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자를 박대하거나 버리면 안 된다.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혹하게 버린다는 뜻으로‘토사구팽’이라는 문자를 많이 쓰지만, 사실 이 성어의 진정한 의미는 가해하는 자가 먼저 욕을 먹는다. 상식적으로 인두겁을 쓰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컷 부려 먹거나 단물 빨아먹고 상대를 내 치는 게 인간으로 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팽(烹)을 당하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죽을 둥 살 둥 신명을 바쳐 어떤 일을 성사하거나 시키는 대로 했는데 졸지에 쫓겨난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고 배신감을 느끼겠는가? 아예 배신감도 못 느낄 정도로 출기불의공기무비(出期不意攻期無備)하는 식으로 싹을 잘라내지 않는다면 배신감은 분노로 변하고 보다 큰 배신을 도모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래 얘기는 토사구팽과는 약간 다른 의미의 얘기다.

초원왕 유교(劉交)는 한고조 유방(劉邦)의 막내 동생이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고 인재를 알아 봤다. 그의 밑에 목생(穆生)이라는 재사(才士)가 있었다. 유교는 그를 몹시 아껴 예로써 대했다.

 

그런데 목생은 술을 마시지 못하고 안주 발만 받는다. 무슨 회식이나 연회를 베풀어도 목생은 저 끄트머리에서 대가리 푹 숙이고 열심히 안주만 작살낸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술은 술이되 단술인 예주(醴酒: 甘酒라고도 함)를 늘 준비해서 대접했다.

 

목생을 그렇게 아끼고 예로 대했던 초원왕 유교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죽고 왕위를 물려받은 그의 아들 유무(劉戊)가 처음에는 그에 대해 신경을 써서 단술을 준비하여 접대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자 단술 준비하는 일을 소흘히 하여 회식이나 연회가 있어도 목생을 위해 따로 단술을 준비하지 않았다.

 

어느 날 연회석에서(물론 감주가 없는…)목생이 조용히 일어나 물러나며“이제 나도 떠날 때가 왔다. 단술을 내놓지 않으니 임금이 나를 잊었음이 아닌가.” 그리고 보따리를 싸서 장양이 적송자를 찾아 나서듯 조용히 떠났다.

목생이 유무 막하에서 물러나고 얼마 후 유무는 신하를 죽이고 악행을 일삼다 전쟁에서 패해 자결했다. 이 일로 생긴 고사성어가‘예주불설(醴酒不設)’이라는 성어다. 각별하게 대하다가 후에 박대하는 것을 의미는 말이다.

또 다른 얘기 한 토막

5-60대 이상 이라면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학창시절 단체영화라는 것을 관람했었을 것이다. 요즘 같지 않은 시대에 단체 영화 관람은 축제였다. 중학교1-2학년 때이던가? 소위 그 단체 영화 관람을 했는데,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국제극장(지금의 동화 면세점)으로 갔었다. 한 갑자가 넘었지만 어째서 하고많은 영화 중에 이 영화 제목이 뚜렷이 기억되고 심지어 주인공에 캐스팅된 배우까지 기억이 되는지 모르겠으나‘애란(愛亂)’이라는 영화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진규 선생과 박노식 선생이 주연한 영화로서‘인조반정과 이괄의 난’을 다룬 영화였다. 김진규 선생의 역할이 이괄의 난을 평정한 장만(張晩)이었는지? 난을 일으키게 원인 제공을 한 김류(金瑬)였는지….기억이 안 나지만 박노식 선생의 역할은 분명히 이괄(李适)이었다.

