국 배꼽까지 맞추는 간부(姦夫)간부(姦婦)가 되었고 일반 백성들 사이에도 해제는 진헌공의 아이가 아니라 두 남녀 사이의 아이라는 소문이 파다(頗多)했다.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진 것은 우시(憂施)라는 궁중의 딴따라 한 놈의 대가리에서 비롯된 것이고 뒷날 결국 어린 해제와 우시는 참혹한 죽음을 맞고 여희는 스스로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으로 궁중암투의 끝을 맺는다. 이상의 얘기를 진헌망국(晉獻亡國)이라고 하는데, 다행히도 아버지가 망친 나라를 중이(重耳)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나타나 춘추오패의 나라로 거듭나지만 모든 나라가 이런 행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의 역사서를 읽다보면 가끔은 출중한 예인(藝人)이 나타나고 또 그런 예인들의 훌륭한 발자취도 있지만 반면 위의 얘기처럼 예인 하나가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고 망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 점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인기 몰이를 하고 좀 특출 난 예인이 나타나면 그들을 앞세워 정치를 하려는 성향이 있다. 뭐…굳이 여야를 따질 필요는 없다. 오늘의 야당도 지난날 여당시절 그러했고 현 여당은 그 강도가 더욱 짙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난날의‘블랙리스트’니 뭐니 하는 게 그런 것 아니었던가?

 

국정에 자신감 없는 지도자 놈들이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우중(愚衆), 즉 개돼지들을 가볍고 쉽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인기몰이 하는 딴따라들을 앞세워 그 인기에 편승(便乘)함으로 함께 지지를 받고 높이겠다는 경박(輕薄)하고 유치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반대로 생각하면 예인(藝人)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러 가지 기예(技藝)를 갈고 닦아 타인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며 즐겁게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사명이나 위치를 간과하고 인기를 좀 얻으며 정계(政界)를 기웃 거리는 년. 놈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야 말로 우시 같은 존재고 나라를 망국(亡國)으로 인도하는 자승사자 같은 존재들인 것이다.

 

“국민이 힘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 없다” 나훈아에 야권도 들썩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0/10/01/DP4NWFDPMZB7ZP6FNKAM4TRMA4/

 

참…. 정말 어이가 없다. 나훈아 선생의 저 발언에‘야당 니들이 왜 환호작약(歡呼雀躍)하고 들썩 이냐?’ 정당한 방법으로 문재인과 종북좌파에 대항 못하고 정치와는 무관한 나훈아 선생의 발언에 왜 니들이 날 뛰는가 이거다. 야당엔 차기 대통령감이 없다더니만 이러다 선생을 대선 후보로 앞세울 기세다. 난 때려죽여도 보수지만 이런 식으로 순수한 예인 한 분을 정치적으로 끌어들이려는 더러운 야심(野心)엔 반대한다.

 

당신들이 집권할 때 블랙리스트는 왜 만들었는가? 당신들이 먼저 시범을 보였으니 순수한 예인들을 청와대에 불러들여‘짜파구리’처먹어가며 목젖이 보이도록 깔깔대며 국민을 능욕하지 않든가? BTS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자 순수한 그들을 역시 청와대로 불러들여 정치놀음을 시키지 않든가? 나는 안다. 누구든 청와대에 불려가 정치놀음에 놀아난 아무리 뛰어난 예인도 그 인기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 정치놀음엔 반드시 반대급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어떤 정권이든 영원하지 않다는 것.

 

제발! 순수한 예인 나훈아 선생을 정치적으로 끌어들여 잇속을 차리려 하자 마라. 당신들이 그런 식으로 환호작약하지 않아도 당신들 식으로 칭송하지 않아도 나훈아 선생이 어떤 분이라는 걸 개돼지가 아닌 국민은 안다.

 

나훈아 선생은 여느 예인과는 다르다. 문재인이 부른다고 심지어 김정은이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가서 온갖 교태와 아첨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분이 아니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자신을 나타내는 진정한 예인이시다. 이 정부 저 정부에서 훈장을 준다 해도 거추장스러운 그 따위 쇳덩이를 마다하는 진정한 예인인 것이다.

 

그의 노래(가사)는 이별을 노래하든 사랑을 노래하든 천박(淺薄)하지가 않다. 그의 노래는 한 떨기 가녀린 꽃 같은 서정시도 되었다가 노도(怒濤)같고 폭포(瀑布)같은 서사시이기도 하다.

그의 노래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따라 부르지만, 그러나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의 심오(深奧)함이 있다. 그의 노래는 마디마디 테스형과 라톤형 같은 철학(哲學)이 있고, 가락가락 루소형과 칸트형 같은 사상(思想)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황(歌皇)이기 전에 철학자요 사상가인지도 모르겠다.

 

인기를 찾아 돈을 찾아 부나비처럼 정가를 기웃거리는 노추(老醜)딴따라가 무수하지만, 나훈아 선생이야말로 내려가고 그만둘 때를 아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정한 예인(藝人)이시다.

2 Comments

  1. 데레사

    2020년 10월 3일 at 10:54 오전

    이번 콘서트 보면서 나훈아라는 가수가 참 반듯하게 늙어가고 있다는걸
    느꼈습니다.
    어디 그렇게 큰 무대에서 자기 하고싶은 말을 쉽게 할수가 있을까요?
    그것도 옳은 말을.

    그의 노래에, 그의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 ss8000

      2020년 10월 3일 at 1:59 오후

      저도 사실 그 동안 얼마간은 부정적으로
      그를 바라 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말 대단한 가수를 넘어
      마디마디 마다 철학이 심오한 철학이 담긴
      언어의 마술사 였습니다.

      급자기 존경의 념이 가득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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