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록대전(巨鹿大戰)이라는 게 있다. 진(秦)나라의 명장 장한과 초(楚)나라의 항우가 국운을 걸고 벌인 싸움이다. 과연 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항우는 천하 최강의 군대가 되었고 반면 천하 최강의 군대였던 장한은 절망에 빠지며 진나라는 망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 당시를 잠시 묘사해 보면, 항우는 본대를 이끌고 북상하고 있었지만, 전군이 도달하는 일은 아직 시간이 필요했고 거록은 오늘 내일 하는 상황. 우선 항우는 영포와 포장군에게 20,000명을 주어 서둘러 황하를 건너 거록을 구원하도록 명령했다. 두 사람은 즉시 부대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 거록에 도착했고, 바로 교전을 벌였다. 전력상 한순간에 승부를 낼 수는 없었지만, 조금 유리한 상태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하수 북쪽 강안에 진영을 만들었다. 초나라 군이 당도한 것을 본 진여는 안달하며 다시 한 번 구원을 요청했다.
항우는 진여의 요청을 듣자 이제 황하를 건넜는데, 건너고 나서는 타고 온 모든 배를 침몰시켰고, 임시로 세워둔 집과 가져온 솥과 시루마저도 전부 부셔버렸다. 초나라의 군대는 단 3일간의 양식만 지니게 되었는데, 여기서 죽더라도 돌아갈 마음이 없음을 보여주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고사가 파부침주(破釜沈舟)다. 파부침주는 그야말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돌아갈 배도 또 밥해 먹을 솥도 없는 처지 승리를 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을 작전(作戰)인 것이다.
배수진(背水陣), 회음후(한신) 열전에 나오는 한신의 정형 전투에서 유래되었다. 유방이 이끄는 전한 본군과 분리돼 북방의 제후국들을 평정하던 한신은 조나라에서 조의 재상 진여의 20만 병사와 대결하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 한신은 훈련도가 낮은 자국의 군사들을 분발시키기 위해, 일부러 강을 등지고 진을 쳤으며, 물러설 곳이 없는 공포를 느끼고 사력을 다해 저항하기 시작한 한나라 군대는 한신을 얕보고 공격했던 조나라 군대에게 승리했다.
그랬던 배수진이 이 땅에 와서 개피를 본 적이 있었다.
신립(申砬,1546~1592),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어린 시절부터 글공부 보다는 무예를 좋아했다고 전해지며 1567년(선조 즉위년) 22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전관을 거쳐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경력(經歷)을 지내고 진주판관(晉州判官)이 되었다. 온성부사(穩城府使)가 되어 북변에 침입해온 이탕개(尼湯介)를 격퇴하고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野人)의 소굴을 소탕하고 50여 명의 목을 베고 개선하였다. 이후 이탕개가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또다시 경원부(慶源府)와 안원보(安原堡)를 쳐들어오자 이를 물리치며 육진(六鎭)을 방어하는데 공을 세웠다. 1584년 야인을 물리친 공로로 함경북도병마절도사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 임명되어 충주로 내려가 방어선을 구축했다. 왜적의 수가 많고 대적하기 힘든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후퇴하지 않고 충주(忠州) 탄금대(彈琴臺)에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북상해오는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군사력의 열세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대군에 포위되어 패배하였고 많은 양민들이 학살되었다. 부하 장수인 김여물(金汝岉)과 함께 강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위와 같은 결과는 배수진의 전법을 오해(誤解)한데서 생긴 일이다. 조총의 위력을 과소평가 했거나 아니면 아예 몰랐거나. 총알을 피하려면 숲이나 바위 등 엄폐(掩蔽) 또는 은폐(隱蔽)물이나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해수욕장 같은 모래밭에서 배수진을 쳤으니 죽으려고 환장했거나 색을 쓴 결과다.
이준석, 與 향해 “후안무치…오매불망 ‘체리 따봉’이나 기다리길”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2/08/24/JIDABX3ECFFGROQLGN7WWDXBM4/
나는 요즘 이준석이 하는 짓을 보면 파부침주 뿐 아니라 더하여 배수진까지 치고 개GR하는 게 눈에 보인다. 파부침주나 배수진은 가장 악랄하고 독한 전법(戰法)이다. 뭐..어떤 전쟁이나 전투가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게 하나 없지만, 이미 예시했듯 두 가지 전법은 퇴로(退路)나 회귀(回歸)할 곳이 없다. 즉 이겨도 별 볼일 없고 지면 그대로 죽어 자빠지는 것이다.
거록전투와 배수진의 결과는 당장은 유리한 국면 아니면 국지전의 승리를 가져오는 악랄(惡辣)한 전법은 맞다. 그러나 그런 전법을 구사한 뒤끝은 비록 승리를 가져왔지만 그들 앞에는 죽음뿐이다.
거록전투에서 진나라 장한을 물리치고 승리한 항우이지만 결과는 그 전투에 화살 한 대 날린 적 없는, 아예 전투에 끼어들지도 않은 유방이 그 열매를 독식했고 결국 항우는 유방의 수하 장수인 한신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항우의 파부침주와 달리 배수진을 쳤던 한신은 상대가 비록 항우는 아니었지만 그것으로 승리를 거두었어도 결국 유방의 일족에게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하고 만다. 결국 승리의 기쁨은 잠시지만 그들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저 어린놈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글줄이나 안다고 개수작 부리지만 적수공권(赤手空拳)이다. 놈의 곁에 사람이 있어도 삼가야할 전법을 겁 대가리 없이 천방지축(天方地軸)날 뛰는 꼬락서니가 하도 한심해 해 보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