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이작(日出而作): 해가 뜨면 나아가 일하고,
일입이식(日入而息): 해가 지면 들어와 휴식하네.
착정이음(鑿井而飮):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
농경이식(農耕而食): 농사짓고 밥을 먹네.
제력하유어아호(帝力何有於我乎: )임금님의 힘이 어찌 내게 미칠 것인가.
위의 노래는 고복격양가(鼓腹擊壤歌)또는 격양가(擊壤歌)라고 하는 것이다. 배를 두드리고 땅바닥을 치고 박자를 맞추며 노래하는 것으로 태평성대를 묘사하는 노래다. 요(堯)임금은 천하가 정말 잘 다스려져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백성들이 살고 있는 거리로 몰래 나갔다가 어느 노인이 나무 그늘에 앉아 배불리 먹었는지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함포고복(含哺鼓腹)이라는 성어는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얘기다.) 위의 격양가 부르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자신의 선정(善政)에 만족하는 미소를 띠며 궁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조선 숙종임금 때의 일이다. 왕이 신분을 숨기고 어떤 초상집에 이르니 머리를 빡빡 밀은 비구니가 춤을 추고 노인은 통곡하는 광경을 보고 그 집에 들어가 사정을 묻자 노인이 말하기를, 자신의 마누라가 죽고 자신의 생일이 되었는데, 집안이 극빈하여 생일상을 차릴 수가 없자 며느리가 머리를 잘라 팔아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느리의 효행에 감동하여 울자,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드리려고 춤을 추었다고 하였다. 이 사연을 들은 왕은 크게 감동하여 즉시 그 집에 효부정문을 세우고 표창 하여 구제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제왕들이 평민들의 옷으로 갈아입고 시정(市井)을 돌아보는 것을 미복잠행(微服潛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무엇보다 민심을 살펴 정사에 반영하려는 것이다.“‘땡!’전 뉴스”라든가 시정잡배 같은 말씨로 아니면 온갖 쑈통을 통해 매스콤을 많이 타 쪽이 팔릴 대로 팔린 요즘 같이 미디어가 발달 된 시대에 미복잠행이라는 게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갑자기 남대문시장에 나타나 상인들과 환담을 나눈다든지 새벽의 환경미화원에 다가가 일이 끝난 뒤 막걸리 한 대포를 함께 한다든지 하는 게 현대판 미복잠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농번기에 수행원들과 함께 모심기를 한다든지 추수를 돕고 막걸리 한 잔에 파안대소(破顔大笑)하시는 모습의 미복잠행을 가끔씩 하신 것으로 기억 된다. 백성들의 의식주(衣食住)또는 생활상 죽 민생(民生)이 염려되어 일종의 사기진작용 대민서비스로 보면 될 것이다. 그 분들은 그 무엇 아니 어떤 지지나 팬덤을 위한 미복잠행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심 없는 오로지 민심을 밝히고 시정(市井)을 살피기 위한 행동이었다.
위에서 이미 밝혔지만 요즘 같이 미디어가 발달 된 시대에 미복잠행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최고지도자의 경호나 국가적 보안을 위해 순시나 순찰을 위한 그 지방이나 장소에 미리 선포를 하고 경호준비를 완벽히 하는 과정에서 이미 그 대상이 온다는 통보와 함께 지지자들의 환호를 부추기기 위해 미리 선전과 홍보를 하는 게 오늘날의 관습(慣習)이고 명분화가 되었다. 나는 이것 자체를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말 우연히 이준석 만났다” 김병욱이 올린 수해복구 사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0959
추석 연휴를 보내고 이 아침 위의 기사를 보며 울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져 이 썰을 푸는 것이다. 며칠 전 윤 대통령이 명동의 모처에서 배식 봉사를 위해 자신의 최애 음식 김치찌개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며“딴건 몰라도 김치찌개는” 명동에 분홍앞치마 尹대통령 떴다…양파 썰고 염도 측정기로 간 수시로 본 尹“이라는 기사에 지지율 까먹는 대통령이 너무 답답하고 아쉬워 육두문자가 섞인 표현을 했었다.
물론 그 글에 훨씬 많은 분들이 공감을 가지시고 동조를 해 주셨지만 그 반대로 정말 더러운 욕지거리와 가래침을 뱉는 자들도 꽤 있다. 다른 건 다 참겠는데… 나 같은 수구꼴통 소리 듣는, 어쩌면 자유민주주의 사상만큼은 국수주의(國粹主義)자라고 자부하는 나에게‘빨갱이’아니면 ‘민주당’오열이라는 등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아는 지인들께 늘 자랑하는 게 하나 있다. 내가 비록 국수주의자 이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어떤 한 사람의‘빠’ 또는 광신도는 절대 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혀 드린다. 물론 나도 한 사람을 지지하면 철저히 모든 것을 바쳐 지지 하지만 소위‘빠’ 광신도가 될 수 없는 것은 내가 지지하는 인물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또는 그녀를 왜 지지하는지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광신도가 돼 버리면 그 또는 그녀의 교조주의(敎條主義)에 빠져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맹목적 광신도가 되고 마는 것이다.
간단히 얘기하면 지금 전과4범 그리고 아직 몇 범의 전과(누범)를 쌓을지 모르는 이재명의 교조주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민주당과 개딸 그리고 양아치들이 그 예인 것이다.
내가 이 아침 다시 울화통이 터지는 것은 윤석열이 아무리 정치 초짜라지만 정말 저 정도로 초짜인지는 상상도 못했다. 더불어 윤석열의 주위에 저토록 인물이 없는가에 대해 열불이 나고 울화가 돋는 것이다.
내가 그날 명동의 사태(?)를 두고 한 얘기는 바로 저런 점이다. 기왕 현대판 미복잠행을 하려면 오만하고 건방진 저 어린놈처럼 했어야 했던 것이다. 수해를 입어 추석연휴고 뭐고 생각도 못하는 이재민을 한 번 더 보듬어 안을 수 없었을까?
명동의 배식은 대통령이 섹시한 앞치마를 갈아입고 자신이 잘 만든다는 김치찌개가 없어도 매일 매시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굳이 수도서울의 중심부인 명동에 가서 생색을 내며 지지를 호소할 필요가 있을까?
정작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할 포항 아니면 타 지역의 수재민을 위해 고귀 하디 고귀하신 대통령의 손을 내밀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에 육두문자를 좀 썼기로 벌써 형성된 윤석열의‘빠 또는 광신도’로부터 뭇매를 맞은 게 너무 화가 치미는 것이다.
족탈불급(足脫不及), 내게 욕을 한 너희들 눙까리엔 저런 게 안 보이니?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윤석열은 이준석 따라가려면 신발 벗고 쌍방울 달랑거리며 존나 뛰어가도 못 따라가는 게 안타까워 해 본 소리다.
근데 이 거 하나는 분명히 하고 싶다. 내가 아무리 윤석열을 졸라 패거나 욕을 해도 난 윤석열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놈(년)처럼 실망했다고 돌아 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지지 내내 잘못하면 개xx! 소xx! 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는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