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무심히 말들 하지만,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는 게 있다. 적(敵)의 재산(財産)이라는 무시무시한 의미가 있는 주택을 두고 하는 얘기다. 즉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815 광복을 맞아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그들의 재산이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얼마 뒤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을 적산가옥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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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고지성을 지른 곳은 서울 종로구 적선동이다. 위치상으로 현 서울경찰청 인근에서 태어나 625 북괴의 남침으로 피난 간 곳이 경북 상주다.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다시 중학교 때 서울로 돌아와 터를 잡은 곳이 종로구 안국동이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는 호적정리를 하시며 지금은 없어진(?) 본적지(本籍地)를 안국동으로 하셨다. 그래서 나의 주민등록상 본적지는 지금도 종로구 안국동 xx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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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본적지 안국동 xx번지는 2층 목조건물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방이 양쪽으로 갈라서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또 양쪽으로 방이 따로 2개가 있었다.(원래 2층 전체는 통으로 되어 있었지만 방의 수를 널리려고 나중 문을 따로 해 단 형태.)그런데 2층 방은 소위 다다미(일본식 주택에서 짚으로 만든 판에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돗자리를 붙인, 방바닥에 까는 재료. 일본에서는 첩(疊)이라 쓰며, 포개어 겹친다는 뜻이다. 둘레에 선을 두르는 단[緣]을 붙여 만든다. 단은 명주 ·삼베 ·무명을 사용하며, 색은 감색 ·갈색 ·검정 등의 무지가 많으나 문채를 넣어 짠 것과 물을 들인 것도 있다. 단의 심지(芯地)로는 헌 신문지나 같은 색의 색지를 사용한다.‘지식in에서 검색)방이었다. 이게 한마디로 적산가옥(敵産家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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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이야 당연히 온돌이었지만 2층은 다다미 구조이기 때문에 겨울이면 사용불능이고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그곳에 친구들을 데리고 올라가 놀곤 했었다. 재미난 것은 우리 집에 친구(악동)들이 자주 놀러온 이유가 직선거리로 풍문여중. 고교가 200~300m 반경에 있었고 특히 2층 창문을 열면 아이들의 얼굴을 식별할 만큼의 거리에 덕성여자 중. 고교가 있었기에 가끔 그 아이들과 서로 괴성을 지르고 히야까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여담이지만 우리 집에 놀러 오려면 짜장면이나 아니면 최소한 만화 몇 권은 가져와야 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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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악동들의 놀이터 뿐 아니라 정면으로 선학원(禪學院)이라는 도량(道場) 정문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선학원, 불법(佛法)의 정통인 선리(禪理)를 탐구하고, 선풍(禪風)을 선양함으로써 불교중흥을 이룩하고자 만공(滿空)·용성(龍城)·혜월(慧月)·도봉(道峰)·석두(石頭)·남천(南泉)·상월(霜月) 등 여러 고승대덕(高僧大德)들이 중심이 되어 1920년 서울특별시에서 설립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서정희(徐正熙)·여운형(呂運亨)·신명균(申明均)·김법린(金法麟)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의 요람이 되었고, 광복 후 불교정화의 산실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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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할 일 없는 스님들이 한가롭게 노니는 장소인 줄만 알았는데 위와 같이 뜻이 깊은 장소인 줄 알고 난 뒤 우리 집 2층이 일제 강점기시절 독립투사들을 감시하기 위한 장소(하긴 그 일대에 우리 집 말고는 2층으로 된 적산가옥이 없었다.)가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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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를 가보면 특히 중남미 쪽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무엇인가 하면 영웅들의 동상들이다. 하늘 높이 서 있는 영웅들, 말을 타고 또는 창이나 칼을 고추 세우고‘도츠 깨끼!!!공격 앞으로..!!’하는 형상들도 많다. 그런데 그들이 영웅시 하는 동상들을 역사적으로 반추해 보면 자신들의 조상이나 종족을 괴멸시킨 인물들의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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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이다. 오래 된 성당이나 교회 또는 어마어마한 건축물들이 수백 년 전 그 영웅들의 시대에 축조 되었거나 대를 이어 현대까지 축조해 온 것들도 온전히 보전 되어 자랑스러워하고 심지어 어떤 것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고 또는 시도하고 있다. 알고 보면 저들의 조상이나 종족들이 정복자들로부터 채찍으로 맞고 피를 흘려가며 세운 건축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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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시절(김영삼 이야말로 진짜 수구 꼴/통이다.), 중앙청을 왜 허물었는지 나는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차라리 중앙청을 그냥 두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일본의 압제를 상기 시키고 교육 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 아닐까? 그런 맥락이라면 서울시청 본관은 왜 안 허물고 그냥 이용하는가? 그렇게 일본을 질시하고 미워하면서….하옅ㄴ 김영사ᅟᅳᆫ 지 모타리만큼이나 옹졸한 지도자였다.(옛 글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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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청와대 국민 개방에 ‘총독 관저’ 끄집어낸 비루한 역사관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2/08/03/Q22IXX72QBFYXI3YR5MI3VR5ZY/
위 칼럼의 첫머리는 <<<청와대 국민 개방을 조롱한 첫 문재인 정권 사람은 의전비서관이던 탁현민씨다. 그는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을 때도 ‘신민’들에게 돌려준다고 했다”고 소셜미디어에 썼다. 그들이 독점하던 청와대를 창경궁에, 국민에게 문을 여는 청와대를 동물원에, 그리고 윤석열 정부를 일제에, 국민 개방을 궁궐 모욕에 비유했다.>>>
그랬던 탁가 놈이 청와대가 국민 속으로 빠져들자 이젠 그곳이 지난날‘총독 관저’라며 일종의 친일을 상기하는 장소로 둔갑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의 잔재를 없앤다며‘중앙청’을 폭파시킨 옹졸한 지도자 김영삼을 다시 등장 시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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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가 새끼 하는 얘기라면 중앙청을 폭파 시킬 정도로 일본을 싫어한 자가‘총독 관저’로 들어가 5년을 산 것은 물론이고, 다음 정권을 잡은 오리선생 김대중은 또 그리고 지난 정권의 삽살개는 어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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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웃기는 개새끼는 바로 그 새끼“고딩 때 여중생을 먹었다는 놈, 몸을 기억하는 여자, 바나나를 먹는 여자, 콘돔을 싫어하는 여자, 그도 아니면 임신한 선생님”을 좋아 했다나 뭐라나 하는 변태새끼 탁가 놈이다. 그놈이 하는 말이 바로“청와대를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국민이 쓰면 일본의 잔재 즉‘총독관저’가 되고 삽살개와 그 아류 개새끼들이 쓰면 그냥 청와대냐? 야이! 변태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