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살면 매일 거미줄 한두 개는 발견한다. 마치 무슨 레이더망처럼 촘촘한 거미줄에 걸린 곤충의 사체를 보면 분명 가련한 생각이 든다. 어쩌다… 아프리카 세랭게티 초원까지 갈 필요 없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단어면 충분하다.
거미줄에 걸릴 때 그곳을 벗어나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 거미줄에 걸리는 것은 거의 거미보다 몸집이 작은 곤충이지만, 아주 이례적으로 거미 보다 훨씬 어쩌면 거미를 쪼아 먹을 수 있는 새가 걸려드는 때도 있다. 거미 따위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런데 날개 짓을 잘못 했거나 방심을 했거나,,,참으로 가련하다.
새가 거미줄에 걸릴 줄 상상이나 해 봤는가? 그런데 그게 팩트고 현실이다. 거미줄에 걸린 모든 것들은 돌돌 말려 있다. 빠져 나가겠다고 얼마나 몸부림이나 발버둥을 쳤을까? 아주 가끔은 벗어나는 놈도 있을 것이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옥죄는 게 거미줄이다. 때론 금방 걸려 퍼덕이는 놈들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가지 않는다.
비행을 잘못 하다가 걸린 놈을 그 자리에서 방생(?)하면 창공으로 날아오르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한 놈은 일껏 살려 주어도 파닥 꺼리다 숨이 넘어 간다. 이미 시간이 너무 경과한 것이다. 요즘 말로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가련하고 불쌍한 새여!!!!
권력은 새와 같은 존재다.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잘 썼어야 했다. 본의든 아니든 방향을 잘못 잡은 비행이었다. 불의(不意)로 거미줄에 걸렸을 때 거미를 먼저 쪼았어야 했다. 그런 수순을 밟지 않고 이제와 후회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걸린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얘기 했거니와 몸부림치면 칠수록 악마 같은 독거미의 촉수에 빠져 나올 수 없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보시(布施)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가련한 중생들에게 무엇이든 베푸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구제를 목표로 삼는 이타(利他) 정신의 극치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50억, 아들이 말안해 몰랐다”는 곽상도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1/09/27/KCPWYPJ4CNFXRABB6JHZHEERVE/
어제 곽상도와 그 아들을 비판하는 댓글을 몇 꼭지 올렸더니 어떤 분은 반감을 사셨던 모양이다. 물론 다른 어떤 사건과 겹치면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주는 돈을 그것도 정당한 명목으로 주는 돈을 거절할 인간이 몇이 될까? 그런데 받고 보니 이런저런 사연이 많은 금액이다.
그걸 아들이 말하기 전까지 몰랐다는 변명이 얼마나 구차한 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오히려 더 화가 난다. 안다. 개인적으로는 억울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수십 수백 배 더 부정한 돈을 챙긴 놈도 있을 텐데 겨우 50억(?). 날아다니는 새가 거미줄에 걸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놈은 정말 재수가 없거나 거미줄을 박차고 날을 힘이 없거나, 어쨌건 거미줄에 걸린 신세가 됐으니 기왕 몸부림 쳐도 빠져 나올 수 없다면. 설령 빠져 나와도 시간이 경과하여 힘을 쓸 수 없다면 자아(自我)를 희생하고 보시하는 심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살리자는 길로 들어서면 어떨까? 곽상도 의원에게 애국 한 번 하라고 권하고 싶다. 툭툭 털고 가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