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삼국지를 읽다보면 좌자(左慈)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삼국지 매니아 정도는 되어야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다. 자는 원방(元放). 도호는 오각선생(烏角先生)으로 조조와는 같은 고향이다. 역적 조조가 스스로 위왕(魏王)이 되자 동오의 손권은 노랗게 잘 익은 귤을 헌상한다. 귤을 지고 가던 짐꾼들은 길에서 우연히 애꾸눈 도사 좌자를 만나게 되고 좌자는 그 많은 귤 상자를 짐꾼들을 대신하여 혼자 짐을 져 준다. 조조의 진영에 도착한 좌자는 귤 상자를 조조에게 바친다. 조조가 탐스런 귤을 집어 고 까보니 모두 빈 껍질뿐이다 .좌자의 요술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후 좌자는 조조를 마음껏 농락하고 조조를 골려주며 좌자는 유비에게 양위 할 것을 권한다. 좌자는 도술(道術)가이자 우국지사였던 것이다. 요즘 우리의 현실에 이런 인물이 없나?
두 번째 이야기.
남귤북지(南橘北枳)또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잘들 아시는 얘기지만 귤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듯이 인간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춘주전국시대 제자백가 중에 안자(晏子. 안영)라는 이가 있다.
안영은 제나라의 영(靈)· 장(莊)· 경(景)의 3대를 섬기면서 근면한 정치가로 국민의 신망이 두터웠고, 관중(管仲)과 비견되는 훌륭한 재상이었으나 선천적으로 신체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다. 키가 아주 작은데다 절름발이였다. 비록 그런 핸디캡이 있으나 왕들을 모시고 정사를 잘 돌보아 중원에 그 이름을 파다(播多)하게 날리자 그를 신망하고 따르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였다. 어느 해,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했다. 안영이 너무 유명하니까 만나보고 싶은 욕망과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은 심술이 작용한 것이다. 수인사가 끝난 후 영왕이 입을 열었다.”제(齊)나라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안영이 답한다.”사람이야 많이 있지요.”,”그렇다면 경과 같은 사람밖에 사신으로 보낼 수 없소?”안영의 키가 너무 작은 것을 비웃는 영왕의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꾸하였다.”예, 저의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뽑혀서 초나라로 왔습니다.”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격의 대답이었다. 그때 마침 관리가 죄인을 끌고 지나갔다.”여봐라! 그 죄인은 어느 나라사람이냐?””예, 제(齊)나라 사람이온데, 절도죄인입니다.”초령왕(楚靈王)은 안영에게 다시 물었다.”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하오?”하고 안영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다.
안영은 다시 초연한 태도로 말하는 것이었다.”강남에 귤이 있는데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齊)나라 사람이 제(齊)나라에 있을 때는 원래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랐는데 그가 초(楚)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 역시초나라의 풍토 때문인 줄 압니다.”그 기지(機智)와 태연함에 초령왕은 안영에게 크게 사과를 했다.”애당초 선생을 욕보일 생각이었는데 결과는 과인이 욕을 당하게 되었구려.”하고는 크게 잔치를 벌여 안영을 환대하는 한편 다시는 제나라를 넘볼 생각을 못했다.
세 번째 이야기.
중국 복건성(福建省)에 장주(漳州)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첫 번째 삼국지이야기에 나오는 손권의 영토였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강남(江南)이란 우리의 부동산 투기의 대명사인 그런 강남이 아니라 양자강(楊子江)이남을 두고 강남이라 하였고, 안자가 초령왕의 코를 납작하게 했던 초나라가 지금의 복건성 일대도 포함되었으니 남귤북지(南橘北枳)또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가 태동된 것이다. 각설하고….
중국에는 나의 보따리장사파트너가 꽤있다. 그 중 한 친구는 내가 가기만하면 꼭 여러 종류의 과일을 미리 준비해둔다. 그러지 말라고 여러 차례 부탁을 했지만 여전히 과일접대(?)는 계속된다. 그러한즉 성의를 봐서라도 아니 먹을 수가 없다. 여러 과일을 이것저것 많이 먹고 상담을 끝내고 일어서면 잔뜩 실어 보낸다. 호텔에서 먹으라는 뜻이다. 또한 성의를 이기지 못해 가져오긴 하지만 언제나 퇴방(checkout)할 때는 그 호텔 복무원들 차지다. 어떤 과일은(한국에 없는….)욕심이 나서 한국에 좀 가져오고 싶지만 나라법이 이를 허용하지 않으니 안타깝게 버리고 온다. 그 중의 하나가 아래 그림의 과일이다.
<사진>
과일 모양이 귤처럼 생겼기에 이름을 물어 보았더니 미깐(蜜柑:귤)또는 쮸즈(橘子:귤)라고 하기에 미심쩍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지식 있게 생긴 어떤 내방객이 친절하게 서유(西柚)라고 적어 준다. 서유라….???서양柚子라….???아무튼 크다. 헨드 볼 공보다 더 크다. 어제도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이놈을 워낙 좋아하는 걸 안다)여러 개를 사두고 가져가라는 걸 하나만 가져왔다. 바로 이놈이다. 오렌지와 비교해도 워낙 크다. 호텔에 돌아오니 룸서비스로 과일이 놓여있다. 그놈과 다시 비교해 본다. 사진 중 빨간 놈은’자두’다. 중국은 땅이 넓어 여름과 일을 한 겨울에도 먹는다.
마지막 이야기:
제주에서의 1달 살이를 통해 이곳으로 이주할 계획(?)까지 세우고 온 지 보름째 이다. 하루10만원 한 달 300만원이지만 관광철도 아닌 겨울철이라는 걸 강조해서 250만원에 결정을 보고 보름째 지냈지만 역시 생각보다는 이곳으로의 이주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를테면 벌써 진력이 난다. 앞으로 보름을 더 버텨야(?) 하는데 걱정이다. 마누라에게 실토하면 진득하지 못하고 엉덩이 가벼운 티낸다고 지청구 들을 게 분명하다. 그건 그렇고…
지금 이곳은 명성에 걸맞게‘귤’천지다. 수확기이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귤이 넘쳐난다. 심지어 일반가정에도 한둘 내지 너댓 그루의 귤나무에 마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꼭이 따먹지 않더라도 눈요기로도 충분할 만큼 지천이다.
가던 첫날부터 머물고 있는 숙소의 승강기 앞에 가지런히 커다란 귤 상자에 귤이 잔뜩 담겨 있다. 누군가 귤을 사서 옮기려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귤 상자와 귤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래도 무심히 보냈는데, 그 귤 상자와 귤이 오늘의 썰 소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큰 상자의 귤은 상해가고 있다. 그 상황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저 귤은 아마도 빌딩 주인이 드나드는 내객을 위해 마련한 것’일 거라고 생각이 미친 것이다. 아마도 틀림없는 추측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좀 아쉽다. 벽에“누구든 맘 것 드세요~!”라는 쪽지라도 붙였으면 저렇게 맥없이 썩어가지는 않을 텐데….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우리의 민도(民度)가 많이 높아졌구나… 하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 나라는 더러운 정치만 빼면 살만한 나라가 분명하다. 이 정도면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심는다고 탱자나무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대한민국 만세다!!
아니 대한국민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