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제외한 지구촌 곳곳 40여 국가를 다녀봤지만 단 한 번도 새벽길을 나서 본 적은 없다. 비단 내가 다녀온 나라들 외에 또 다른 나라들의 새벽 풍경은 어떨까?
내 나이 73. 나는 지금도 고속도로에서 스피드를 꽤 즐긴다. 이런 나의 즐거움은 첫째, 운전교습을 할 때 도로주행 교습 선생님의 영향(그래서 학생은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오늘날 우리 교육현장이 전교조에 지배당한 결과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굳이…)을 많이 받은 것과 둘째 번잡(煩雜)함을 싫어하는 깔끔한(?) 성격. 그런데 이 둘 사이는 상관관계가 있다.
내 교습 스승님은 80년대(나의 운전면허: 서울 79-79xxxx-x), 서울~인천 또는 인천~서울 간 장거리를 뛰는 소위 총알택시 기사였다. 운전면허는 아직 장롱면허로 빛을 보지 못 할 때의 어느 날 스승님의 총알택시를‘서울역~남동공단(인천)’까지 타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총알 주행이었다. 은근히 걱정(?)도 되었지만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얼마 뒤 또 그 스승의 차를 타게 되었다. 이건 뭐….처음 느낀 것 그 이상 어쩌면 배설(排泄)의 쾌감 이상으로 온몸을 휘감았다. 결국 주행 중 그에게 간청을 했다.“저의 주핼 스승님이 되어 주십시오.” 물론 다음 날로 계약에 들어갔고(당시는 남동공단 입주가 되지 않아 빈 터가 많았고, 인천~서울 간 고속도로도 차량이 그리 많지 않았던 그리고 우리 국산차는 포니2가 점령하던 시절. 물론 나는 이 교습을 마치고 얼마 뒤 포니2를 샀고 스피드광이 되고 말았다.)
스피드를 즐겨야 하는 데 워낙 차량이 많다 보니,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운전대를 한 밤중 잡거나 아니면 새벽에 잡고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그렇게 익히고 시작한 운전을 아직도 해 왔다. 물론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 불거나 겁도 없이. 작년이든가 재작년이든가? 어느 겨울날 터널에서 대형사고가 나고 인명피해가 많았던 사고의 원인이 블랙아이스였다는 사실에 경악(驚愕)을 하며 그 뒤로는 야간 주행은 절대 않고(특히 겨울철 고속도로), 요즘은 주로 새벽길만 달리고 있다. 그런데 새벽길도 조금은 차이가 있다. 봄여름은 새벽4시 전후 가을겨울은 5시~5시30 전후,
특히 요즘 같이 겨울로 향하는 이 계절의 새벽 5시. 서울 집을 나서며 바로 북악 터널을 통과하고 내부순화도로를 접어들면, 그 시간에 이미 내부순환도로는 차량의 홍수를 이룬다. 그곳을 통과하고 구리IC에 접어들면 차량들은 벌써 가다 서다를 하며 겨우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나 동서울 요금소까지는 가다 서다는 않지만 시내 주행의 속도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그곳을 벗어나면 그 때서야 스피드업 할 수 있다.
새벽 5시. 삼라만상이 잠들어 있어야 할 그 시각. 나름 일찍 움직인다고 서둘렀지만, 그 시각의 도로와 고속도를 지나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아프리카를 제외한 지구촌 곳곳 40여 국가를 다녀봤지만 단 한 번도 새벽길을 나서 본 적은 없다. 비단 내가 다녀온 나라들 외에 또 다른 나라들의 새벽 풍경은 어떨까?”
나는 여기서 두 가지 감정이 복받친다. 정말 부지런한 민족이다.‘이런 정신이 516을 거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지구촌의 민족이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라는 노래까지 지어 부르며 새벽을 달렸을까?’그리고 잠시 상념에 빠져든다.‘나 젊었을 때도 저랬던 것 같아..’라며 얼마간의 자긍심(自矜心)도 가지며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여유를 가지다가, 문득‘참! 어렵게들 산다. 꼭 이런 꼭두새벽부터 일을 해야만 먹고 사나? 왜들 그렇게 여유가 없이 바쁘게 사는지…?’도대체 저 군상들은 어디서 몰려와 이른 새벽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고속도로를 찾은 이 늙은이의 즐거움을 빼앗는가? 도대체 왜?
