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나라 위왕(威王:재위 기원전 357 319년)때였다. 그는 처음엔 즉위하며 마치 선대였던 제환공(齊桓公)처럼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모든 일을 신하들에게 맡겼다. 다만 제환공은 관중. 포숙아. 습붕 같은 명신이 있어 국정(國政)에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제위왕은 즉위하여 9년이 되도록 주색에 빠져있었고 심지어 포악(惡)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추기(鄒忌)라는 명신을 만나 대오각성하고 명군(名君)으로 거듭 나게 된다.
어느 땐가 집무실에 있으니 추기(鄒忌)가 대소 신료들이 상소를 가져와 올리는데 아읍(阿邑: 산동성 양곡현)땅의 관리는 극구 칭찬하고 즉묵(卽墨: 산동성 평도현)땅 관리는 비난하고 폄하 하는 상소였다. 위왕이 미심쩍어 시간이 있는 대로 좌우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좌우의 사람들의 대답도 추기가 올렸던 상소와 거의 비슷하였다. 그래서 다시 아무도 몰래 사람을 두 고을에 보내 그곳의 어떻게 다스려지고 있는지를 암행(暗行)으로 살펴보게 하였다.
암행을 하러 갔던 신하의 보고를 받고 위왕은 교지를 내려 두 관리를 소환하였다. 즉묵 시장이 먼저 조당에 당도하여 위왕을 배알하였다. 위왕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즉묵 시장을 물러가서 기다리게 하였다. 좌우의 사람들이 의아해 하며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읍 시장이 당도하였다. 위왕이 여러 군신들을 모두 모이게 한 다음에 두 대부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하겠다고 선포하였다. 여러 대부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상상했다. ‘아읍 시장은 필시 큰상을 받고 즉묵 시장은 벌을 받아 큰 화를 당하겠구나!’
여러 문무 대신들의 조현을 받기를 마치자 위왕은 즉묵 시장을 앞으로 나오도록 명하고 말했다. “그대가 즉묵의 수령이 된 이래 그대를 비난하는 말과 글이 매일 마다 빗발쳤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시켜 즉묵의 상태를 살펴보게 하였다. 즉묵은 황무지를 개발하여 전답으로 바꾸고 백성들의 생활은 풍요로웠으며 관아에는 송사가 없이 잘 다스려 동쪽의 변경지방을 평안하게 하였다. 그대는 즉묵을 다스리는데 전념하고 나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환심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비방을 받게 되었다. 그대야말로 진실로 어진 관리라고 할 수 있겠다.” 위왕이 즉시 명하여 만 호의 읍을 그의 봉지에 추가해 주었다.
이어서 아읍 시장을 불러 말했다. “그대가 아읍 시장이 된 이래 그대를 칭찬하는 말과 글이 매일 마다 빗발쳤다. 내가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한 바 논과 밭은 황폐하게 되어 잡초만 무성하고 백성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었다. 옛날에 조나라 군사들이 그대의 봉지(封地)에 쳐들어왔건만 그대는 달려가 구하지도 않았다. 그대는 단지 많은 폐백(幣帛)과 황금으로 나의 좌우에 뇌물을 주어 환심을 사서 그대를 칭송하게 만들었다. 그대보다 못한 불초한 수령은 없을 것이다.”
아읍 시장이 머리를 숙이고 죄를 용서하여 주면 잘못을 고치겠다고 했다. 위왕은 허락하지 않고 주위의 장사를 불러 솥을 준비하여 물을 채우고 불을 지피도록 했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솥 안의 물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아읍 시장을 결박하게 한 다음 물이 펄펄 끓는 솥 안으로 던지게 하였다.
다시 자기를 좌우에서 모시면서 평소에 아읍 시장을 칭송하고 즉묵 시장을 폄하 했던 시종 수십 명을 불러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희들은 나를 좌우에게 모시면서 과인의 입과 귀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사사로이 뇌물을 받고 일의 옳고 그름을 뒤바꾸어 놓아 과인을 속였다. 신하된 자가 이와 같으니 어디다 쓴단 말인가? 모두 가마솥에 던져 삶아서 죽여야 마땅할 것이다.”
