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악!! 내 복숭아. 명이나물. 대파(2부)
이번 캐나다 한 달 체류하기 위해 공항까지 이동 수단이 마뜩하지 않다. 충주에서 버스로?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 그렇담 내 차로? 더욱 아니다. 한 달여를 어찌 주차장에…택시를 알아보니 편도 30만 원을 달란다. 왕복 60만 원…OK 정했어~~!!
어차피 택시로 정하고 나니 K 아우가 머릿속에 맴돈다. 아직 수입도 없을 터…. 택시비를 K아우에게 주기로 한다면 쬐끔이나마 보탬이 안 될까? 하는, 이웃 사랑의 정말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출발 2~3일 전 그 얘기를 했다. ”혹시 인천공항 구경해 본 적 있었나?“없단다. ”잘됐네! 인천공항까지 우리 태워 주고 공항 구경 한 번 해 보지..??“ 당연히(?) OK란다.
사실 내 생각엔 공항 도착 이후 여행용 가방을 카트에 싣고 K의 호주머니에 60만 원을 주려고 봉투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그래봐야 왕복 휘발유, 고속도로비 등 크게 이득 될 것도 없겠지만…어쨌든 공항 도착 후 계획대로 짐 가방을 카트에 옮겨 실은 후‘빠이 빠이 잘 다녀오세요. 잘 있어!’라며 인사를 마친 후 준비한 봉투를 슬쩍 호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이게 뭡니까? 이러시면 형님 안 봅니다. 어쩌구 저쩌구“ 그렇다고 내가 질 손가? 억지로 그의 호주머니로 그 봉투를 밀어 넣고 카트를 끌고 로비로 들어서는 순간”형님! 이거 받으이소~!“라며 봉투를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횡 하니 달아난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그 봉투는 지금도 내 수중에 있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본 건 아니지만, 초봄부터 파종에 모종을 거듭한 문전옥답을 돌아보니 작물들이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은 수확기에 접어든 것도 있다. 그냥 두었다간 그냥 썩어 없어질 것들이다. 저것들 아까워 어쩌지???
그런데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K네와 뒷집 김 사장네에게 그랬다.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상추. 애호박. 파…등등 우리 오기 전에 넘쳐날 것이니 버리거나 썩히지 말고 거두어 먹으라고. 그리고 특별히 올해는 개복숭아가 많이 달렸으니 그것들을 수확해서 복숭아 액즙을 만들어 먹으라는 친절한 안내를 해 주었다.
캐나다에 체류하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쯤은 K에게 전화를 했다. 물론 텃밭과 마을의 동정이 궁금한 탓이다. 그리고 K는 가끔 주인 없는 우리 집을 한 바퀴 둘러 보고 이상 없음을 내게 알려 주는 것이다. 어느 날엔가 전 이장의 집이 전기과열로 홀랑 타 버렸다는 소식도. 전 이장에게 전화를 하여 마침 아래채가(사실 아래채는 조만간 멸실 신고를 할 계획이지만…)비어 있으니 청소를 하면 임시거처는 충분할 것이라고 전화까지 해 둔 상태다.
