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아주‘웃픈’ 과거사가 있다. 한 때, 큰 사업은 아니지만 나름 자그만 공장을 하며 제법 재미를 보고 있었다. 더 하여 어느 핸가 미국의 ‘빅 바이어(백화점)’로부터 의뢰받은(물론 미국의 그 상사로 보면 티끌 같은 존재이긴 하지만…)견본을 십 수차례 보이콧을 당한 끝에 드디어 합격통지를 받고 그 상사의 한국지사로부터 오더를 받게 된 것이다.
오더 시트를 받고 뛸 듯 기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오려는데, 지사장 양반이 열심히 해 보라는 격려와 함께“우리 회사와 거래할 때 유념할 일은, 거래가 계속 되면 성공하는 밴드(공급자)가 되겠지만 만약 어떤 문제로 우리와 거래가 끊기면 그 밴드는 망합니다.”그 말이 좋은 의미인지 그 반대인지 그 당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네~! 잘 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그 자리를 물러났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망하지 않도록 열심히 잘하라는 격려의 말을 약간 비틀어 얘기한 것일 수도 있고 거래에 방해가 되는 어떤 행위 특히 품질을 철저히 보장하라는 충고이기도 했을 것이고 어찌 생각하면 상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몇 년 간 신났었다. 주문도 폭주하고…주문이 많다보니 생산시설과 함께 고용도 널이고…그런데‘잘 나갈 때 몸조심 하라’는 아주 간단한 충고(금언)을 망각한 것이다. 제품 양산에만 바빴지 품질관리가 미흡했던 것이다. 두어 차례 경고를 먹고 몇 차례는 제품검사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선적은커녕 아예 폐기처분을 하기도…내수시장은 단 1% 없는 생산량의 60% 이상을 그 바이어로부터 수주했었는데 결국 오더가 끊기고, 끝내는 부도를 내고 길거리에 나 앉았던 뼈아픈 과거사가 있다.
당시 그들은 많을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의 기준만 통과하면 가격도 주문량도 충족시켜 주었지만, 여러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천착한 나머지 모든 것을 앗아가는 쓰나미가 몰려오는 줄 모르고 오만방자하게 까불다가 그런 뼈아픈 일을 당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그 미국 바이어는 내게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실수를 저질렀지만 몇 차례 경고로 기회를 주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경고를 깊이 받아들이지 않고 경시 했던 점이 나의 큰 패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그 바이어가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한 번 돌아서기 시작하자 잘 벼린 회칼로 회 썰어내듯 도려내는 냉정함 또한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읍소 했으나 이미 떠난 배고 버스였다)
위의 얘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비록 개인적인 얘기지만 조금 확대해석해 보자. 바이어라는 개인적 관계를 떠나 미국 또는 미국민으로 관계를 설정해 보자. 미국은 지구촌 모든 나라의 바이어다. 그런 바이어와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성공유무를 떠나 1차적으로 성공한 것이다. 그 나머지는 거래 대상의 마음과 행동에 달려 있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며 남북으로 갈렸으나 우리는 미국이라는 바이어와 거래를 터고 오늘을 영위해 왔으나, 북쪽은 어떠한가?
가장 비근한 예로 오늘의 중국은 또 어떤가? 죽의 장막으로 둘러쳐진 붉은 땅에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기회를 주었고 이젠 청출어람을 넘어 아예 자신들에게 시혜를 베풀어 준 바이어를 우습게 알고 맞장을 뜨겠다며 오두방정을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얘기다.
문제는 대한민국에 닥친 현실이다. 유능한 인재라고 새로 영입한 공장장이라는 개자식이 정품 양산할 생각은 않고 바이어가 원치 않고 공장의 현실에 맞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미 바이어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먹었음에도 공장을 말아 처먹고 길바닥에 나 앉을 짓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바이어는 자신들이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의 견본만 충족시켜주면 누구에게나 호의적이고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어의 눈에 벗어나는 날이면 그날로 냉정하게 안면몰수를 당하는 것이다. 대동아 전쟁의 원흉 일본이, 아시아 제1의 부국으로 성장했던 필리핀이, 자유 월남이…..자칫 문재인 당시의 우리가….
시진핑 모순에 ‘속병’걸린 중국 경제…장기집권 흔들릴 수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1710230002445
이와 같이 미국과 반목(反目)하고 안 망한 놈 있던가? “영불당두(永不當頭)”,오늘의 중국이 되도록 초석을 쌓은 덩샤오핑은 혹시 외교원칙을 후계자들이 제대로 해석하지 않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보고 말년에 영불당두(永不當頭)라는 유훈을 남겼었다. 영불당두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절대 전면에 나서지 말라`는 뜻이지만 덩의 속뜻은 절대 미국과 대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유훈인가?
솔직히 중국이 아무리 찧고 까불어도 미국과 반목하는 것은 결국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라는 바이어의 심사를 거슬리는 것은 역린(逆鱗) 즉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는 것과 다름 아닌 것이다. 속 된 말로 죽고 싶으면 무슨 짓을 못할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삼가고 삼갈지니라.
덧붙임,
일본을 보라. 지난날의 과오를 후회하고 반성한 끝에 지구촌 제2의 경제 부국으로 거듭 났으며, 나 또한 슬프고 뼈아픈‘웃픈’ 과거를 털어 놓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안정을 찾고 조용한 산골에서 노후를 넘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