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권위는 지들이 뭉개 놓고….

 

 

  • 국회의원은 국민(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런 만큼 그들의 권위는 대단해야 한다. 아니한 말로 그 지역의 대표자로서 그 지역 내에서는 대통령의 권위에 준(準)하는 권위를 부여 받아야 한다. 아니 그렇게 했다. 옛날의 국회의원이라면 그 권위가 하늘을 찌르고 나는 새도 떨어트릴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그 권위가 가을바람 낙엽처럼 땅에 뒹구는 신세가 된 것은 소위 전국구 또는 비례대표라는, 개나 소나, 어중이떠중이들이 생겨나면서부터 그리 된 것이다. 뭐? 청소부도 공돌이, 공순이도…(인격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정치(政治)라는 글자도 제대로 해석할 줄 모르는 인사들을 데려다 놓고 거수기를 만들면서부터 저희 스스로의 권위를 떨어트린 것이다.(박정희를 다 존중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정말 성질난다)

 

  • 내 기억으로는, 비록‘전국구 또는 비례대표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 또는 저들만의 권위 또는 위상 등 그 명맥이 숨넘어가는 노인네처럼 유지 돼 왔지만, 그 숨통을 결정적으로 끊은 인간이 바로 해골 이해찬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친구 노무현정권 때 국무총리로 부임한 뒤 국회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말 같지 않은 개소리 지껄이는 장면에서 당시 오늘날보다 더 작은 야당의원들이 불만을 표하자,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그야말로 전인미답(前人未踏) 아니 전대미문(前代未聞)이든가? 아무튼 불상사(不祥事)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인데,“국회연설 하던 인간이 갑자기 눙까리를 치켜뜨며‘조용해!’”, 그 참 이상도 하지 해골 선생의 이 한마디에 그 당시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놈들 바지나 치마에 오줌을 지렸는지 정말 조용해지더라고. 그게 오늘날 국회의원의 권위가 땅에 처박히고 가을바람 낙엽처럼 일반 대중의 발에 밟히는 단초(端初)이며 유래(由來)인 것이다.

 

  • 정권이 바뀌기 전, 전 정권‘주미(駐美)대사관 국정감사’때는 주미 대사라는 친구가 탈북자 야당 초선 의원인 지성호 의원에게 오히려“예의가 없다” “질문이 적절치 않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는 등 불량태도를 보이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정면을 주시하지 않고 시선을 엉뚱한 곳에 두거나 위아래를 두리번거리는 등 집중하지 않는 듯한 태도도 보이자 오죽하면 같은 당 소속인 송영길이 이 대사에게 “그러지 마라” “논쟁적으로 가지 마라” “고정하시라”며 여러 차례 주의를 줬다. 그런데도 이 대사는 “아니, 그게 아니라”며 계속 목소리를 높여, 위원들의 집단 항의를 받는 상황도 벌어졌었다. 이젠 국무위원도 아닌 일개 해외주재 대사 따위가 국회 알기를 개거시기로 알고 덤벼든다.

 

尹에 똑바로 앉으라던 박범계, 한동훈엔 “예, 의원님하라”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2/10/06/VDEDXOB7DZBNTAUZKNE6N6C3AM/

 

‘형’이라고 존칭해주던 분께“자세를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쳤던 박범계가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고 이번엔 한동훈 장관에게 여전히 질의에 응하는 자세를 가지고 시비를 건 모양이다. 더불어 아예“의원이 이렇게 물어보면 ‘예, 의원님. 그렇게 좀 해주십시오’ 하는 게 예의”라고 지적을 했다는 것이다.

 

뭘까? 국회의원은 도덕선생님이고 국무위원은 학필이인가? 아니면 명색이 국민을 대표하는 자들의 권위를 찾자는 것일까?

 

정말 안타깝다. 미리 얘기 했지만 그 놈의 권위라는 게 가을바람 낙엽 떨어지듯 떨어져 땅바닥에 굴러다는 것을 오가는 길손이 마구 밟고 훼손했는데 남아 있기는 한가? 그나마“오 헨리의‘마지막 잎새’”처럼 한 가닥 남은 것 마저 저희들이 뭉개 놓고 이제와 새삼 그놈의 권위를 찾겠다고 저토록 몸부림치니…

 

아그야! 권위를 찾으려면 니들부터 먼저 말버르장머리 고치고 니들부터 먼저 예의를 지켜야할 것이다. 단언컨대 권위를 찾는 길은 딱 하나 소수 정당이 되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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