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검은 머리 짐승과의 물싸움(2부)를 읽으시려면 1부에 올린 그림 속 개집 앞 대형물통을 눈여겨보시면 참고(?)가 될 것이다. 저 흰 대형물통이 1000L 즉 5드럼의 용량이다. 지하수를 매일 받기도 또 때로는 문쌤과 지하수 사용이 상충(相衝)할 때를 대비해 물통에 물을 받은 후 조루에 다시 받아 작물에 물을 주고 있다. 그리함으로 물도 아끼고 고루고루 줄 수도 있다. 다만 몹시 힘이 들지만 이웃과 물 때문에 다투기 싫고 또 내 나름의 운동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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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4~5년 전인가? 마을 대동계에서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내 소유의 관정을 파려고 수소문 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웃인 문쌤네 이용하지 않는 관정이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귀띔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 주말 문쌤이 내려온 날 다짜고짜 물어보니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사용 않는지를 물어보니 자신은 크게 필요하지 않고 나처럼 지하수(마을공급)면 충분하다는 얘기에, 내가 펌프용 모터를 사고 전기도 내 것을 연결시키는 조건으로 관정을 공동 사용하기로 하며 땅을 파고 우리 마당까지 파이프를 묻고 이런저런 경비가 200만 원 가까이 들여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것이다.(물론 얼마 되지 않지만 전기 요금은 내 부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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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만, 올 봄도 유난히 가뭄이 심하다. 그렇지만 든든한 지하수가 있기에 불편함을 못 느꼈는데…지난 달 중순 경 개울 건너 이PD내외와 문쌤 내외를 점심식사나 하자며 막국수 집으로 초청을 했고 마침 문쌤이 자신의 차량으로 가자고 하기에 담을 넘어 문쌤네 마당으로 갔다. 그런데 그간 보지 못했던 관수파이프가 불루베리 밭을 포함하며 다른 작물 밭까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분사호스나 조리로 물을 주는 게 아니라 수도꼭지만 틀면 관을 통해 작물에 공급되는 시설을 한 것이다. 부러울 정도의 배관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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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그 전, 나는 이곳에 상주하거니와 문쌤이 내려오는 토요일 일요일 양일은 어떤 경우에라도 나는 문쌤네 관정을 사용 않는다. 양가가 합의를 본 게 아니라 나는 매일이라도 물을 쓸 수 있지만 문쌤은 이틀밖에 못쓰는 것이라 나의 배려고 양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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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부러울 정도의 급수배관시설을 해 두고 힘 안들이고 작물에 물을 주는 모습에, 불루베리 밭은 차치하고 나머지 기십 평 되는 땅에 꼭 저런 것을 설치하는 게 좋기만 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점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시설물을 처음 보는 일주일 전, 문쌤은 내게 찾아와 위의 대형물통을 가리키며 수중모터를 달면 내가 그 고생 않고 스프링클러로 물을 줄 수 있으니 수중모터를 하나 사오면 장치는 자신이 해 주겠다며 권유를 해 오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조리에 다시 받아 물을 주는 장면이 안쓰럽기도 또는 자신은 그런 시설을 하고 편히 작물을 키우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권고를 받고 수중모터를 사러 갈 마음을 먹고 그날 점심을 초청한 것인데…어쨌든 그렇게 점심을 잘 먹고 헤어진 후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는데, 그 다음날 일요일 아침이었다. 문쌤이 전화를 해 왔다.“형님! 저는 약속이 있어 좀 일찍 올라갑니다. 근데 형님 죄송해요! 한 주일 간 물을 못 쓰게 됐습니다.”, “그건 또 왜에~!?”, “모터가 고장 난 모양입니다. 물을 못 끌어 올리네요~!”, “음~! 그래!? 모터가 탔는가?”, “아뇨~! 아직 그건 모르겠어요! 잠시 후 뜯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쯤 후 문쌤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온다. 궁금한 내가 먼저“어떻게 된 거야?”, “모터가 탔어요~! 수리 해 가지고 다음 주 토요일 내려오겠습니다.”, 방법이 없다. 모터가 탔다는데 따지거나 항의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그렇다면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잖은가”, “네! 형님 죄송해요!”, “죄송할 거 까진 없고 그동안 수돗물로 대체 해야지…”그런데 퍼뜩 다른 생각이 든다.“문쌤! 자네 혹시 모터 밤새 털어 놓고 과부하 걸린 거 아냐? 어제 보니 자동으로 물을 주더만…”, 정곡을 찔렸나 보다. 아니 선생님이나 되니 거짓말을 못하겠던가 보다.“네! 맞아요. 깜빡하고 모터를 안 끄고 잤습니다.” 역시 이실직고 하는 놈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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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는 일주일간 어쩔 수 없이 작물에 수돗물을 공급하며 지냈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대로 토요일 아침 문쌤이 내려왔고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 얼마 뒤 문쌤이 내게 보고를 한다.“모터는 고칠 수 없을 정도로 탔기에 새 것으로 사왔습니다.”, 그런데 새 것을 사 왔다는 얘기를 듣고도 하나 반갑지가 않다. 왜냐하면 어쨌거나 지난 번 모터의 소유주는 나였고 그것으로 물을 퍼 올릴 때는 덜 미안했지만 이제 물도 모터도 문쌤의 것이니 갑자기 주눅이 드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날(토요일)과 일요일은 예전대로 문쌤이 물을 쓰고 나는 우선 아쉬운 대로 문쌤이 가고난 뒤 지하수를 쓸 요량이었다. 월요일 아침 문쌤은 올라가고 기쁜 마음으로 물을 쓰려고 수도꼭지를 트니 물이 안 나온다. 혹시 전기 배전판이 문제인가 배전판을 보니 정상이다. 물이 안 나오는 수도꼭지가 문제가 아니라 슬슬 내 뒤 꼭지의 뚜껑이 열리려고 한다. 마지막 수단으로 문쌤 마당의 지하수 모터가 있는 관정을 열고 배관을 점검해 보니 내 마당으로 연결된 관이 잠겨있다.“이런! 개새끼가 있나?”라는 욕이 부지불식간 튀어 나온다. 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마구 변함을 느끼겠다.
당장 전화를 걸어 문쌤에게“야이! 개자식아! 어쩌고…”욕을 해 주고 싶지만, 참았다. 새 모터도 사고 양쪽에 물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점검 하다가 실수로 잠굴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저한테 하느라고 했는데 그럴 사람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주는 그렇게 물 사용을 했다. 물론“왜 물을 잠구고 갔느냐?”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른 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