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자”

사흘 피죽도 못 먹은 듯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따스한 양지쪽에 삼삼오오 군집하여 푸크(카드놀이)를 치거나 고누 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잡담들을 했었다. 한 겨울의 짧은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밖으로 나왔었다. 집안은 난방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설령 난방을 한다고 해도 잠들기 전 조개탄 또는 길거리를 오가며 주워 온 나무를 연료삼아 때는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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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실소를 금치 못하겠는 것은 임대한 중산층 아파트였음에도 아침저녁으로 ‘탁탁’일정하게 둔탁한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 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주워 온 나무토막을 난방용 화구(화덕)에 집어넣기 알맞게 쪼개거나 자르는 소리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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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즉 한 겨울에도 차라리 밖으로 나와 햇볕을 쪼이는 게 추위를 이기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들이 하나 같이 때 절은 우중충한 짙은 남색의 인민복 속에는 이나 서캐가 한 되박은 나올 것같이 지저분한 형상이었다. 그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 하자면 거지 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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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산동성 칭따오항을 세계적 미항이라고 하며 동양의 나폴리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중국 대륙을 열강이 찢어발길 때 독일인들이 그곳을 차지(조차)한 것을 보면 그들의 눈에도 그곳이 아름다운 해안이자 항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칭따오 항은 우리의 동해나 남해에 있을 법한 한가한 어촌에 불과 했었다. 이상은 1992년 2월의 어느 날 내 눈에 비친 미항 칭따오와 중국인민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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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사업부진으로 부도가 나고 어찌할 방법 없이 방황을 하던 나는 그곳으로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당시의 투자 금 최소한도가 $10만 이었다. 지금 같으면 돈 같지도 않은 우리 돈 1억(달러 환율)원이면 중국에 독자투자든 합자든 가능했었고 그것도 1년 이내 분할투자도 인정해 주었을 만큼 중국은 다급했었다. 지금 같으면 지하 단간 방 월세 보증금도 미치지 못하는 단 돈 1억을 유치하기 위해 조그만 시의 시장이나 부시장 또는 縣급의 우두머리가 머리를 조아리며 유치운동에 열을 올렸었다. 심지어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아 준다는 미끼를 던지거나….오죽했으면 당시의 중국을 두고‘안 되는 게 없는 나라 그러나 되는 것 역시 하나 없는 나라’라고 비꼬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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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을 투자하기로 한 내 경우 그곳 촌장과 공산당 서기는 공장할 수 있는 장소를 어디든 얘기하면 그곳을 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공장을 새로 짓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마침 조그만 폐교가 있었고 그곳에는 약 30여 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1차 송금한 증명을 제출하자 그 다음 날로 주민들을 어디로 소개 시켰는지 하루 만에 텅텅 빈 공장 터를 제공해 주었었다. 이것이 1994년 중국 산동성 칭따오시 외곽의 가감 없는 실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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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선 “11억 거지떼발언에 누리꾼 격분파문 확산>>>

송 전 의원은 지난 16일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밤샘토론-사드배치, 한국 안보에 약일까, 독일까?’에 출연해 사드배치에 반발하는 중국을 향해 거친 발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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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국이 우리나라를 안중에 두지 않고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 중국은 청나라 이전 사고방식으로 우리를 대하고 있다”며 “어디 감히, 내가 정말 열 받는 게 20년 전 11억 거지 떼가 이렇게 겁도 없이 우리를 대하냐는 거다”라며 거침없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1일 신화통신, 환구시보 등 복수의 중국 주요 관영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중국 누리꾼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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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선 의원의 말에 거짓이 있는가? 중국이 아무리 G2라고 자부하지만 인민의 약80%가 아직도 농민공으로 살아가는 저개발 국가가 아니던가? 3억이 배불리 먹고 풍족하게 산다고 하여 중국이 선진국일 수는 없는 것이다. 불과 20여 전 때 절은 인민복에 피골이 상접한 모습의 거지 떼가 돈 좀 벌었다고 지구촌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들 울화가 치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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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한 우리의 사드배치를 두고 경제 제재를 하겠다면 얼음장을 놓는 저 오만함에 어찌 공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저희들은 필리핀과 일어난 영토분쟁에 따른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일소에 붙이고, 난사군도문제로 일본과 다투며 일제 도요타 탄다는 이유로 제 나라 인민을 둔기로 때려’반신불수’만들고, 한국과 미국, 일본, 필리핀 등에서 생산된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이고 심지어 타이완에서 중국본토 관광객이 탄 버스에 화재가 나 26명 전원이 사망을 하자, 그 버스가 한국 제품이라 사고가 났다며 억지를 부리는 저 무지몽매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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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여! 중국 인민이여!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그대들의 그 오만함과 편견에 하늘인들 무심 하겠는가? 그 옛날 그대들의 조상이었던 “莊子 가로되, 若人(약인)이 不善(작불선)하야 得顯名者(득현명자)는 人雖不害(인수불해)나 天必戮之(천필육지)니라…만일 사람이 착하지 못 한 일로 이름을 세상에 나타낸 자는 사람이 비록 해치지 않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했나니…. 돈 좀 있다고 세상이 부러워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지구촌의 질서를 파괴하는 그대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씀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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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충전에 1000km… 전기차 ‘중국 천하’ [WEEKLY BIZ]

https://www.chosun.com/economy/mint/2022/07/21/FVTK6ZXLDJDEVF7LCVTPLVLYLA/

 

금년이 한중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다. 30년 전의 중국인민들은 정말 피죽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은듯한 모습이었다. 30년이 지난 오늘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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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중국을 아직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그러나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 그들이 오늘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를 신뢰하고 따랐기 때문이다. 당장 인민 자신들에게 공정하지 못하고 불합리한 정책일지라도 위정자들을 신뢰했기에 오늘을 이룬 것이다. 이는 마치 516군사혁명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력을 믿고 따르며 오늘을 이룩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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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빨갱이 정권 때마다 국난의 위기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모셨다. 당장은 미흡할지라도 향후 5년 후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윤 대통령이 국민100%를 만족 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조만간 50% 또 60% 그 이상 만족하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꼭 하고픈 말은 비록 잠정적 적국이고 빨갱이지만“중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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