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솔직히 이런 놈 보다 더 가난하고 힘들게 자라고 살았다.
“뺨 27대 맞았다고????”
초등학교 6년 간 사친회비를 내 본 적이 없었다.
월사금을 못내 학교가 가기 싫다고 하면,
어머니는 부지깽이로 아버지는 지개작대기로…
어찌어찌 학교를 가도 교실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 모퉁이에서 노닐다 한두 교시 지난 뒤
담임 몰래 들어가서 버티는 게 대수였다.
정작은 종례시간이다.
월사금 안 낸 놈! 그리고 호명을 하면
한 달 내내 그 호명에 빠지지 않는 놈은 나 하나였다.
그래도 버텼다.
차라리 귀싸대기 맞고 그것으로 사해 주었으면…
매일 종례 시간마다 호명되어 교단에 멍청히 서 있는 건
어린마음에 차라리 귀싸대기 맞는 것 보다
더 자존심 상하고 고역이었다.
난 지금도 초등학교의 졸업 앨범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앨범에는 수학여행 때 찍은 사진들이 대다수 이다.
그러나 난 그 자리에 없다. 돈이 없… 못 갔기 때문이다.
내가 수학여행지였던 경주를 간 것은 반세기가 훨씬 넘어
마누라의 손을 잡고 다녀왔다.
그러나 대신 정말 눈물 나는 사진 한 장은 있다.
내 키는 반에서 제일 작은 축에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 맨 앞줄에 서 있어야 했다.
문제는 내 바지였다. 무릎이 떨어져 깁고 또 기운 무릎…
백결 선생이 그랬을까? 기운 무르팍을 본 선생님은
나를 젤 윗줄로 보냈다. 키 작은 놈의 사진…
내 모가지는 키 큰 아이들 어깨위에 놓여 져 있다.
철이 들어가며 난 그 모습을 보고“돈을 벌어야지!!”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선생님을 학교를 원망해 본 적 없다.
27대 귀싸대기 맞은 게 그렇게 기억이 남고 비주류로 산 게
그리 억울하냐? 주류로 탈바꿈 했으면 지난날의 억울하고
가여웠던 시절은 추억으로 남길 수 없나?
‘아싸’로 반항할 게 아니라‘아싸라비야!’로 승화시킬 수 없었나?
“가난이 죄가 아닐진대 가난하다고 겪어야 했던 부당함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부당한 일을 당하면 예민하게 반응했던 듯하다. 덤벼야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고???
그래서 반항아가 되고 조폭들과 어울리며 복수를 해 나가고 있나?
지 아비 어미가 못나 자식새끼 아싸로 만든 걸 왜 사회와 국가에 분풀이를 하나?
이 땅의 모든 범죄자는 가난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부당함에 반응 하느라
범죄자가 되고 전과 4범도 되냐?
정말 못난 SGG! GSGG!
이재명 “난 어릴때부터 ‘아싸’, 학교서 뺨 27대 맞기도”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10/29/BA2ABIYKVZHFLL37FT7AVDT3LU/
<<<그러면서 “가난이 죄가 아닐진대 가난하다고 겪어야 했던 부당함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부당한 일을 당하면 예민하게 반응했던 듯하다. 덤벼야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