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를 경영(經營)함에 있어(이 단어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 사족을 단 다면‘경영’이라는 것이 꼭 기업이나 사업에 국한된 단어는 아닐 것이다. 소위‘국정(國政)’도 경영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크게 장르를 나누라면“경제. 국방. 외교. 사회. 문화. 교육. 정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보다 세분화 할 수도 있겠으나 유사한 것은 그냥 한 장르로 몰았다.
그리고 이상 장르의 배열을 달리 할 수도 있겠지만 경제를 제1순위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국가경영의 제1 목적은 민생(民生)즉 국민의‘의식주’가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고, 두 번째 중요한 게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국방을 차선(次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타의 장르는 순서와 위치가 바뀌어도 무방하지만 맨 끝에 정치를 둔 것은, 정치란 국민 각 개인 또는 단체 그리고 지역의 이념과 사상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맨 끝에 두었다.
사실 이번 썰에 윤 대통령은 열외의 인사이지만 비교론에 포함을 시키고 또 이름 석 자를 최선두에 자리한 것은 이번 썰(비교론)을 풀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비교론에 들어가기 전 독자 제위께서는 딱 한마디 기억해 둘 부분이 있다. 즉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국민의힘 부산 해운대갑 당협 사무실에서‘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라는 이 말씀을 말이다.
위의“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라는 이 얘기를 두고 당시 아랫녘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빨간 매체와 붉으죽죽한 찌라시 심지어 보수라 할 수 있는 2개 종편까지도 아랫녘. 빨간 매체 ..등등의 위세에 눌려 바른 말을 못하고 에둘러 윤 후보를 찍어 내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결론부터 내자면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대선 유래 사상 가장 근소한 0.75%라는 초초 간극(間隙)의 차이로 승리를 거둔 것은 윤석열이 못했기 보다는 빨간 매체를 비롯한 기타 찌라시들의 난동에 가까운 선전선동이 가장 큰 몫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 우리 다시 한 번 곰곰이 반추(反芻)하고 생각을 해 보자는 것이다. 비교라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 말인즉 동시대를 살아 보지 않고, 문자나 책자에 근거하여 배우고 익힌 것들은 잠시 접어 두어야 한다. 왜냐? 그 동안 우리의 교육이 질적으로는 향상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념이나 사상은‘전교조’라는 붉은 무리들이 대가리에 쇠똥도 안 벗겨진 어린 것들을 붉은 사상으로 세뇌시키고 무장을 시켰기 때문에 비교 불가인 것이다. 따라서 동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에게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제1경제:
전두환이 경제를 망쳤던가? 아니면 삽살개 시절 그 당시 보다 잘 먹고 잘 살았던가? 이념. 사상 진영을 떠나, 나는 감히 말하지만 대한민국 유사 이래 가장 경제(박정희 대통령의 기초가 뒷받침 했지만…)가 안정되었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제2국방:
안보, 안보하지만…그 때만큼 안보가 확실했던 적 또한 없다. 우선 당시의 우리 군대의 기강 즉 군기(軍紀)가 서릿발 같이 확실히 서 있었던 적도 없었다. 특히‘아웅산 테러’사건으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우리 군의 의지에 북괴가 사과를 하고 주눅 들어 숨죽인 적이 또 있었던가? 그 시절로 돌아가면 무장이나 무기는 북괴 보다 못했어도 군대의 사기(士氣) 적을 섬멸하고 남을 시절이었다.
제3외교: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이나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시엔 우리가 UN가입이 되어있지 않았고 중국과도 수교 이전의 시대였으니 외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맹방인 미국과의 친밀성을 제1로 삼고 일본과 선린관계를 유지하며 북괴와 동남아제국 및 아프리카 제3국의 외교전을 치열하게 벌인 결과 북괴에게 우세승을 거둔 기억은 있다. 말하자면 당시의 외교전은 상대적으로 북괴에게 승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전두환 시대에는 삽살개의 굴욕 외교와는 판이한 우리의 완승이었다.
제4사회:
지금 이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가? 자고나면 부모가 새끼를, 새끼가 부모를, 이웃이 이웃을 죽이고 또 죽이고…사형이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인권(人權)이라는 미명(美名)아래 피해자 보다는 가해자. 살인범. 흉악범의 인권만 중요시하는 어불성설의 시대. 그러나 전두환은‘삼청교육대’라는 사회정화센터를 설립하여 동네 조무래기 깡패부터 조직폭력배 잠정적 범죄자들을 순화교육 시키며 사회의 안정을 도모했고 특히 광복 이래 시행되어 오던‘통행금지령’을 해제 하며 심야영업을 허락하며 경제적 중흥을 도모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와 비교를 해도 전혀 손색 내지 꿀리지 않는 사회상이었던 것이다.
제5문화: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유치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화려하진 않지만 장중(莊重)한 미적 조화를 아시아와 세계만방에 선 보였고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뿔휘기픈 우리의 민족사와 정신문화의 우수성을 지구촌민에게 선보이는 치적을 그 때 이루었다. 물론 삽살개 시절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큰 행사를 치루기 했지만, 이미 그 전전 시대에 유치를 한 것이고 삽살개는 잔칫상에 숟가락만 들고 덤빈 것이다. 오히려 평창 대회를 통하여 우리의 우수성을 알리기는커녕 무릎을 꿇고 북괴에게 상납하는 꼬락서니를 취했던 것은 이 나라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제5교육:
당시 온 나라와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사교육과 그 비용 때문에 경제생활의 막대한 부분을 투자하는 망국적 병리현상에 처해 있을 때, 두발과 교복자율화 등 공교육의 평준화를 시도하고 그야말로 교육의 민주화를 실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은 공과를 좀 따지긴 해야 한다. 지나친 민주화로 소위‘전교조’라는 빨갱이 집단 교육자를 양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전두환 자신이 전교조가 생산한 홍위병들에 의해 비판. 폄하. 심판을 받는 계기가 된다. 솔직히 썰者 개인적 판단은 이 부분이야말로 전두환의 판단 미스고, 방임적 실수이며 토탈리 가장 큰 실정(失政)인 것이다. 즉 천추의 한을 남긴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 할 것이다.
제6정치:
미리 언급해 두었지만, 정치란 국민 각 개인 또는 단체 그리고 지역의 이념과 사상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맨 끝에 두었다. 이 부분은 독자제위께서 이상의 비교론을 보시고 각자 판단하실 일이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해 보시기 바란다.
이 나라의 지독한 빨갱이의 한 사람이었던 백기완이라는 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516혁명을 빗대어“3만 명에게는 못살게 굴었지만, 3천만 명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했다.”는 명언을 남겼다. 518민주화? 솔직히 웃기잖아? 역설적으로 전두환이 없었다면 이 땅엔 영원히 민주화가 안 됐을까? 광주 518민주화는 150만(?)시민에게 못살게 굴었지만 나머지 5천만에 가까운 국민은 등 따시고 배부르게 했잖아?
그렇다면“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라는 말의 의미가 새롭잖아? 뭐 잘못 됐어? 저 말이 나올 때 625전쟁은 난리도 아닌 개gr에 난리부루스 친 빨갱이 새끼들 좃 잡고 거꾸로 서서 생각할 시간 좀 가졌으면 조케따.
이상은 요즘 삽살개와 그 패거리들이 저지른 일 또는 싸지른 똥 치우는 장면들이 위의 비교론을 불러오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