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를 가보면 특히 중남미 쪽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무엇인가 하면 영웅들의 동상들이다. 하늘 높이 서 있는 영웅들, 말을 타고 또는 창이나 칼을 고추 세우고‘도츠 깨끼!!!공격 앞으로..!!’하는 형상들도 많다. 그런데 그들이 영웅시 하는 동상들을 역사적으로 반추해 보면 자신들의 조상이나 종족을 괴멸시킨 인물들의 동상이다.
뿐만아니다. 오래 된 성당이나 교회 또는 어마어마한 건축물들이 수백 년 전 그 영웅들의 시대에 축조되었거나 대를 이어 현대까지 축조해 온 것들도 온전히 보전되어 자랑스러워하고 심지어 어떤 것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또는 시도하고 있다. 알고 보면 저들의 조상이나 종족들이 정복자들로부터 채찍으로 맞고 피를 흘려가며 세운 건축물들이다.
얘기를 약간 비틀면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시절(김영삼 이야말로 진짜 수구 꼴/통이다.), 중앙청을 왜 허물었는지 나는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차라리 중앙청을 그냥 두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일본의 압제를 상기시키고 교육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 아닐까? 그런 맥락이라면 서울시청 본관은 왜 안 허물고 그냥 이용하는가? 그 또한 일본 압제의 산물인데…각설하고….
내가 동상(銅像)이라는 것에 의미를 둔 것은 중학교1 학년 때였다. 초등4~5학년 시절 도덕 시간(요즘 이런 과목이 있는지 모르겠고, 라떼는 초등 도덕 시간에 그야말로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의 기초를 배웠다. 선공후사. 옳고 그름. 반공과 국가관. 등등… 요즘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도덕 교과서와 수업이 없는 게 틀림없다.)배웠던“충정공 민영환”의 동상을 보면서 이다.
피난지 초등학교 4~5년 때의 도덕 시간에 그분의 애국심을 배웠던 것이다. 당시 기억하기로 ‘혈죽(血竹)과 충정공 민영환’이라는 제목의 도덕 교과서에는 그분이 1905년‘을사늑약(내가 배울 당시는’을사보호조약‘이었다. 선진 사가(史家)들이 정리해 놓은 역사에 자꾸 덫 칠을 하는 건 역사 왜곡이다. 그리고 그렇게 왜곡한다고 역사가 달라지지 않는다.)이 체결된 후 나라 잃은 설움에 다음 해인 1906년 자결을 하셨고 그분이 돌아가신 자리에 대나무가 돋아났고 그 후 그것을 충정공 선생의 피 때문에 자란 대나무라 하여’혈죽‘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유관순… 여러 분의 애국의사들이 계시지만 돌아가신 자리에 대나무가 돋아났다는 얘기에는 다른 분들 보다 더욱 숙연(宿緣)해지고 열거한 그분들 보다 훨씬 애국자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초등 6년을 마치고 중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다. 우리 집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서울 중구 봉래동에 위치 해 있었다. 학교를 가려면 늘 안국동 로터리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눈앞에 어떤 동상(안국동 로타리)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인가는 전차를 타게 되면서 그 앞을 지나게 되는 순간 동상 전면에“충정공 민영환”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 저분이 혈죽을 낳게 했다는 애국지사 충정공 민영환 선생님!?”그것은 어린 내게 대단 발견이었고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그분의 동상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활력을 얻었던 경험이 있다. 동상이 뭐라고…
그 후 고등학교를 가고 통학 길이 바뀌며 그분의 동상을 알현할 길이 없어지며 그분의 동상에 대한 애착(?)심이 없어진 과정에서 어느 날 안국동 로타리를 지나며 보니 그분의 동상이 없어지고 로타리 대신 오거리가 생겼던 것이다.
언젠가 양화대교(제2한강교)를 건너기 전 우측을 바라보니 그분과 또 다른 2~3분의 동상이 의미 없이 서 있는 걸 보며’아~! 안국동의 선생님께서 이곳으로 이주를 오셨나 보다‘단순하게 생각하고 말았다. 솔직히 나이 먹고 대가리 굵었으니 어릴 적의 애국지사나 애국심은 그만큼 옅으지고 희석된 탓이리라.
횡설수설 긴 잡썰 널어놓았지만, 동상이 서 있는 위치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동상의 인물을 기리면 되는 것 아닌가?
한때’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빨갱이들에게 죽임을 당한’이승복‘어린이의 동상이 전국적으로 웬만한 초등학교에는 무조건(?) 비치(備置)되었어야 했다. 거의 반 강제적이었다. 그랬던 이승복 동상(사실 동상이 아니라 석고상이지만..)을 어떤 지방의 빨갱이 교육감의 제안에 의해 모조리 파기해 버리는 시절도 있었다.
어제 오늘’홍범도‘를 비롯한 육군사관학교 내의 흉상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모양이다. 특히 홍범도의 흉상이 가장 문제 꺼리인가 보다.
빨갱이와 수구 논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악습(惡習)이다. 어차피 이 땅까지 모셔온 홍범도 유해나 동상(흉상)이라면 어디에 있은 들 무슨 문제냐?
내가 아는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동상이 안국동에 우뚝 서 계셨던 것은 그분이 태난 곳이 안국동 로타리의 서남쪽 100m 내외의 ’견지동‘이라는 데서 태나셨기에 그곳에 세웠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홍범도나 그 외 인물들의 흉상은 육사와 티끌만큼의 인연도 없지 않은가? 흉상을 아예 없애자는 것도 아닌데 왜들 생xx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