 

영화를 볼 당시 인조반정과 이괄이라는 인물이 누구이며 또 누가 선(善)이고 악(惡)인가를 가릴 여유도 필요도 없었다. 영화란 언제나 그렇지만 역사적 고증보다는 흥미 본위로 만들어져야 흥행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대본과 구성이 이미 선악(善惡)을 구분시켰고 악역(이괄: 어쨌든 난을 일으키고 물의를 일으켰으니까)을 맡았던 박노식 선생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 후 상급 학년으로 올라가고 역사 시간에 인조반정이 나오고 이괄이라는 인물에 대해 좀 알고부터 오래전 보았던‘애란(愛亂)’이라는 영화를 곱씹어보며 나 스스로 이괄에 대한 재조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래서‘애란(愛亂)’이라는 아주 오랜 추억의 영화가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이괄은 야망 있는 무인이었고 무인이면서도 문장과 필법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가 인조반정에 가담한 것도 그의 사람 됨됨이를 안 이귀와 김류의 권유 때문이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던 날 반군은 홍제원에 집결하기로 했는데 대장인 김류가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누군가의 고변으로 국청을 개설하고 반군을 다스린다는 소문에 군사들이 크게 동요하여 지리멸렬하려는 때, 이귀의 부탁으로 김류 대신 대장이되어 군을 정비하고 군기를 확립하여 인조반정을 성공시켰다. 당시 반정에 성공한 이괄은 김류의 우유부단한 행동에 반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반정이 성공한 후 논공행상이 당연히 따를 것이고, 혼돈에 빠진 반정군 대장이 되어 수습하는 등 공이 가장 컸음에도 그는 공2등에 제수되고, 그것도 중앙관직이 아닌 평안병사 겸 부원수로 임명되어 국경 변방 지역으로 밀려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고 이것이 곧‘이괄의 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이괄을 단순한 반역자로 몰았던 위정자들의 조작이라는 설이다.(이하 궁금하신 분은 이괄의 난 검색해 보시압)

 

김태우 강서구청장, 구청장직 상실에 “조국이 유죄면 나는 무죄다”

https://biz.chosun.com/topics/topics_social/2023/05/18/2A4LOL6DQJHPHPTMJRRZLRLKNU/

김태우 강서구청장, 구청장직 상실에 “조국이 유죄면 나는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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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강서구청장, 구청장직 상실에 “조국이 유죄면 나는 무죄다”
김태우 강서구청장, 구청장직 상실에 조국이 유죄면 나는 무죄다 대법 집행유예 확정되며 구청장직 상실 조국

 

긴 얘기 하면 잔소리고 또 조디 아프다.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킨 특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김태우”다. 특별히 전면에 나서서 전쟁(?)을 치르진 않았지만 삽살개 정권의 부정. 비리. 부패를 공익 신고라는 이름으로 국민과 사회에 알린 게 동기와 원인이 되어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자를 국민에게 각인시키 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김태우가 윤석열 당시 총장을 돕겠다고 또 추대하겠다고 한 행동은 아니다. 따라서 직접적 공헌(貢獻)을 하지 않았지만 촉발(觸發)시키는 계기는 100%다.

 

그는 공익신고자로 등록된 후에라도 윤석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생색을 내지 않았다. 다만 지난 총선에 당의 보호 아래 출마했지만 결국 고배를 마시고 그보다는 낮은 단계의 구청장으로 대민 봉사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결국 이번 판결로 낙마하게 되었다.

 

물론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저런 심판을 내린 사법부의 판새 새끼들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놈들이 선점하고 심판을 한 것이다.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심판이다.

 

그는 첨부터 공이 있다하여 예주(醴酒: 단술)를 원하지도 1등 공신이지만 그 공을 앞세워 관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공익신고자의 지위에서 그가 직접 이루어낸 선출직 공직에 잔류하기만 바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울어진 운동자의 심판 새끼들이 그의 지위를 빼앗았다면 이제 윤석열 정권이 나서야 한다. 위인설관(爲人設官)까지야 바라지 않겠지만 정무직 한 자리는 마련하는 게 인지상정이고 예의이고 도리(道理)가 아닐까? 그러므로서 향후 또 다른 정당하고 의로운 공익신고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말 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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