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달인과 구두쇠 영감님의 대결 (돈 빠스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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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모으고 지키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유일한 낙인 구두쇠 이야기가
도니체티의 오페라 돈 빠스꽐레 입니다.

결혼하면 아내가 자기 재산을 탕진할까 두려워 일흔세 살이 되도록
돈 빠스꽐레는 장가도 못가고 구두쇠처럼 살고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또한 즐겁게 살기 위해서
돈을 벌고 모으지만 구두쇠는 돈을 모으고 지키기 위해 삽니다.
돈이 인생을 사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벌어서 차곡차곡 쌓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죽을 때 가지고 가서 저세상에 가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더욱 악착같이 돈을 모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저세상에서도 더욱 모으는 일에 열중할 수도 있겠지만요.
아무리 열심히 돈을 잔뜩 쌓아 두었다고 해도 아무도 그걸 가지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을 때는 누구라도 빈손으로 간다는 것 때문에 구두쇠에겐 비극이고
그것을 보는 관객은 구두쇠를 마음껏 비웃어 줄 수 있어서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돈 빠스꽐레와 비슷한 이야기로 "말없는 여인"이 있습니다.
여자의 수다와 시끄러운 것을 도무지 참을 수 없어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장가도 못간 돈 많은 노총각 이야깁니다.
정말 조용하고 말이 없는 여인이라고 해서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유산을 상속하려는 자기 조카에 의한 사기결혼이었습니다.
말이 없다던 여인은 결혼하자마자 엄청난 수다쟁이로 돌변하고
남자주인공은 이혼하려고 기를 써야합니다.
도니체티의 빠스꽐레도 돈은 안 쓰고(자신의 재산을 축내지 않을)
조용하고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해서 아이나 예닐곱 명 낳았으면 했는데
결혼서약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걱정하고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차를 비싼 새것으로 사고 하인을 수십 명 새로 채용하고
가구를 비싼 것으로 바꾸고 보석과 옷과 온갖 사치품을 사들이며
결정적으로 그런 일을 말리는 돈 빠스꽐레의 따귀까지 올려붙이는 강적을 만납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정말 싫어서 피하고 싶다….
이런 것들은 꼭 반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술꾼 아버지가 싫어서 술 먹는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아버지보다 더 심한 술꾼을 만나서 살고
말 많은 사람은 싫다 이러면 왕 수다쟁이를 만나고
검소한 사람과 살았으면 좋겠다 싶으면 감당 못할 사치한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고 싶어 하는 사람의 배우자는 아이를 극도로 싫어하고
근면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게으른 남편이나 아내가 찾아오고….
이래서 인생은 비극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해서
결혼 첫 날 부터 돈 빠스꽐레에게 이혼을 결심하게 하는 일들이 산사태처럼 몰려오자
지겨운 상황에서 놓여나고 싶어 딱 한명 있는 조카를 결혼시켜 유산을 상속하겠다고 하자

모든 일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코믹한 오페라가 돈 빠스꽐레의 줄거리입니다.
노리나라는 여자는 돈 빠스꽐레의 한 명밖에 없는 유산 상속자인 조카 에르네스토를
좋아해서 원래 그 남자와 결혼하려고 했는데 돈 빠스꽐레가 자신이 결혼해서 상속해줄 자녀를

둘 욕심을 가지자 돈 빠스꽐레의 욕심을 역으로 이용해 주치의의 모략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항상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약장수와 같은 역할을 돈 빠스팔레의 주치의가 한 것입니다.
착하지만 부자 삼촌에 얹혀사는 유약하고 어쩌면 미성숙한 인격의 청년 "에르네스토"와
노리나의 사랑을 도와주는 의사 "말라테스타"의 연기는 그중 그럴 듯 했습니다.
돈은 많지만 세상물정에 어려운 노인을 골탕 먹이는 세 사람 노리나와
빠스꽐레의 조카 에르네스트, 그리고 빠스꽐레의 주치의 말라테스타 이 세 사람이 뭉쳐서
한사람을 골탕 먹이는 내용이라 웃다가 생각해도 빠스꽐레가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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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나는 연애에 있어서 스스로 고수라고 생각하는 여인입니다.
남자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자신에 차 있습니다.
능수능란하게 빠스꽐레를 요리해서 결국 자신이 원하던 사람의 사랑을 얻습니다.
자신의 연애 수법과 기교를 자랑하는 아리아를 부르다가도 수녀원에서 나온 순진한 처녀처럼

능청을 떨면서 행동하는 연기가 이 오페라를 더욱 재미있고 돋보이게 했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노리나는 스스로 연애의 달인입니다.
남자의 마음을 다룰 줄 아는 여인입니다.
남자 앞에서 어느 때 웃어야 하는지 어느 때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토라져 보여야 하는지 건방지게 보여야 하는지
우울하게도 여우같기도 순진하게도 보이는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원하는 대로의 연기가 가능한 연애의 프로선수입니다.
어느 면에서 상대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고 연기력이고 삶에 요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연애에도 작전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속는 남자들에게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요.
여인의 진심을 읽을 수 있는 남자가 현명한 결혼생활을 하겠지요.

"나이 들어 젊은 아내를 얻으면 고생"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노리나가 다른 등장인물들과 함께 즐겁게 이 스토리의 교훈을 노래합니다.
돈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나이든 "돈 빠스꽐레"를 속이는 음모와 술수가
고약하거나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이지 않고도 재미있게 그려집니다.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 "노리나"를 연기한 소프라노의 연기가 가장 좋았고
출연진 중 연기와 노래를 가장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빠스꽐레를 연기한 연기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지만 어딘지 어색했고

에르네스토는 성량도 작았고 연기가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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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박준석, 노리나한상은, 예술총감독 박세원, 소프라노 김인혜교수)

세종 M씨어터의 작은 공간에서 본 오페라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출연진과 오케스트라 스텝 감독 등등 많은 인원들이 합작으로 만들어 가는 예술이라
무대에 올리면 올릴수록 적자가 쌓일 것 같아서 나는장사꾼 다운 걱정이 들었습니다.
오후 11시부터 하는 월드컵 우루과이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은 극장 하나도 가득 채우지 못하고 하는 오페라는 적자를 면치 못할 것 같았습니다.
영화에 밀리는 것은 오페라가 가장 심할 것 같습니다.

순이

3 Comments

  1. jh kim

    2010-06-28 at 01:10

    박세원 교수와 김인혜교수
    혼신의힘을 다하여 열창하는 성악가
    타고난 소리꾼 아니 죽기살기로 노력하는 집념의한국인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페라 돈 빠스 꽐레 를관람하셨군요
    오페라 평론가 순이님께서
    아니 칼럼을쓰셔야 될텐데요
       

  2. 데레사

    2010-06-28 at 01:33

    저역시 오페라 가본지 아득합니다.
    언젠가 정은숙 교수가 출연한 아이다를 국립극장에서 봤으니
    아마 한 20년쯤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러니 뭐 오페라가 활성화되리가
    없지요.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비싼것도 한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3. 생각하기

    2010-06-29 at 13:01

    일하기 싫어서 들어왔어요.
    깻잎이 잔뜩 생겨서 누굴 주었건만 아직도 한 소쿠리가 날 바라보고 있어요.
    오페라를 가 본 기억은 까마득하군요.
    얼마전 성남 아트센터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본 게 고작이네요.
    음악에 관련한 건 모두 무지해요.
    그런의미에서 순이님이 더욱 부럽고 대단해 보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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