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公僕)을 성토한다.
내가 선거(투표)라는 것을 머리털 나고 처음 겪은 것은 초등학교 2년 때던가 3년 때였다. 1955년에 입학을 했으니 확실히 419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일일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춘궁기라며 가파른 보릿고개를 넘겨야 한 해를 생존할 수 있는 지금 생각하면 턱도 없는 처참할 정도로 가난한 시절, 그런 가운데 우리 집은 더 가난해야 했다.
아버지는 선천적으로 약골이셨다. 즉 농사를 지을 땅도 없지만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있으셨다. 625사변으로 향리인 경북 상주로 피난을 하셨지만 그 몸으로 하실 일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서울의 하급심 지방법원 서기로 계셨기에 행정적인 업무는 능히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도 피난지의 상주 읍사무소 임시직으로 계시며 매월 받아오시던 급료가 1,000환(화폐개혁 전)이었다.(그 당시 물가수준은 모르지만 아버지의 1달 급료가 천환(1000)이었던 것만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여담이지만 상주 읍사무소 근처 서문동(물론 지금도 있겠지만..)에 살며 외상 쌀가게가 있었고 때 꺼리가 떨어지면 그 쌀집에서 보리쌀 한 봉지라도 외상으로 가져올 때는 내가 다녔다. 차마 그 부끄러움을(외상 보리쌀 달라며 기어드는 목소리로…)어찌 이 자리에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해 집안에 양식이라도 좀 보태실 요량으로 굳은 마음을 잡수시고(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오늘날로 치면 이장(里長) 즉 구장(區長) 선거에 출마를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쟁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예닐곱 분이 출마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난 그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현장에 있었다. 결론은 낙선(落選). 그것으로 비록 보리밥이지만 혹시라도 쌀알이 섞인 보리밥을 먹을 수 있을까 했던 염원이 깨진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지명이든 선거든 국가의 녹을 먹는 자들은 그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내 기억으로 당시 구장은 국록(國祿) 대신 그야말로 마을 주민들의 추렴으로 1년 치의 새경을 받았다.
여기서 잠시‘새경’이라는 단어를 잘 모르시는 젊은 분들을 위해.. 새경이란 사경(私耕)이 변한 단어이다. 사경은 원래 지난날 토지는 있으나 농사를 지을 수 없거나 또는 그 양이 너무 많아 머슴(직원)에게 경작을 시키고 주는 1년 치의 연봉이었다. 상. 중. 하를 따져 그 연봉이 정해 지는데 따지고 보면 사경이야 말로 월급이 아닌 진정한 연봉의 개념이고 효시인 것이다. 특히 당시 새경을 받는 머슴들은 주인집으로부터 숙식까지 제공을 받았다. 이런 새경을 주기 아까운 주인들은 아예 싹이 있는 젊은 아이를 데려다 키우며 결국 딸과 혼인까지 시키는 경우를 데릴사위라고 하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지독한 노동력착취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과정을 아주 잘 그린 게 김유정의‘봄봄’이라는 단편소설인 것이다.
여기서 굳이 마을 구장에게 새경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머슴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결국 마을 주민들의 추렴으로 주어지는 급료이기 때문에 그리 표현한 것이고 구장 직책이라는 게 사실은 주민들과 관(최소한 면 단위)에서 행정적인 매개 역할을 하기에 준공무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당시의 구장님들은 정말 할 일이(전쟁 끝난 지 얼마지 않았으니까)엄청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야말로 주민들의 심부름꾼이었다고 기억된다. 공복(公僕), 어쩌면 이 단어가 가장 어울리던 직이었다.
공무원을 우리는 공복이라고 부르지만 솔직히 오늘날은 공복이 오히려 주인 행세하는 더러운 세상이 되지 않았던가? 알량한 권력으로 국민을 오히려 부려 먹으려는 더러운 사회, 선출직 공무원 특히 정가에 진출했거나 어슬렁거리는 개자식들 일단 선출되고 나면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고 껍데기를 벗기려는 개새끼들. 쩐대로 저희 놈들의 권력을 굳건히 하려는 개자식들.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전을 사들이고 팔고 시간이 나면 그 동전으로 딸딸인지 짤짤이를 치는 개새끼. 이런 개새끼들을 성토하려면 천일야화를 쓰고도 남을 것이다. 아이고! 아이고! 이 아침 갑자기 흥분이 고조 되었다.
그런데 준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의 이장 예우(?)는 어떨까? 솔직히 언제부터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요즘 이장들에게 매월 40~50만 원의 활동비(급료가 아니라니…)가 지급되는 모양이다. 어제도 얘기 했지만‘마을의 임원직은 봉사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정도면 이미 봉사직이라고 할 수 없다. 더하여 이장직에 있는 자는 그 자녀들 고등학교 수업료 면제 대학은 입학금인지 수업료인지가 면제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죽여주는 복지(福祉)혜택이다.
문제는 이런저런 복지와 지급되는 활동비가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는 것이다. 이런 복지제도를 만든 개새끼들이 정치권 개새끼들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한마디로 票퓰리즘의 극치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발설하는 이유는 이 정도로 혜택을 받으면 이장이라면 청정마을에 염소사육을 처음부터 막아야 했다. 처음부터 이런 사달이 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장과 노인회장이라면 이 마을의 최고직 준공복이고 지도자인 것이다. 물론 대동계장이라는 특수 임무를 맡은 인물이 있지만 대동계장은 마을 사람들이 선임하고 지방자치나 국가에서 관리를 않기 때문에 그들은 열외이다. 그럴지라도 우리 마을은 노인회장이 대동계장도 겸임하고 있기에 그가 오히려 이장보다 더 마을주민에게 살갑게 대해야 함에도 그런 사달을 불러온 주인공 되고 말았기에 이 자리를 빌어 성토하는 것이다. 각설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