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조선tv에서‘바람 구름 비’라는 가람 이병주 선생의 대하소설을 극화 방영 한 적이 있었다. 난 원래 선생의 전집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 극을 보지는 않았지만 구한말 주인공이 정치개혁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과정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원래 10권이지만 유신정권 하에서 마지막 10권을 출간하지 못하고 유작으로 남은 것을 훗날 집대성한 것이다. 그 험한 세상 때도‘개혁’에 대한 염원이 있었지만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안타깝게 난 9권만 보유고 있다.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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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대업을 이루려할 때, 그에게는 창칼을 제법 쓰는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몸통은 있었으나 그 몸통을 유효적절하게 움직일 브레인이 없었다. 어찌어찌 수소문 하여 찾아낸 인재가 요즘으로 치면‘나는 자연인이다’할 수 있는 사마휘(司馬徽)라는 은사(隱士)였다. 유비는 그에게 산에서 내려와 도와주기를 간청하자 일언지하에 이르기를,“산야한산지인불감세용(山野閑散之人不堪世用:산과 들에서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이 세상에 쓰임을 어찌 감당하리…)이라며 부드럽게 거절하는 대신, 복룡. 봉추 양인득일가안천하(伏龍. 鳳雛, 人得一可安天下:복룡(제갈량).봉추(방통)두 사람 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라며 제갈량과 방통을 소개한다.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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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갈량은 논외로 하고, 삼국지 정사 촉서(蜀書) 방통전(龐統傳)에 의하면,“선주(先主:유비)가 형주를 다스리게 되자, 방통은 미관말직의 신분으로 형주관내 뇌양현의 현령에 임관되었다. 그러나 방통은 정사를 게을리 하자 면직을 당하였다. 이에 오(吳)나라 장수 노숙(肅)이 선주에게 글을 보내어‘방사원(龐士元:방통의 호)은 겨우 백 리 안팎의 작은 고을이나 다스릴 인재가 아닙니다. 보다 큰 벼슬을 내려 중히 쓰셔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제갈량 역시 유비에게 노숙과 같은 뜻을 아뢰었다. 이에 유비가 그를 큰 그릇으로 여기고 중임(重任)을 하니 마침내 제갈량과 나란히 우대하였다”라고 기술되어있다. 또 그의 모습을 두고 머리가 크고 벗겨졌고(요즘으로 치면 대머리?), 너무 잘생겼다고 했으며 유비가 처음 그를 중용하지 않은 것은 그의 이런 모습이 바람기가 많을 것이라 싫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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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龐統) 자는 사원(士元)이며 양양(지금의 호북성 양번)사람이다. 제갈량과 더불어 이름을 나란히 할 정도로 계략과 지모가 출중했다. 적벽대전의 완승은 제갈량의 계교가 크게 빛을 보았지만, 조조를 속여 연환계(連環計)를 쓰도록 계교를 낸 방통의 공로가 더 크다 할 것이다. 비단 이 뿐 아니라 혹자는 방통의 재주와 우수함이 제갈량을 능가했다고 한다. 단지 그가 이능 전투에 참전을 했다가 젊은 나이에 전사를 한 관계로 그의 재주를 더 볼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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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맡은 관직은 뇌양현 이라는 사방 백리도 안 되는 조그만 고을이었다. 뇌양현에 부임한 그는 종일 술만 마시고 도무지 정사를 보지 않자, 그 소문이 유비의 귀에까지 들리고 이에 유비는 장비와 오늘날 감사원장격의 손건을 보내 감찰케 한다. 장비가 도착 했음에도 방통은 술에 취해 일어나지 않자 장비는 크게 노해 방통의 태업(怠業)죄를 다스리려 취조하자 방통은 웃으며 대답하기를“이까짓 사방 백리도 안 되는 작은 고을의 사소한 일들을 결정하기가 무엇이 그리 어렵겠소! 장군은 잠깐만 계시오. 내가 금방 처리하리다.”곧 현리에게 명하여100일 간의 쌓인 공무를 가져오게 한 다음 하나하나 분석하여 처리하고 소송사건은 그 자리에서 처결하니 반나절이 채 안 돼 밀린 공사(公事)를 말끔히 처리해 버리자, 장비가 크게 놀라 오히려 방통에게 사죄하고 급히 유비에게로 돌이가 그의 비상한 재주를 자세히 알렸다. 이에 유비 또한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할 즈음 제갈량이 순시를 마치고 돌아와 방통을 적극 추천하자, 방통을 급히 형주로 모시고 오게 한 뒤 친히 사죄를 하고 부군사(副軍師)에 임명하여 제갈량과 함께 천하를 평정할 계략을 세우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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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한동훈에 보수 미래 맡겼다.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3/12/22/IZJYFCAMQFDL7EWC6RDSHCGN3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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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방통전에 남아 있는 근거로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비대위장과 비교를 해 보자. 방통이 처음 크게 쓰이지 않은 것은 너무 잘 생겨서 혹시 궁궐의 궁녀들과 스캔들이 날 것을 염려한 유비의 시기심이 작동한 관계로 중용 되지 못하고 한직 그것도 요즘으로 치면 현재 나 자신이 살고 있는 제천시 백운면 보다 적은 뇌양현 이장 격으로 업무를 본 것이다.(혹자는 그 반대로 너무 괴이하게 즉 추하게 생겨서 중용 되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 다만 독자 개인의 양심과 처분에 맡긴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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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 그의 인물 됨됨이나 능력이 법무부 장관에 머물기에는 너무 소일에 지나지 않는다. 법무부라는 업무영역은 한동훈에게는 사방 백리에 지나지 않는 좁은 영역이다. 한 마리의 용이 운신(運身)하고 승천(昇天)하기엔 그 범위나 조건이 너무 빈약하다. 그런 즉 날이면 날마다 180마리의 토룡(土龍) 즉 지렁이들의 몽니. 개gr. 난동에 골머리를 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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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라 법이 웃기는 건지 제도 자체가 족(足)같은 건지… 같지도 않는 지렁이가 용 알기를 우습게 알게 만들어 놨다. 선출직 공무원은 큰 소리 치고 지명직은 지렁이 앞에서 공손해야 하고.. 심지어 어떤 지렁이는 용의 답변 자세가 잘못이라면 탄핵감이라고 하지를 않나….비록 선출직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운데 범법자가 반 이상이라니 범법자가 되어야 선출직 공무원으로 뽑아주는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닐까? 내 참…더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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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드디어 용이 얼마든지 활동하라며 180마리의 지렁이를 지려 밟고 운신의 폭을 넓히라며 국민이 허가해 주었다. 이 얼마나 바라고 기다렸던 시간인가.
무릇 승천하여 용으로 거듭나려면‘바람 구름 비’가 필요하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한 마리의 용을 보기 위하여 폭풍우가 내리는 그 밤을 밤새도록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 모두가 진정한 용의 승천을 위해 바람. 구름. 비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