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하는 여자 속곳에 관한 추억

첫 번째 이야기: 사령관님 부인의 뽠쓰

(상략)

언젠가 언급 했지만, 내가 당번병으로 관사 근무를 하며 세 분의 사령관을 모셨다. 처음 분은 두 달이 채 못 되어 다른 곳의 사단장으로 부임해 가셨고, 두 번째 분을 1년6개월 모셨는데 이 분이 바로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낚시광(?)이셨는데 그곳의 임기를 마치고 육본으로 전임 가셨고 나머지 한 사람, 나의 군 생활을 가장 파란만장하게 매조지한 양반.

 

육사11기는 정규(4년제)1기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기수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그 자부심 보다 더 잘 알려 진 게 전두환 대통령이 바로 육사11기였다는 사실이다. 곽某 준장. 그가 바로 육사11기였고 사령관으로 취임하자마자 부대 분위기 뿐 아니라 관사분위기 마저 싸아 했다. 이를테면 군기잡기가 남달랐다. 무엇이 불만인지 군모(軍帽)만 벗으면 이마에 항상 내 천(川)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 관계로 관사엔 웃음이 끊긴지 오래였다.

 

관사도 군대이니까 지휘관 성격에 따라 삼엄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그의 부인이었다. 관사병 특히 나를 달달 볶았다. 괜히…기껏 해 놓은 청소를 다시 하라든가(부부사이에는 애를 낳지 못해 입양한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이 놈이 또 개구신이었다. 청소를 해 놓으면 밖에서 놀다가 신발 신은 채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한 번은 그 놈이 하도 얄미워 업어주는 척하고 엉덩이를 되게 꼬집어 주었다가 엄마에게 고자질해서…. ), 어떨 땐 짜증도 나고 힘이 들어 후임 병에게 시키면 또 그 꼴을 못보고‘내가 오 병장 아저씨한테 시켰는데 왜 다른 아저씨가 하느냐?’고, 조리 병이 성의껏 만든 밥상을 받아들고 맛이 있네 없네.. 지청구를 널어놓기 일 수였다.

 

두서가 없지만 중간에 빠트린 게 있다. 보통 야전군 지휘관들은 가족들과 떨어져 있다. 생각건대 아마도 아이들 교육문제가 가장 크지 않을까? 그래서 주로 방학 때를 이용해 가족의 해후가 있고, 아주 가끔씩 사모님들이 주말을 통해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들의 근무지로 오거나 또 1년에 한두 번 남편들이 별이 빛나는 1호차를 타고 위수지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전임 사령관 사모님은 오실 때마다‘아저씨들 고생이 많지요?’하며 양말이나 하다못해 PX에서 맛 볼 수 없는 과자나 먹을거리를 사 오시며 군기를 북 돋았으나 곽 모씨의 부인은 군기는커녕 사기를 완전히 깨트리는 짓만 했다.

 

암튼 곽某 장군이 부임했을 당시 나 자신은 관사에서 잔뼈가 굵어가며 군 생활을 1년도 채 남기지 않았고 그 정도면 본부포대 올라가도 열외로 지낼 수 있을 만큼 고참에 속했으므로 부인의 그런 행위 때문에 입이 자꾸 밖으로 나오며 본부로 올라가고 싶어 본포대장이나 인사처 요로에 소원을 청했으나 그때마다‘마! 군대생활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걸 못 참냐?’라는 식으로 면박만 되돌아오곤 했었다. 어떨 땐 정나미가 떨어져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의무대에 2-3일 누워있기라도 하면 부인이 성화를 부려 내려가기도(아! 이 부분에서 첨언한 게 있다. 입양한 그 개구신은 학령기가 안 되었기 때문에 곽모씨의 부인은 거의 전방에 채류 했었다. 따라서 이 전과 달리 사령관을 두 분 모시는 거와 진배없었다.)

