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과 이준석, 금낭비계(錦囊祕計)의 진실

혹시 내가 과문한 탓도 있겠으나, 스스로 삼국지 마니아를 자처하는 내가 삼국지를 읽고 또 읽어 본 결과 제갈량의 금낭묘계니 비계니 하는 대목은 삼국지에 딱 세 번나온다.

 

그 첫 번째.

유비가 손권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동오로 성친(成親:장가,혼례)하러 가기 전에 제갈량이 조자룡에게 금낭3개를 주면서 주머니 속에 세 가지 묘계가 들어있으니 아주 다급할 때 금낭을 열어 순서에 따라 행하라고 분부하였다. 주유의 계략에 빠진 유비가 주유에게 쫓길 때 조자룡은 제갈량의 귀신같은 계책이 들어있는 금낭을 하나하나 열며 사지에서 벗어나 본거지로 무사히 귀환한다.

 

두 번째,

적벽대전이 끝난 후 제갈량이 양양을 진수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조가30만 대군을 거느리고 번성으로 쳐들어온다. 이때 양양과 번성에는 군사가1000명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장수들도 대부분 형주에 있었고, 단지 장비만이 양양에 있었을 뿐이다. 제갈량은 급히 장비에게100기(騎)를 이끌고 가서 번성을 지키게 하면서 계책이든 금낭 하나를 준다. 장비가 번성에 도착하자마자 조조 또한 번성에 도착하여 성을 공격해 온다. 장비는 공성계(空城計)를 생각해 내고 성문을 활짝 열어 병졸들에게 성안의 말들을 모조리 몰아 먼지를 일으키게 하여 군사가 많은 듯 꾸미지만 조조는 그 계책에 속지 않고 더욱더 성을 두드린다.(장비의 이 계책은 이미 장판교에서 오래 전 써먹은 작전이다.)다급해진 장비가 금낭을 열고 계책을 찾아보니 그 속에는 백지 한 장만 들어있고, 이를 본 장비는 대경실색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제갈량이 급한 나머지 고의로 빈 성을 지키게 했다고 욕지거리를 퍼 부으며 길길이 뛴다. 조조는 이 광경을 보고 오히려 진짜로 무슨 계략이 있는 줄 알고 의심이 일어나 급히 퇴각 명령을 내린다. 장비는 그때서야 비로소 제갈량의 뜻을 알고 흔쾌히 축하주를 마신다.

 

마지막,

제갈량은 살아생전 이미 위연의 됨됨이를 알고 있었으나(기회만 있으면 언제고 반란을 획책할 반골상이라는 것을…)그의 용력과 무공을 이용하기로 하고 그를 제재하지 않았다. 과연 제갈량이 죽은 후 위연은 반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다. 제갈량은 일찍이 양의라는 인물에게 금낭을 주며 위연이 반란을 일으킬 때 열어보라고 명해 두었다. 마대는 제갈량의 유계(遺計)에 따라 거짓으로 위연의 반란군에 들어가 위연을 돕는다. 진압군과 반란군이 대치한상황에서 양의가 제갈량이 남긴 금낭의 계책을 열어보니 위연으로 하여금‘누가 감히 내 목을 칠 것인가?’라고 외치도록 유도하자, 순식간에 마대가 나타나 위연을 참수하고 반란은 진압되었다.

 

이상과 같이 금낭비계는 요새로 치면 탑 시크리트에 해당되는 국가 기밀이자 군사작전인 것이다. 작전의 전개상황은 오로지 명령자인 제갈공명만 알고 수행자는 적힌 대로 따라만 하면 언제나 성공적으로 끝났던 것이다. 만약 작전수행자인 조자룡이나 장비 또는 양의와 마대가 금낭비계를 미리 열어봤더라면 효과는 반감되었거나 역효과를 일으켜 아주 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금낭비계란 적전에서 아주 다급한 상황 일 때에만 열어보라고 명(命)하고 있는 것이다.

 

위연(魏延). 자는 문장(文長)이며 의양(義陽:지금의 하남성 동백)사람이다. 원래는 형주목사 유표(劉表)의 부장이었으나 그를 배신하고 나중에 유비에게 귀속하였다. 용맹하고 싸움을 잘하여 여러 차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유비가 한중왕이라고 칭할 때 그를 한중태수로 삼았고, 유비가 황제가 된 후에도 여전히 한중을 지켰다. 제갈량이 한중에 진주하여 북벌을 준비할 때 전감독으로 삼고 승상사마에 양주자사를 겸임토록 할 정도로 중용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갈량이 북벌을 하는 동안 언제나 선봉장으로 있었다. 제갈량이 죽자마자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제갈량이 죽기 전 만들어 준 금낭비계에 의해 마대(馬岱)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해가 서가234년(단기2567년, 중국 촉 후주 건흥 12년, 신라 조분왕 5년, 고구려 동천왕8년, 백제 고이왕 원년)이다.

 

위연 그는 태생적으로 반골이었다. 제갈량은 그가 언젠가는 모반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의 무용이 출중함을 알고 항상 그를 지근거리에 두고 중용했던 것이다. 이는 그렇게 함으로서 제갈량 자신이 살아있는 한 그의 역심(逆心)을 잠재우겠다는 용의주도함을 보였고, 과연 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위연이 모반을 못하도록 마대에게 금낭(錦囊)의 비책(秘策)주며 용도폐기를 했던 것이다.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죽고, 조조와의 전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일진일퇴 하던 전장에서 하루는 위연이 군막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자신의 머리에 뿔이 두 개가 나 있었다. 놀래 잠이 깬 후 위연은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까지 그 꿈 생각을 하며 의아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행군사마 조직(趙直)이라는 인물이 찾아왔다. 원래 조직은 역리(易理)에 밝은 인물 이었다. 위연은 조직에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며 해몽을 부탁했다. 조직은 한참을 생각하는 척하다가“그것은 큰 길몽입니다. 기린(麒麟)의 머리에 뿔이 있고 창룡의 머리에 뿔이 있는 법이니, 이것은 곧 변하고 화해서 신분이 상승할 상입니다.”위연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자신이 황제가 될 조짐이라며…

 

그러나 조직은 그 꿈이 길몽이 아니라 흉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즉, 뿔각(角)자는 칼도(刀)밑에 쓸용(用)자를 했으므로, 머리에 칼을 얹었으니 아주 심한 흉몽인 것이었다. 결국 얼마 뒤 조직의 예언대로 위연은 자신의 꿈을 믿고 반역을 도모하다가 마대의 칼 아래 무참히 모가지가 달아난다. 이미 밝혔지만 그 해가 서기234년(단기2567년, 중국 蜀나라 후주 건흥12년, 신라 조분왕5년, 고구려 동천왕8년, 백제 고이왕 원년)이다.

 

위의 고사와 실루엣처럼 떠오르며 딱 겹치는 인물이 있다. 바로 色돌다. 지난 대선 때 놈은 위연만큼 무용이 출중하게 적들과 싸웠고 그 공훈이 컸다. 그러나 놈은 태생적으로 반골이다. 제 미음에 안 들면 전쟁 중에도 창. 칼을 거꾸로 잡고 전장을 벗어나 아군을 향해 화살을 마구 날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놈을 설득하고 중용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 뒷얘기는 독자제현께서 먼저 알고 더 잘 아신다. 따라서 주뒝이 이픈 관계로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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