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용서와 화해 그리고 양보(2부)
염소와의 한 판 싸움
(읽으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제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전재(轉載)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이런 청정 마을에 염소를 기른다는 소문이 났던 것은 4~5년 전이었고 또 그 사이 코로나 팬대믹이 발생하며 단속(?)을 하지 못했던 것인데… 저는 먼저 마을 입구에 염소를 기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솔직히 설마했습니다. 그리고 들리기에 몇 마리 되지도 않고 가끔 마을 행사가 있으면 염소 한 마리를 희사하기도 하며 다 잡아먹으면 더 이상 기르지 않는다기에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던 것입니다. 그랬던 염소 축사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오늘 이 자리에 모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3년 만에 열린 면민체육대회)면민체육대회 때 였습니다. 우리 마을 코너에서 저는 여러분께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염소가 20마리에서 40마리로 널어 났다는..”말씀들을 제가 들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처음 몇 마리 안 된다고 할 때 보다 강력한 반대나 성토를 했어야 했지만, 마을 어르신들게 염소 불고기를 한 턱 내기도 하는 모습에서 반대나 성토를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금 먹은 놈이 물 킨다는 얘기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염소를 기르는 이x숙씨가 염소를 기른다는 소문이 들리던 그 해부터 마을부녀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오늘까지 마을 어르신들을 섬기는 모습과 더하여 이런저런 마을 행사에 적극 참여 하며 봉사 하기에 차마 더 이상 달다 쓰다 말을 못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지난 토요일 마을부녀회에서 논산 딸기밭 체험 겸 야유회를 다녀오시던 날이었습니다. 야유회를 주최했어야 할 부녀회장 이x숙씨는 야유회를 가지 않고 야유회를 마치고 돌아오던 부녀회원 중 몇몇이 마을 길을 들어서던 버스 안에서 아침에도 없던, 기존 염소사육장의 두 배는 됨직한 새로운 축사가 하루 만에 지어진 것을 목격했다는 제 집사람의 전언을 들었습니다. (사실 마누라는 현재 노인회 부회장이다. 마을에서 나 더러 어떤 것이 되었든 마을의 임원을 맡아 달라는 요청에 나는 게을러서 못하고, 나 대신 마누라를 노인회 부회장으로 앉혀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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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다 관두고 저는 마누라의 그 전언에 어둑어둑한 그 시각 일부러 그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놀라고 분노하고 말았습니다.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 자리에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야유회를 떠나기 전날 부녀회장 이x숙씨는 저희 집으로 직접 생산한 청계란 한 판을 가지고 와 드시라며 주고 갔습니다. 그 청계란을 이미 다 먹었으니 되래 반납할 방법도 없고’이 노릇을 어쩌나?‘라며 그 자리에서 단순하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감히 표현합니다마는“저년이 저러려고 그동안 그토록 싹싹하고 붙임성 있게 마을에 봉사하고 적극 참여했던가? 저년이 어쩌면 저토록 간교할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미치자 화가 났던 것입니다. 더구나 부녀회장의 염소 축사가 저렇게 널어 나고 커질 동안 마을의 누구도 질책하거나 관여하는 분이 안 계심에 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저는 그 밤 늦게까지 마누라와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마을을 떠자‘ 까짓 마을을 떠나면 더러운 꼴 안 볼 것이니 우리가 떠자. 우리말에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떠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인터넷으로 또 인근의 부동산과 봉양읍과 제천 충주의 몇몇 부동산에 집을 내 놓았습니다. 이 마을이 싫으면 내가 떠나야지 하고 말입니다. 여담입니다마는 제가 이곳에서 10여 년을 살고 보니 이제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 겨울철 이곳이 너무 추워 진력도 나던 중이었습니다. 수 년 전부터 제 집을 7.5억에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 가고 제 값 받으려니 매매가 안 될 것 같아 2억 5천을 깎아 5억에 내 놓으니 금방 팔릴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7~8명 다녀가기도 했고..(지난 얘기지만, 유튜브에 올린 집을 많이들 보러 오신다. 그 중 두 분은 계약을 하자며 했지만 그리 할 수 없었다) 집이 팔리면 이사 갈 곳을 물색해야겠지요? 여주나 용인 쪽으로 갈 생각으로 검색을 해보니 그 돈으로는 집은커녕 땅 몇 백평 사기도 벅찼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죽어나사나 이곳에서 살다가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몇몇 이웃분들이 저희가 이사 가면 자신들도 떠나겠다며 절대 이사 보낼 수 없다며 호소(?)도 해 오시기에 못 이기는 척 눌러앉기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주민 여러분! 지금까지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이 마을을 청정 마을로 만들기 위해 8천여만 원을 투입했습니다. 지금 저희 집터와 밭이 약1,300평입니다. 이 땅도 간수를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저 위의 축사를 살 때 제게는 땅이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 땅을 취득한 후 필요한 사람에게 시유지를 무상으로 드렸습니다. 우선 노인회장 이x화씨에게 650여 평을 분할 해 주었고 최x애씨에게 100평을 분할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땅은 관리가 안 됐습니다. 워낙 제가 전문 농사꾼도 아닐뿐더러 몇 해 농사(고구마. 콩. 감자 등)를 지어 보았지만 농자금과 인건비만 수백만 원 들고 소출은 그 반의 반도 얻을 수 없어 몇 해를 현 이장의 4촌에게 무상으로 대토까지 시켜왔던 것입니다. 결국 이장 4촌도 몇 해 이용하다가 그만두며 그 땅은 황무지로 변해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분은 아십니다. 이 마을 1반 반장인 제 처이질 조카 이x일 아시죠? 제가 관리가 안 되는 너른 땅을 가지고 있을 수 없어 작년 그 아이에게 4천만 원에 판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이 친구가 저 보다 더 그 땅의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여름 장마철에 그곳의 흙이 많이 떠 내려 갔습니다. 그게 안타까워 흙8만 원 30차 분 240만 원 그리고 평지 작업용 중기대금 50만 원을 제가 보조해 주었습니다.“이 땅 꼬라지가 이게 뭐냐?”며 지청구를 해가며 보조를 해 주었답니다.
그렇게 해 주었음에도 지난 가을비에 수로가 막힌 것을 돌보지 않았고 또 보강한 흙이 떠 내려 간 것을 알았을 때’x일’이에게 정말 화가 났습니다. 제대로 관리 좀 하라며 싸게 넘겨 준 땅을 그 따위로 황무지를 만들었다며 1천만 원 계약금 조로 받았던 금액 그 날로 되돌려 주며 그 땅을 다시 빼앗(?)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