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에 힘실어준 靑 “수사지휘권 행사는 불가피”
https://www.chosun.com/politics/blue_house/2020/10/20/W5VNHJQPHRG4RFLE736BEWK65M/
<퍼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신포도와 여우 이야기. 어느 더운 여름날 더위에 지치고 배가 고파 힘겨운 여우는 포도밭에 몰래 숨어들어간다. 먹음직하게 익은 포도송이가 눈에 들어온 여우는 어떻게든 거기 닿아보려고 발돋움도 해보고 훌쩍 뛰어도 본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헛일.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면서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아무나 딸 테면 따라지, 저 포도는 시단 말이야.”실패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본다. 심지어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아 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1950년대 초에 참으로도 이상한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 당시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한 사이비 종교 교주가 주장하기를, 자신이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는데 조만간 큰 홍수가 닥칠 것이며 오로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만 비행접시로 구출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믿은 사람들은 전 재산을 이 교주에게 맡기고 철야 기도에 들어갔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친지, 친구 등 연락이 닿는 사람들에게 모두 자신들과 동참할 것을 설득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주의 주변에 모여 운명의 날을 기다렸는데, 웬걸 교주가 약속했던 운명의 날은 하루 종일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로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교주는 그동안 신도들로부터 받은 돈을 챙겨 줄행랑을 쳤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건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교주는 신도들을 다시 모이게 한 후 이렇게 말했다.“당신들의 믿음에 힘입어 세계는 멸망의 문턱에서 구원을 받았다.”놀랍게도 이 말을 들은 신도들은 기뻐하며 축제를 벌였고, 이후로 더욱 교주를 신실하게 믿었다.
페스팅거는 어떻게 문명사회의 시민들에게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누가 봐도 교주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한 명도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정반대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는 아주 기발한 실험을 계획했다. 그가 재직하던 스탠퍼드 대학에 공고를 내고, 중요한 심리 실험을 하니 자원자를 모집한다고 합니다. 그러곤 모인 자원자들에게 몇 시간 동안 초보적인 계산 문제를 풀도록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설명을 하여 자원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지루함을 겨우 참아가며 과정을 마친 자원자들을 두 군으로 나누어 한 군에는 수고비로 단돈 1달러를 주고, 다른 군에는 20달러를 주었다. 그리고 실험에 참가한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실험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은지 등을 평가해보라고 하였다. 과연 어떤 쪽이 더 실험이 의미 있었다고 답하였을까? 놀라운 것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20달러를 받은 그룹보다 1달러를 받은 그룹이 더 실험이 재미있었고 기대되는 과학적 의미도 클 것이라 대답하였다.
페스팅거는 이 결과를 이렇게 해석했다. 이미 무엇 때문에 하는지도 모르겠는 우스꽝스러운 시험을 다 거치고 난 후, 게다가 수고비로 턱없이 적은 돈을 받은 자원자들은 두 가지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첫째는 어리석은 실험에 참여하여 보상도 제대로 못 받았으니 나는 멍청한 게 틀림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실험은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게 틀림없으며 나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기여한 셈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멍청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제와 모순되지 않으려면 두 번째와 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에 비해 수고비를 넉넉히 받은 그룹은 이런 압박에서 자유롭게 자신들이 참여한 실험을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어떤 상황에 부딪혔는데 그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합리적인 결론이 기존에 철석같이 믿고 있던 생각과 정면으로 모순될 때, 사람들은 합리적인 결론보다는 부조리하지만 자신의 기존 생각에 부합하는 생각을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인지 부조화의 원리(Cognitive dissonance)’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난 후에는 어떻게든 그 선택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믿으려 애쓰며, 명백한 판단 착오였어도 끝까지 자신이 옳았다고 우기기도 한다. 개인 사생활의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결정까지, 인간의 심리를 조종하는 이러한 법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이 글을 퍼 오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고슴도치의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제목을 달았다.
어떤 고슴도치 새끼 한 마리가 군대라는 집단에서 탈영하자, 고슴도치 나라가 추어(秋魚)에 소금 뿌려 놓은 듯 금방이라도 숨 넘어 갈 듯 소란의 도가니에서 펄펄 끓더니만, 순식간(하긴 이런 습성은 고슴도치 특유의 DNA지만…)정자은행 냉동기에 들어간 듯 급랭(急冷)모드로 전환됐다.
소위 보수의 가장 큰 맹점은 끈기 부족, 투쟁력 부실, 제 코가 석 자인지 모르고 여유 부리는 인지(認知)의 부조화다. 고슴도치 모자의 비리를 끝까지 파헤칠 생각(끈기)도 능력(투쟁력)도 없이 손발을 딱 놓고 물러선다. 고슴도치 모자 사건을 너무 오래 끌 게 되면‘국민의 피로감’때문이란다.
518. 국정원 선거개입, 세월호….누군가 말했다. 진돗개는 한 번 물면 놔주지 않는다고…‘국민이 피로감’때문에 정권을 빼앗겼나? 근데 삽살개도 한 번 물면 절대 안 놔준다는 교훈을 아직 모르는 게 소위 보수다. 고슴도치가 엄한 검찰총장을 물고 널어지니 고슴도치의 새끼문제는 여름 모시잠방이 방귀 빠져나가듯 몽땅 사라졌다. 이른바“고슴도치의 성동격서(聲東擊西)”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