아무튼 그렇게 마을 소식도 또 비어 있는 내 집의 상태도 알아보고 있던 어느 날 K가 그동안 이곳이 장마철이라”형님 텃밭에 잡초가 어찌나 많이 자랐는지 내일은 예초도 하고 제초제도 뿌리겠다는 것이다. 뭐, 솔직히 속으로 좋지만“아이고! 이 사람아 뭘 그런 걸… 아닐세! 그만두시게 내가 가서 하지 뭐…”라며 얼버무렸지만 그 말이 K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드디어 귀국 길에 올랐고 그 길의 끝인 인천공항에 역시 약속대로 K 내외가 우리 내외를 반가이 영접한다. 그날 따라 폭우가 하루 종일 쏟아지던 날이다. 다른 건 다 관두고라도 그 빗속을 뚫고 어찌 왔을까 싶다. 반갑기도 하지만 너무 고마워 찔끔 눈물이 나려고 했다. 오는 길이 그러했으니 가는 길이라고 쉽지 않았다. 고속도로의 차량들이 벌벌 긴다. 우리들 태운 K의 차라고 별 수 없을 정도로 비는 쏟아진다. 다시 죄스럽고 고맙고…
그래도 끊임없이 계수씨는 마누라와 뒷좌석에서 한 달여 못 다 푼 정담을 쏟아내고 있다. 피곤함 속에 얼핏 들리는 얘기가“참…언니예! 복숭아 다 따서 뒷집 김 사장네캉 반반 나나(나누어)가 효소 담가씸니더. 아따! 복숭아가 마이 컷데에! 아(애)들 주먹 보다 더 컷데예”, 순간 내가 뭘 잘못 들었지 싶다. 복숭아가 그리 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개 복숭아는 잘 커야 탁구공 만 한데..아들 주먹이라니…’ 그러나 여행의 피로감 아니면 지속적으로 내리는 호우 속의 짜증 같은 것으로 깊이 생각을 안 했다.
울 안에는 실 하게 열리는 백도 한 그루 황도 한 그루 그리고 창고 앞으로 개복숭아 두 그루가 있다. 그 밤의 난리(?)속에 들은 복숭아 효소는 까맣게 잊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여독이 풀리기는커녕 밤새워 내리던 폭우에 아직도 비몽사몽 간이다. 그런 가운데 빗발이 약간 약해 진 틈을 타 문전옥답으로 내려 갔다.
제법 실하게 매달려 있을 복숭아나무를 쳐다 보니“옴마! 뭔 일이리야!?”복숭아가 하나도 안 보인다. 그리고 백도 나무로 급히 가보니 정말 1개도 안 달린 벌거숭이(?) 복숭아 나무다. “오! 마이 갓!! 어제저녁 고속도로 상에서 K부인이 한 얘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그때야 확실히 알 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개복숭아 나무 아래에는 매달려 있다 지쳐 떨어진 개복숭아가 산더미처럼.
그래도 여기까진 참을 만 했다. 역시 필마는 아니지만 도보로 텃밭을 돌아보니 제초제를 친 곳엔 잡초들이 시커멓게 타 죽었다. 그런데… 봄 내 키워온 명이나물(산마늘)도 대파도 몽땅 시커멓게 그야말로 초토화… game 끝. Oh! my god!!!!은 이럴 때 써먹는 거??? 우리 아우님 계수씨 어쩌다 이런 실수를…
우리 마누라 내게 신신당부를 한다. ‘절대 이 얘기는 하지 말라고…’거듭거듭 당부를 한다. ”알았어~! 이 사람아~!“
에필로그:
1)
60만 원 봉투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현금을 다시 준다고 받을 아우님이 아니다. 무엇인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구매를 해서 줄 참이다.
2)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아니면 덕적지가필유여경(德積之家必有餘慶)이라든가? 어제 저녁 K 아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님! 저 취업 됐습니다.“
사실 K 아우는 은퇴를 하고 이곳으로 이주를 했지만 크게 여유롭지는 않은 듯 했다. 더욱이 사과(과수)농사라는 게 최소한 3~4년은 기다려야 수확이 가능하고…말은 안 했지만 올 여름 바쁜 일만 끝나면 근처 리조트에 알바라도 하면 200여 만원 준다는 데… 그 곳 이라도 소개할 까 했었다. 처조카가 그곳을 다니고 있는데 사람 일손이 크게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혹여 자존심 상할 게 저어 되어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얘기를 듣고 보니 오래 자ᅟᅥᆫ부터 자신의 전공(기계 설치)을 살릴 취업 자리를 계속 물색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제 충주 공단에 입주해 있는 某업체에서 서류 면접에 이어 대면 면접을 하고 취업이 확정되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매일 조상님 사진 앞에 조석으로 빌고 또 빈다. ”아이(손녀)들 착하고 바르게 그리고 건강하게 만 자라게 해 주십시오. 그 나머지는 아이들의 능력에 따라 자라게 해 주십시오“라고.. 아주 간단히 얘기하면 ”차카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