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 조기 책봉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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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19%, 한동훈 16%… 차기 대선 조사서 첫 오차범위 내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3/12/08/KF6Q4B5IEBEPBNP6ELMIX4CASM/
어제는 위의 뉴스 한 꼭지를 보고 갑자기 어떤 건배사가 떠올랐다. 이른바“차한대만사세” 즉 “차기 한동훈 대통령 만들자는 사람들의 세상”이라는 건배사를 가지고 페이스 북에 계정 하나를 만들었더니 많은 페친께서 호응을 해 주신다. 서두를 이유는 없고…지금부터 천천히 회원을 모집하여 구호 그대로 한 번 활동을 할 생각이다.
뭐… 자랑은 아니지만 지난 대선 전에도 윤석열 대통령께서 검찰 총장으로 재직하며 간난신고를 겪을 때“윤대만(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이라는 계정을 만들어 활동하고 지금도 회원이 2,300여 명 계시니 그분들과 상의하여 한동훈 대통령 만들기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겠다.
그런데 이런 거사(?)를 치루거나 이루려면 반드시 반대파가 있기 마련이다. 몇몇 분들의 말씀은‘현재 맡은 책무에 집중하라거나 대통령 임기가 반도 더 남았는데..너무 성급하다’는 식이다. 역시 이곳에서도 내용은 안 열어 봤지만, 쓰레기 무단투기범 찌끄래기 중에도 최하급 찌끄래기 따위가 미쳤다느니 어쩌니 하며 함부로 아갈머리를 놀리지만 까이꺼 그 따위 찌끄래기 한두 놈에 거사를 미룰 수는 없는 것이고…
황태자 왕세자, 같은 의미이기는 하지만 격은 다르다. 그러나 오늘날은 스스로 황제 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없으니 그냥 왕세자로 칭 하자.
조선 초 왕자의 난은 두 차례 있었다. 긴 썰 풀 필요 없이 한마디로 권력(권좌)다툼이다. 태조 이성계의 실수였다. 너무 일찍 세자책봉을 서둔 것이다. 문제는 정처도 아닌 후처의 애교에 휘둘려 여덟 번째 막내아이를 세자책봉에 서둔 것이다. 요즘도 가끔 재벌이나 이런저런 고위급 인사들 중 본처 소생을 무시하고 애첩의 소생을 후계자로 삼으려다 집구석이 풍비박산 나는 경우가 있지만 당시는 어땠을까. 정궁 소생 여섯을 두고 후궁 소생 순번(?) 그것도 끝번 째에게 나라를 맡긴다니 반란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한 것이다.
어찌 되었던 그 결과 따거(大哥: 첨부터 맏형은 정치고 권력이고 다 싫어 물레방아 도는 고향으로 낙향)없는 무주공산에 차례는 조선을 세우는데 가장 공이 컸던 방원(훗날 태종)을 무시하고 서열에 따라 방과(정종)으로 낙찰이 되었다. 사실 일어나지 않아도 될 난이 일어나 형제간에 죽이고 죽고 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능력과 추진력 공적 등을 따져서 임금이 될 수 있는 자를 왕세자로 삼아야 했는데 이성계가 정이 너무 많았던지 아니면 평생을 전쟁터에 있었던 탓인지 말년에 한 여인의 애교에 그만 잠시 정신 줄을 놓았던 게 아닐까?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기왕 왕세자를 책봉하려면 능력 있는 자를 빨리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 책봉의 장점은 또 있다. 그러구러 능력자 방원(태종)은 왕이 된 후 양녕. 효녕. 충녕 3형제를 두었다. 부왕이었던 태조 이성계의 실수를 거듭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열 살의 양녕을 냉큼 세자로 삼았다. 근데 세자 양녕이 요즘 많은 사람들의 화두인“싸가지” 즉 싸가지가 바가지였던 것이다.
백성들로부터 비난은 물론 고위층 인사들의 상소가 끊이질 않는다. 소위 세자라는 인간이 민가의 기방이나 물 좋은 홍등가를 돌아다니며 어떤 싸가지 없는 놈처럼 성접대를 받는 등 심지어 애까지 낳아 궁으로 데리고 들어오고… 거의 찌끄래기 수준의 망동을 벌인 것이다. 결국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태종은 양녕을 폐세자 하였고, 그 결과 한반도 유사 이래 가장 존경받는 성군 세종대왕의 덕치(德治)를 맞은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한글과 K-컬쳐는 세종대왕 본인의 치적이지만 찌끄래기 같은 세자를 과감히 갈아치우는 태종임금의 결단력의 소산이다. 결국 왕세자를 일찍 책봉한 관계로 싸가지 점검할 시간이 충분했던 것이다.
이쯤 해서 해외로 나가 보자. 엘리자베스 여왕이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서거했지만, 그녀의 여왕으로서의 재임기간이 물경70년이었다.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여왕으로 군림한 엘리자베스 여왕이다 보니 그 아래 왕세자 즉 찰스3세 역시 그 기간만큼 세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이 듦에 권좌를 넘겨주고 즉 양위(讓位)를 했으면 좋겠지만 여왕의 욕심이 지나쳤는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여왕으로 군림했다. 현대사가 아니고 중세나 근대사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벌써 사달이 났을 것이다. 강제 폐위. 반란. 내란 등등.
그러나 왕세자를 일찍 책봉하고도 양위하지 않은 것은 영국이 입헌군주제이기 때문에 여왕은 상징적인물일 뿐 정치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누려온 수명(?)이고 지위였기에 큰 하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찰스3세가 가끔 논란의(바람 끼, 정비 다이에나 죽음 등)여지가 있었지만 그래도 든든하게 여왕을 보좌해 온 공이 있는 것이다. 더하여 찰스3세 아래로 동생(공주 포함)들이 몇 있었지만 왕위계승의 욕심이 없도록 첨부터 이른 책봉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왕은 든든한 왕세자를 의지하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사는 어땠는가? 문민정부의 김영삼을 보자. 굳이 김영삼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보수 세력은 권력을 잡으면 두 눈에 흙 들어가기 전까지 천만년 해 처먹을 것처럼 후계자를 절대 안 키운다. 반면 빨갱이들은 취임 즉시 5년 후를 대비하여 후계자(빵에 가지 않기 위한)를 키우는 것이다.
김영삼만 하더라도 너무 늙은 그리고 너무 늦게 회창翁을 간택(簡擇)했지만, 세자로서의 권위를 일부라도 세우고 넘겨주어야 함에도 자신의 권좌에 대한 미련이 남아 명색만 세자고 모든 권위나 군력은 자신에게 남겨 두었기에 결국 왕조가 넘어 간 것이다.
이외 이명박이나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다른 놈들이 넘보지 못하게 미리감치 세자를 책봉하고 힘을 길러 주었더라면 반란이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은 박근혜로부터 공격을 박근혜 역시 책봉 받지 못한 자신의 수하에게 버림을 받고 결국 빵살이까지 하게 된 동기가 세자 책봉을 서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때 누구라도 책봉이 되었더라면 분골쇄신하며 적들과 싸우며 왕세자 겸 호위무사로 죽을 때까지 지켰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많이 아쉽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지금부터라도 차기 보수정권을 위해‘왕세자 조기 책봉을 해야 하고 그에 합당한 인물로“차한대만사세”를 외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