윤희숙, 조은산에 답하다 “52시간, 일자리 줄여…전태일 동의할 것”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0/11/15/MAQDG2B5ANB25FTSRPDW5AQNPM/
나는 일찍 독립을 하고 나름의 사업을 했지만, 직장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8시간의 근로시간을 끝내고 퇴근하는 게 아쉬웠다. 잔무라도 남아 있고 그 잔무 한두 시간을 한 달 동안 채우면 약간의 특수수당이 붙어 월급봉투가 미세하지만 두꺼워 진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70~80년대는 공무원이나 재벌기업이 아니면 토요일은 반공일이라 하여 토요일도 출근함은 물론 오히려 그런 토요일에 업무라도 주어지면 잔업수당이 붙기 때문에 은근히 기다려졌고 심지어 일요일도 출근 하는 날이 있을 경우 150퍼센트 뻥 튀는 시간외 수당 때문에 콧노래까지 나왔었다. 솔직히 그렇게 근면하고 악착 같이 일한 결과 현재 최고급 차량에 속하는 차를 타고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새벽길을 나서서 우리와 남의 나라를 비교해 보는 여유까지 부리는 것이다.
도둑놈들! 나 솔직히‘전태일’이 누군지 크게 관심 없었다. 알고 봤더니 나와는 동년배다. 그날 청계천의 비둘기장 같은 의류공장에서 분실자살을 했다는 젊은 친구가 있었다는 신문기사를 봤지만 난 오히려“ 죽긴 왜 죽누? 더구나 온몸을 불사르는 분신자살이라니…그 정신으로 일을 더하면 안 될까?”그랬다. 죽고 나서 열사나 의사가 되면 뭣 하누? 그리고 난 그 기사를 본 후 더욱 악착을 떨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봐라! 그 때도 정말 쥐꼬리 같았지만 시간을 때울수록 대가는 올라갔다. 아니 나는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조건(?)들이 좋았고 더 많은 기회가 왔으면 하고 바랐다. 당시 구로공단의 여공들이라고 전태일 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었을까? 그 땐 시간을 때우면 그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시기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작지만 집안을 일으키고 형제자매들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이름 하여 자랑스럽고 위대한 공순이와 공돌이 시대. 그게 어때서…??
진짜 도둑놈들! 그런데 52시간 일하고 돈을 더 달라고? 52시간 일 하고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뭐? 전태일이 벌떡 일어나? 뭐? 전태일 전을 읽어 봤냐고? 이런 아가리 놀린 놈들이야 52시간 아니 일은커녕 날 수만 채우면 절로 월급이 나오는 놈들이야 무슨 걱정이 있을까? 48시간 아니 그 아래인들 놈들이랑 무슨 상관이야….365일을 일은 않고 주둥이만 까도 돈은 챙기잖아?
그런 데 그 아래 이런 기사도 있다. 난 이 기사에 이런 평(評)을 달았다.
“흙수저 인생, 평생 전세 살란 말이냐” 신용대출 규제에 패닉
https://www.chosun.com/economy/stock-finance/2020/11/15/NNJVRK36H5EYHNMT75LYH55YW4/
당신들은 어차피 흙수저 아니었어?
빨갱이 찍으며 흙수저 면 할 줄 알았지만,
당신들은 어치피 흙수저밖에 안 돼.
왜 그랬어?
아무리 썩어도 보수는 당신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최소한 중산층은 만들어 주었어.
그런데 최소한의 노력 없이도
저녁이 있는 삶, 누구나 정규직, 주 52시간…
이 걸 믿었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 대갈빡 씀씀이가 흙수저
밖엔 안 되게 되어 있는 거야.
노력 하는 게 그리 싫었어?
놀면서 돈 많이 버는 게 그리 좋아?
그런데 미안 하지만 그런 건 세상에 없어.
패닉? 니들이 자초한 거야.
전세라도 제대로 살려면 지금이라도 바꾸자! 응!?
내가 새벽 5시. 삼라만상이 잠들어 있어야 할 그 시각. 나름 일찍 움직인다고 서둘렀지만, 그 시각의 도로와 고속도를 지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게 다 공짜 좋아하는 흙수저들 때문이다. 서울에서 전세도 살 수 없는 흙수저들이 서울 외곽지 경기도로 빠져나간 결과다.” 라고. 52시간만 일하고 억대 연봉자들과 같은 삶의 수준을 누리겠다는 흙수저들 때문에 고속도로가 아니 새벽길이 막힌다는 거…..
마지막으로 흑수저들에게 부탁 아니 제안 해 본다. 전세라도 제대로 살려면 지금이라도 바꾸자! 응!? 그렇게 하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