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며 그곳이 대통령 집무실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516혁명이 일어나던 해였다. 그 해 우리 집은 청와대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안국동에 있었다. 당시 집 근처엔 명소가 꽤 많았다. 우선 윤보선 전 대통령의 99간 대저택 그리고 조계종 학승들의 배움터 선학원(우리 집은 그 선학원 골목 초입의 2층 적산가옥이었다.)이며 장희빈과 궁중 암투를 벌이다 유배되었던 민비의 유배지가 바로 별궁이라는 곳이다. 당시 별궁엔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손자뻘 되는 아이도 살고 있었는데 나와는 꽤 친교가 있었다. 만약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면 그런 왕손과 언감생심 친구가 될 수 있었겠는가마는, 어쨌든 안국동에 살며 그 전해에 벌어진 419혁명 때는 종로경찰서 옥상에서 기관총을 걸어 놓고 발사하는 광경까지 목도 했던 것이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까지 청와대의 주인은 국부이신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다만 당시는 청와대가 아닌 경무대로 불렸던 것이다. 경무대가 청와대로 호칭이 변한 것은 윤보선 대통령 때부터였던가 그랬다. 물론 그 때까지도 청와대라는 호칭은 생소했고 일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경무대로 통했지만 청와대로 완전히 각인된 계기가 소위 1.21사태 때 김신조와 북쪽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뒷산(부암동)까지 쳐들어와 모두 사살되었고 김신조씨만 생포 되었을 때“박정희 목을 따러 왔수다.”라는 표현에서부터 청와대가 세인의 입에 크게 곽광(?)을 받게 된 것이다.
1.21사태는 청와대가 크게 각광을 받는 대신 청와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 지금의 청와대 길을 민간에게 통금을 하게 돤 계기도 된 것이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동쪽의 소격동. 팔판동 .화동 주민과 서쪽의 효자동. 청운동 심지어 통의동 주민 간에 왕래를 하려면 광화문을 거쳐야 통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불과 기백m길을 최소한 2~3km 근 열 배의 길을 돌아 다녀야만 했었다.
사실 1.21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구진 나와 내 친구들은 겨울이면 경복궁 경회루 호수에 스케이트(그 땐 입장료를 받고 그곳에서 스케이트를 탔었다.)를 타러 다녔는데 경복궁 입장료가 없었던 우리들은 경복궁 4대문의 하나인 영추문의 무너진 담장을 타고 넘어 경복궁을 내 집 드나들듯하며 공짜로 즐기기도 했었지만 1.21사태 이후 그곳을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통행이 금지된 청와대 길, 오늘날 동서로 뻗어 있는 청와대 길이 뚫린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 길을 통금시켰던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제5공화국이 들어서고도 여전히 막혀 있었으나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개통이 되었으나 야간 시간대에는 통금이 여전 했었고 그 후 현 정권인 문재인이 무슨 맘을 먹었는지 집권 후 얼마 뒤 24시간 소통이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나는 사실 종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종로에서만 살아온(현재 거주는 충북 제천이지만 아직도 집이 그곳에 있다.)종로 사람이다. 즉 청와대와는 밀접(?)한 생활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이 현 정부종합청사 근처 내자동이고 또한 현주거지가 효자동과 청운동을 거치거나 아니면 청와대 뒷길 부암동을 거쳐야 집을 오갈 수 있는 평창동이다.
2002년에 이곳으로 이사를 했으니 벌써20년 째 살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물론 해외거주도 오래 했지만 어쨌든 20년이라는 햇수를 그곳을 드나들었다.
특히 출퇴근 시 그곳을 오가며 아침저녁으로 늘 받아야 했던 검문검색(차창을 열고 차량내부를 흘김 당하고 행선지를 암구호 외치듯 외치고 하는…)그게 싫어 효자동 길 쪽을 넘어 자하문터널을 이용하면 교통이 어찌나 복잡한지…지겨웠던 검문검색이 약식으로 변한 건 문재인 때이지만 이번엔 청와대 뒷길이 중국인 유커와 해외관광객의 명소가 되어 수km씩 관광버스가 줄 서 있는 모습에 또 아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좋은 추억이 없는 그랬던 청와대다.
[송평인 칼럼]누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했나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0322/112480624/1
나는 이 친구 꽤 괜찮은 언론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무슨 심통이 났는지?? 이 따위 글을 올렸는지 모르겠다. 막혔던 청와대 길도 국민이 열어 달라고 했던 적이 없다. 국민 특히 그 인근에 주거하는 시민들의 불편함을 알고 그 시 그 때의 정권들이 알아서 돌려준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비록 국민이 돌려달라고 사정하거나 간청 하지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에게 자연스럽게 돌려주겠다는 것이지 협박하거나 압력을 넣은 건 아니다. 솔직히 그곳에서 나오면 대통령의 권위가 낮아지고 국민의 눈높이로 정권유지가 되고 국정이 다스려지는 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앞에 있는 경복궁 보다 더 구중궁궐처럼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국정을 다스리는 것을 탈피하고 국민과 소통을 하겠다는 당선자의 의도가 빨갱이들에 의해 지독히 왜곡돼 가는 것에 안타깝기도 울화가 치밀기도 하는 것이다.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사정하지 않았지만, 신임 대통령께서 보다 더 국민 곁으로 다가서겠다는 의지와 함께 돌려주겠다니, 그것도 공짜로… 이 따위로 구시렁거리지 말고 그냥 후딱 받아 들이자. 마음 변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