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우(이하 K)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작년 봄인가 그랬다. 아니 어쩌면 좀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일단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먼저 매입한 후 이곳저곳 직접 수리 또는 리모델링을 한다며 매 주말 이곳을 드나들었으니 좀 더 전일 수도 있겠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원래 살던 곳이 양산이란다. 그와 첫 대면에서 그가 양산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를 했다기에 다짜고짜“왜? 개버린 늠이 싫어서요?”하자, “무슨 말씀인지….”한다. 그래서 덧붙이기를“삽살개를 모르십니까?”했더니, 역시“…”아차! 내가 실수했음을 바로 직감했다.‘이 사람 정치와는 무관한 사람이다’라고….역시 그 후로 오늘까지 K아우를 대할 땐 정치 얘기는 절대 함구다.
부산 모처의 중소업체 임원으로 있다가 작년 7월에 정년퇴직을 하고 완전 이주를 하며 지금은 천여 평 자신의 밭에 사과나무 묘목을 심고 영농을 제대로 해 보겠다고 농민학교 또 단체에 가입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찌나 열심인지 보통 6시면 서둘러 자신의 과수원(?)에서 일을 한다. 오늘도 좀 전 과수원에서 벌써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는 싹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주 전 그들 내외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먼저 그들을 찾아갔다. “혹시 마을에 대해서라든가 무엇이 되었던 협조가 필요하면 나를 찾아달라며 우리 집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이곳의 유일한 2층집이 우리 집이라며 친절히 안내를 했지만 이주해 오고 나서도 단 한 번도 나를 찾은 적은 없었다.
그네가 이주를 하고 보름 뒤쯤이던가? 내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아마 그때가 중복이었던 것 같다.)열었었다. 대충 기억하기로,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윗집 최공 내외, 울 건너 이PD내외, 전. 현 이장 내외, 바로 옆집 문샘 내외, 뒷집 이웃 김 사장(평택에서 공장을 하는…)내외… 삼겹살이 막 익어 가려는 즈음 문득 K내외가 생각났다. 그래서 젊은 이장에게 빨리가서 그들을 모셔오라고 해서 그들도 동참을 하며 전부는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과 얼굴을 익혔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나는 가끔 새로이 이주해 오는 양반들을 이런 식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소개를 시킨다.)
아무튼 그 이후로 K 부부는 내 집에 자주 드나들었고 식사도 자주 함께 하다가 아예 호칭이 형님 아우, 형수님 계수씨, 언니 동생으로 바뀌었다. 내외가 정도 많고 어찌나 살가운지 어떨 땐 아침저녁으로 빤히 보며 안부를 묻고 주고받기까지 한다. 솔직히 내 육친 동생과 형님이랑 이랬던 적이 없었다. 아마 그래서 이웃사촌이 멀리 떨어져 있는 육친보다 더 낫다고 하는 것인가 보다.
이토록 K네와 가까이 지내게 된 결정적 사건(?)이 있었는데… 작년 그러니까 삼겹살 파티가 있은 얼마 뒤 누군가가 K부부가 ‘코로나’에 동시 감염이 됐다는 것이다. 보건소와 시에서 들락거리고… 전화를 해 보니 꼼짝할 수 없지만 관에서 꼼짝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날 마침 우리 부부는 충주에 있는 某마트로 시장을 보러 가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다. 마트에 도착한 마누라는 우리가 필요한 반찬을 똑같이 두 쌍을 카트에 싣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라는 나의 질문에”K네 부부가 꼼짝을 못 하는데…“라는 것이다. 우리 마누라 자랑이 아니라 이럴 땐 정말 현명한 아내다.
그렇게 보아 온 시장 꺼리는 당연히 K네 현관문 앞에 전달되어 졌고, 그렇게 무사히 코로나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K부부는 그 후로 아예 우리 부부를 형제자매 관계를 넘어 그 이상 부모 모시듯 한다. 정말 그러지 말래도.. 아니한 말로 정말 숟가락 하나 더 놓은 것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