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번(陳蕃)후한(後漢) 말의 인물. 자는 중거(仲舉). 여남 평여 사람. 본래는 소릉 사람이지만 아버지는 양보현령을 지내고 진번은 따로 평여에서 벼슬살이를 했으며, 할아버지는 하동태수로 할아버지의 무덤은 소릉에 있어서 해마다 소릉에 제사지내러 갔다.(윤석열의 조상은 충청인)
두무, 유숙 등과 함께 삼군(三君)으로 불린 인물이며, 진번의 품행이 널리 알려져 왕공(王龔)의 천거를 받아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이 되었다가 모친상으로 그만뒀으며, 상을 마친 후에는 예주자사 주경이 별가종사로 초빙했지만 의견이 맞지 않아 거부했으며, 진번이 정직하고 청렴해 여러 차례 조정에 천거했지만 출사하지 않다가 태위 이고가 상주해 천거하면서 의랑으로 출사했다.(윤석열은 일개 검사였지만, 매사를 법치에 두었다)
어느 때 대장군 양기가 진번의 평판을 듣고 사람을 보냈지만 만나주지 않았으며, 양기가 보낸 사람이 진번을 속여 양기와 만나게 하려고 하자 그를 때려죽여 수무의 현령으로 좌천되었다가 상서가 되었다. 환제가 영릉과 계양의 산적을 토벌하려고 하자 반대하면서 지방관의 문제로 산적이 나온 것에 대해 조사하면서 삼공부에게 태수, 현령, 현장을 심사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의 충정스러움이 외척에게 거슬렸기 때문에 조정에 있지 못하고 147년에는 예장 태수로 좌천되었다.(유석열은 법 앞에 대쪽 이상으로 올곧았다. 따라서 그를 시샘하는 자들이 많아 결국 모모한 사건으로 대구지검으로 좌천 되었다)
상서령이 되어 다시 중앙으로 복귀했다가 대홍려가 되었으며, 백마 현령 이운이 환제에게 환관을 함부로 후작으로 봉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투옥되고 이에 이운과 같이 죽기를 원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두중도 투옥되었다. 진번은 양병, 목무, 상관자 등과 함께 이운과 두중에 대한 용서를 바라는 연명장을 써서 올렸다가 면직되자 향리로 돌아갔는데, 다시 초청되어 의랑을 거쳤다가 광록훈이 되었다.(윤석열 조국과 추미애 사태로 곤란을 겪다)
훗날 10상시의 난이 일어나기 전 환관들이 외척인 양기 일파를 제거하면서 환관들을 후대하자 이를 반대했지만 환제는 듣지 않았으며, 서치, 강굉, 원굉, 위저, 이담 등을 추천하거나 오관중랑장 황완과 함께 정치의 쇄신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그 후 양병의 후임으로 태위가 되는 것을 사양하면서 호광, 왕창, 이응 등을 추천했지만 환제가 허락하지 않아 태위가 되었으며, 다시 대사농 유우, 정위 풍곤, 하남윤 이응 등이 중상시 소강, 관패 등의 환관들과 대립해 탄압받자 진번은 이들을 변호했다.(윤석열 조직을 사랑하고 동료들을 끝까지 지키려 애쓰다)
환제가 붕어하고 여러 관리들이 병을 핑계로 조회에 나오지 않자 문서를 보내 그들을 질책했으며, 이에 두태후(두묘)가 매우 감격해 고양향후로 봉하려고 했지만 이를 거부하면서 대신 태부, 녹상서사에 임명되었다. 명망이 높아 태학생들에게는 어떤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람이라고 평가받았으며, 영제가 즉위하고 사예교위 이응이 죄를 범한 환관 장양의 동생을 주살해 옥에 갇혀 고문을 받고 처형당하게 되자 이응 같은 충신을 처형하면 안 된다면서 무죄로 사면해야 한다고 상주해 사면 받을 수 있게 했다.(윤석열 여전히 법치주의자로 법에 의거한 운신을 하다)
두무와 함께 환관세력 제거를 모의해 중상시 관패와 소강을 죽였지만 섭정이었던(영제는 당시 13세) 태후의 동의를 얻지 못하자 (장락궁의)태후의 문서를 관장하는 환관세력인 장락상서 정삽을 체포, 고문해 조절, 왕보와 내통하고 있다는 진술을 얻어내었다. 하지만 두무가 잠시 휴가로 집으로 가자 장락궁 오관사 주우가 이를 다른 환관들에게 알렸고 조절과 왕보는 무리를 모아 궁문을 봉쇄하고 영제를 속여 피신시키고 두태후를 구금한 후 인수를 뺐었다.(윤석열 좀 무리 했지만, 공정. 정의를 위해 MB와 박근혜를 의법처리하다)
각계 원로·전문가들 접촉… 윤석열이 움직인다
https://www.chosun.com/politics/2021/03/27/XYMKSXICCJG3FE27ZUQS2W27EE/
우연히 진번전(陳蕃傳)을 읽다가 윤석열과 진번의 생애가 너무 흡사하여 위의 글을 옮겨 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진번은 외따로 떨어진 방에 혼자 지내면서 오로지 성현들의 저술들만을 읽었다. 방안에는 온갖 쓰레기들과 책으로 난잡했고, 정원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 그는 결코 정리하거나 청소하지 않았다. 15세 때의 어느 날 부친의 친구인 설근이 그를 보러 오면서 “유자(孺子)는 어찌하여 집안을 정리하지 않고 손님을 대하는가?”
진번이 대답했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왔으면 천하를 청소하는데 뜻을 둬야지 어찌 방 한 칸을 청소하는 데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단 말입니까?”
근 30년에 가까이 검사로서 공직생활을 하고 용퇴 했을 때, 심신이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더 이상 애완견이나 애완 묘와 노닥거려 선 아니 될 것이다. 솔직히 천하를 청소하고 새 세상을 만들자는 구국(救國)의 념(念)을 가졌다면 너무 재는 것도 지지자들을 지치게 만든다. 어차피 정치를 할 거면 지금부터 웜업(warm up)을 해야 한다.
작금(昨今) 나라는 백척간두(百尺竿頭).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섰고 억조창생(億兆蒼生)은 도탄지고(塗炭之苦)에 빠져 있다. 기왕 위국(爲國), 위민(爲民)의 길로 들어선 이상 망설이고 머뭇거렸다간 오히려 간교(奸巧)한 난신적자(亂臣賊子)놈들의 권모술수(權謀術數)에 역공 당할 수 있음을 명심(銘心) 우(又) 명심 각골명심(刻骨銘心)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