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周)나라의 양성(陽城)에 귀곡(鬼谷)이라는 외진 곳이 있는데, 그곳은 깊은 산중에 나무가 빽빽이 찬 곳이라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어 마치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처럼 생각되어 사람들은 귀신이 사는 골짜기라는 뜻의 귀곡이라고 했다.
그 귀곡에 은자(隱者)가 한 사람 살고 있었는데 스스로 귀곡자(鬼谷子)라고 불렀다. 그의 성은 왕(王)씨고 이름은 후(栩)라고 했다. 그는 송나라 사람 묵적(墨翟: 묵자)과 같이 약초를 캐러 다니며 수도생활을 했다. 묵자는 단지 천하를 돌아다니기만을 좋아했으며 세상의 물건들을 유익하게 이용하여 고난을 받고 재난에 처한 백성들을 구제하는데 온 마음을 쏟았지만, 왕후는 돌아다니지 않고 귀곡에만 은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귀곡선생이라고 불렀다.
귀곡선생은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으며 그의 학문은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높은 경지에 다 달았고, 특히 수리학(數理學)으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의 변화를 손바닥에 놓고 읽을 수 있었으며, 미래에 대해 점을 쳐 하는 말마다 맞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둘째는 육도삼략(六韬三略)을 꿰뚫어 그 변화는 무궁무진하며 진법과 작전은 귀신도 예측할 수 없었고, 셋째는 유세학(游說學: 오늘날 유세라는 말은 이 때 생겨났다.)으로 기억력이 비상하고 박식하여 도리와 형세에 밝아 일단 한번 입을 열어 말하면 만 사람의 입이라도 당해낼 수 있었다. 넷째는 출세학(出世學)으로 진기(眞氣)와 인성(人性)을 배양하였으며 단약(丹藥)을 복용하고 양생술(陽生術)을 몸에 익혀 병을 몸에서 몰아내고 수명을 늘릴 수 있었으며 언제라도 하늘로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인가 귀곡을 떠나 대처(大處)로 잠시 나갔다가 사람들을 위해 점을 쳐준 적이 있었는데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점괘가 마치 귀신의 말처럼 하나도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귀곡선생의 술법과 학문을 사모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귀곡선생은 공부를 하러오는 사람의 소질을 살펴가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학식을 물어 형편에 따라 그의 학술을 전수했다.(그는 이미 이때 전공과목(major)을 나누어 전수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첫째는 인재들로 하여금 학문을 이루어 칠국(七國:전국칠웅 시대)에 가서 임용되어 백성들을 구제시키려는 뜻에서였고, 둘째는 신선이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을 구하여 같이 출세학(出世學)의 원리를 구명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귀곡에 머물기 시작하여 몇 년이 되지 않아 그에게 학문을 배우러 온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모여들었다. 귀곡선생은 자기에게 학문을 배우러 온 사람은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 주었으며 또한 떠나는 자는 뒤따라가서 붙잡지 않았다.
그때 귀곡선생의 수많은 제자 중에서 몇 사람의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그 중 제나라 사람 손빈(孫賓), 위나라 사람들 방연(龐涓)과 장의(張儀), 그리고 낙양(주나라)사람 소진(蘇秦) 등 네 사람이었다. 손빈과 방연은 결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같이 귀곡선생에게서 병법을 배우고 있었고, 소진과 장의도 역시 결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유세학을 배우고 있으면서 각기 그 분야의 일가를 이루려고 열심이었다.
더 이상 썰을 풀지 않아도 우리의 기억 속에 귀곡선생의 4대 제자 손빈(孫賓)과 방연(龐涓) 그리고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 4대 천왕(?)은 스승인 귀곡자 보다 더 후세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경심 편드는 대학총장의 궤변 “판사의 판결 꼭 따를 필요 없어”
https://www.chosun.com/national/2020/12/29/4IT6LMSSNFBQVH7P2DLQKRFNLQ/
난 사실 위의 기사를 읽고 또 TV뉴스를 보며 눈과 귀를 의심 했다. 그리고 세상에 그 어떤 분노(忿怒)이상으로 분통(憤痛)을 터트리고 말았다.
준엄(峻嚴)한 나라 법에 의거(依據)하여 내려진 정경심과 그 가족에 얽힌 판결에“판사의 판결 꼭 따를 필요 없어”라며 입(차마 아가리나 주둥이라고 할 수 없어…)을 놀린 자가 수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대학의 그것도 총장(總長)이라는 인물이다.
모든 스승이 귀곡선생처럼 제자를 가르치거나 지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스승의 본분은 알고 학생을 지도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자신과 상치(相馳)하는 법 기준이고 판결이라도“판사의 판결 꼭 따를 필요 없어”라는 입(차마 아가리나 주둥이라고 할 수 없어..)을 놀린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어떤 판결이라도 제 맘에 안 들면 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며 가르치는 것이다.
난 솔직히 저 학교가 어느 골짜기 어느 산장에 처박혀 있는 대학인지 모른다. 어쨌든 이로서 저런 총장이라는 자의 또 국법을 폄훼(貶毁)하는 발언으로 이제 저 대학은 유명해 질 것이다.
기억해 두자!!! 그러나 국법 따위는 안중에 두지 말고 모든 법의(法意)를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라는 스승님, 그것도 총장님의 가르침을 받은 대학교의 학생들을 분명히 기억해 두자. 저런 자에게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야말로 불문가지(不問可知)로 그 스승에 그 제자가 분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