 

대형사건(이유 없이 예하대대로 쫓겨 가서 gp와 op를 전전 하던…)이 터지기 얼마 전이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속옷을 사령관의 그것과 꼭 빨래 감 속에 쑤셔 넣는 버릇이 있다. 물론 당연히 세탁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아저씨 사령관님 속옷은 꼭 삶으세요!’라며 명을 한다.(지금처럼 드럼세탁기가 있고 삶는 기능이 있었다면 그 사건은 터지지 않았을 것이나.)어쨌든 오른 쪽으로 비비고 왼쪽으로 비비고 뒤집어 비비고 손빨래를 마쳐서 사령관의 속옷을 비롯하여 세탁물을 석유곤로에(가스렌지나 기타 문명의 이기가 부족하던 유신시절이었으니..)올려 놓고 열심히 삶는 과정에 잠시 관사내실로 들어 간 사이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오늘도 여기까지만…(하략)

 

두 번째 이야기: 경기 지방공무원 A씨의 노예생활 3

(아래 이야기는 sns상에 떠도는 이자점 공관의 7급비서관 얘깁니다. 일부를 전재합니다. )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출근은 하지만 어엿하게 책상에 앉아 일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면 자신이 한심스럽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딩동댕~ 총무과 B 사무관으로 부터 오늘 과업이 문자로 떨어졌다는 신호다. 사모님 속옷 정리하라. 도지사님 양복과 Y셔츠도 정리해놔라. 도지사님과 사모님 양말도 잘 접어 옷장에 넣어둬라는 등 자질구레한 지시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지만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않으면 앙칼진 B 사무관의 질책도 무섭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니 엉망진창이다. 청소기부터 돌려야 한다. 그런 다음 건조대에 널려 있는 세탁물을 걷어 차곡차곡 갠다. 사모님의 팬티 등 속옷도 아무 생각없이 정리하여 옷장에 잘 넣는다. 딩동댕~ 또 지시가 떨어졌다. 병원에 가서 사모님 약 처방전 받아 사오라는 지시다. 약을 타와 현관문에 걸어둬라. B사무관이 진료를 받았는지 처방전을 준다. 여성 홀몬제 약이니 남자가 진료를 받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리곤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요리를 단골 식당에서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 둬야 한다. 내일은 이 집 아드님이 퇴원 하신다니 가서 퇴원 수속도 밟아줘야 한다. 이 집 어머니는 친자식이 아닌지 그런 일엔 신경도 안쓰신다. 사모님 병원에 가시면 미리 병원 앞에 대기하여 차를 가이드 해야 한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린다. 차를 병원 입구 바짝대지 않게 하였다고 B사무관이 엄청난 질책을 한다. 정말 더러워서 당장 때려치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 더 든다.(하략)

 

세 번째 이야기: 마누라의 속옷

뭐… 자랑은 아니고, 자랑일 수가 없고 당연한, 나는 70중반이지만 과거 지독한 가부장적 지위를 내려놓고 지금은 마누라와 둘이서 살림(衣食)을 나누어 하고 있다. 설거지는 도맡고 때론 간단한 요리(?) 또는 밥은 거의 내가 짓(사실 밥통이 짓지만 쌀을 씻는 과정은..)는다. 특히 빨래 또한 거의 내 담담이다. 물론 빨래도 세탁기가 하지만 그 과정과 세탁기 과정이 끝나면 널기 걷기, 개기까지 내 몫으로 한다. 객 썰이 길었다.

 

문제는 빨래하는 과정에서 마누라의 속옷이다. 마누라는 속옷만큼은 손빨래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보이는 대로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후 널고 걷고 하는 과정까지는 동일하지만 그것을 갤(마누라 꺼)때는 함부로 안 만진다. 그냥 잘 갠 마누라 옷 속에 뭉친 채 고이 모셔 놓는다. 다른 과정은 다 해도 차마 요리조리 만져가며 갤 수는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마누라 뽠스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군대 당시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서 나를 괴롭히는가 보다.

 

세상에 여자 속옷 보고 트라우마까지 겪어야 하는 이 신세.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틀림없이 저 가련한 우리의 의인(義人) 불쌍한 비서관도 트라우마를 겪을 게 몹시 걱정된다. 다만 바라기는 나 같지 않게 하루빨리 극복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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