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단무지 무 계약재배를 많이 했다. 농사 좀 지을 줄 아는 원주민들은 너도 나도 계약재배를 즐겨 했다. 우선 크게 손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무라는 놈이 병충해에 강하고 한 번 심어 두면 농약을 친다거나 시비(施肥)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 때 되어 거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농부가 하는 일이니 그런 것마저도 힘이 아니 든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쉬워도 그저 자라고 크는 것은 없고 그래도 때맞추어 농부들의 손이 필요한 게 농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 농사만큼 쉬운 것도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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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뽑고 난 밭은 먼발치에서 보아도 희끗희끗 뽑다가 버린 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너무 커서, 너무 작아서, 약간 구부러져서, 곁다리가 나와서… 그렇지만 일반인의 눈엔 거의가 상품(商品)이고 상품(上品)에 속하는 것들이며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무를 수확한 다음 날부터 장관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밭이 있는 도로엔 차량들이 줄줄이 서 있고 마치 무슨 경품 걸린 대회처럼 사람들이 부지런히 그 무를 차량들에 싣고 어떤 차량은 모종의 임무를 마치기나 한 것처럼 횅하니 달아난다. 그러나 아무리 싣고 가도 무는 밭에 그대로 널브러져 남아돌다가 결국은 썩어지며 다른 작물을 위해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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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무뿐일까? 김장철의 배추나 감자 또는 양파 등이 과잉생산을 하여 넘쳐 나면 팔아 봤자 인건비나 농자금도 안 나온다고 갈아엎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째서 그런 현상이 나타날까? 왜 일껏 자신들이 지어 놓은 농사의 끝마무리를 그런 식으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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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이게 또 우리의 민족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배달민족이 아닌 배탈민족의 저질 민족성 말이다. 잘 생각해 보면 이웃 잘 되는 걸 두고 못 보는 고유의 민족성이 있다. 누가 어떤 업종으로 돈 좀 벌었다면 형제는 물론 처외삼촌은 고사하고 사돈의 팔촌까지 빚을 내어 그 업종에 덤벼드는 게 배탈민족의 DNA가 아닐까? 자영업자가 하루에 수백 개 문을 닫지만 또 그만큼 아니 그 이상 창업을 도모하는 현상은 그런 것을 잘 대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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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 무를 재배하던 농가는 내가 이곳에 정착하던 해는 몇 가구 되지 않아 수확 후 남아도는 무를 얼마든지 가져다 먹으라는 밭주인의 호의가 그리도 고마워 그날 저녁 고기 근이라도 사다가 슬며시 밀어 넣기도 했지만 수년 사이 너도 나도 계약재배를 하여 수확이 끝난 후 서로 가져다 먹으라니 처치 곤란이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집 것은 청소를 해 주고 누구 집은 안 해주면 입장이 난처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과유불급이나 과잉생산이나 그 말이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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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때문에 참외 값 뚝”…성주 참외밭 갈아엎는단다. 성주군 전체가 공급하는 참외가 전국의 70% 이상을 차지한단다. 참외를 재배하는 하우스나 논밭을 공중촬영 한다면 멋진 그림이 되고 장관일 정도로 성주군 거의가 참외 밭(하우스)으로 조성 되어 있을 것이다. 결론은 뭘까? 역시 과잉생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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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는 여름 한 철만 먹던 과일이었으나 이젠 한 겨울에도 먹을 만치 농법이 개선되었다. 사시사철 고가 차도 아래서 한적한 도로 옆에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성주참외’를 외친다. 먹고 또 먹어도 남아도는 게 참외다. 그렇다고 온 국민이 참외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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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잘되는 게 부럽고 배 아파 시작한 참외 농사는 이제 해 봐야 수지타산이 안 맞을 것이다. 결국 갈아엎을 수밖에. 타이밍이 절묘할 뿐이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려 준 한미양군이 국방부가 나아가 이 정권이 고마울 것이다. 고로 사드배치는 핑계일 뿐이다. 아직 배치도 않은 사드 때문이라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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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지막 결론을 내리자면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남 잘 해먹는 농사를 옆에서 지켜보고 배 아파 하는 것이다. 결국은 돈 좀 된다고 너도 나도 그리곤 원조, 진짜 원조, 진짜진짜 원조하며 박이 터지게 싸우는 민족. 이건 뭐…따지고 보면 배달민족이 아니라 사촌이 땅을 사거나 잘 나가면 배탈이 나는 배탈민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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