끌려나온 시종과 신하들은 모두 엎드려 절을 하며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 위왕은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하고 다른 날을 택하여 특히 아읍 시장과 친하게 지내던 십여 인을 다시 가려내어 모두 가마솥에 삶아 죽였다. 그 즉시 중신들은 모두 부들부들 떨었지만 나라는 바로 섰고, 인근의 나라들이 그 말을 전해 듣고 이후 20여 년 동안은 감히 제나라의 국경을 침범하지 못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발췌 약간 각색함)
與 김경협, 윤석열 MB 수사 땐 “정의감 있다”… 조국 건드리니 “적폐” “낯짝 두껍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0/11/28/GMLJODHGKJHWRNPP5PP5426UGA/
정의감이냐? 적폐냐? 그런 거 따지지 말자. 이런 경우도 있다. 가끔 그런 영화나 소설 있잖아? 그런데 그게 꼭 영화나 소설만은 아니라는 거다.
가령 뒷골목의 조폭 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그런 생활을 접으려다 왕따를 당하는 것도 모자라 죽도록 다구리를 당해 거의 병신이 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경우. 조폭에 가입하고 나와바리 싸움을 하고 행동대장으로 열심히 앞장서 공(?)을 세워 중간 보스에 오르고 보니, 그동안 눈에 안 보이던 조폭들의 행패가 상상도 못할 만큼 비리(非理)투성이고, 때론 상대방을 다루는 행태가 차마 목불인견(目忍見)의 참상(慘狀)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과오(過誤)를 참회(懺悔)하게 된다. 이런 상황(狀況) 상상이나 공상(空相)이 아니잖아? 윤석열이 오늘날 벌이는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소설 같잖아?
좀 쉽게 표현할까? 우리 고딩 때도 사실 오늘의‘일진’같은 폭력조직이 있었다. ‘마운틴’, ‘정글’.60대 중반 이후는 기억나는 분도 계실 것이다. 나는 모타리가 워낙 작아. 언제나 1번 아니면 꼴 번일 정도로,,,그때도 그랬어. 약육강식(弱肉强食)비스무리. 힘 좀 센 놈이면 나약하고 힘없는 나 같은 애들을 괴롭히는 거. 슈킹(收)도 뜯어가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마운틴’에 가입 했지. 1~2학년 때 몰랐어. 우선 나 자신 지키기에 급급했으니까. 그런데 2학년 말 곧 3학년이 될 무렵(3학년 선배들은 졸업을 앞두고 등교를 않을 때..), 동료(?)중 한 놈이 1학년 후배와 나약한 동년배를 너무 못 살게 구는 거야.
한마디로 내가 삥 돈 거야. 이건 정의가 아니다. 아무리 폭력써클이지만 나름의 정도(正道)가 있는데 무조건 아무데서나 슈킹하고 삥 뜯고 그기에 명치끝에 훅을 넣어 주저앉히고 워커(그땐 군용 워커 신는 게 유행)발로 쪼인트 깨고…이건 학생 아니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하루는 유독 그러는 놈을 학교 화장실 뒤 공간으로 불러내 뿌시기(담배) 한 대 나눠피며 좋게 타일렀다.“야! 우리 이제 고3된다. 대학도 가야하고…애들 그만 괴롭히고 학생본분을 찾자‘라고 했는데 갑자기 세상이 캄캄해지는 것이었다. 놈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한동안 호흡을 못했다. 3~5분??? 그리고 그놈과 맞붙었다(내가 덩치는 작아도 (진짜로..유도공인2단 이거든…)그리고 그놈을 반쯤 죽여 놨다.(내 이력을 보면 고2중퇴라고 되어있다) 당연히 퇴학. 그길로 아버지는 학교 네 군데를 옮겨 주시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난 더 이상 학업엔 흥미가 없었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며 어떤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어떻게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지는 늘 염두에 두었다.
나 정치 같은 거 몰라. 정치 그거 어떤 놈이 해도 큰 차이 없어. 그러나 정치를 잘하건 못하건 정의롭게 하라는 것이다. 지난 과거가 지저분했더라도 정의가 무엇인지 개과천선(改過遷善)한다면 난 그 인물의 과거는 묻고, 오로지 지지하고 환호 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