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로 시작하는 여름, 아람누리 마티네콘서트

오전 11시면 통상적인 음악회가 열리는 시간 치고는 빠른 시간입니다.
오전에 누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올까 하지만
아람누리는 마티네 콘서트는 늘 만원입니다.
주요 관객들이 주부들이었는데 요즘엔 남성관객도 눈에 띄고 학생들도 많습니다.
매 공연마다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서
클래식을 대중화 하는데 마티네 콘서트가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피아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피아노 시리즈를 했고
올해는 첼리스트 양성원씨가 사회를 보는 ALL that strings 입니다.
현악기로 하는 모든 연주를 맛 볼 수 있도록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하프, 클래식 기타 등 현악기로 연주하는 무대를 꾸밉니다.
1회에선 47개의 현 위에서 나는 하프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클래식 기타는 다음 회에 연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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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원씨는 오랜 연주 경험을 토대로 차분하게 해설을 이어갑니다.
커다란 첼로의 목을 잡고 무대에 서서 연주가 아닌 해설을 해도 양성원씨는 멋집니다.
시작을 프로그램에 없는 엘가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로 열었습니다.

첼로독주가시작되자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같은 분위기가 나면서객석이 고요해졌습니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고 관객이자리에 앉자마자 아무런 멘트도 없이
첼로 연주를 시작하는 것은의외였는데 그 의외성이 몰입을 좋게 했습니다.
아름답고 고요하고 서정적인 선율이 나지막하게 울리자 소란스러운 세상을
순식간에 벗어나 유럽의 어느 고성이나 오래된 교회에 혼자 앉은 듯 하고
구름위로 산책하는 듯 방금 타고 온 버스기사의 난폭 운전으로 인한 불쾌함이
간 곳 없어집니다.

옛날 보다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버스기사들의 운전 습관에 따라
다섯 정거장 짧은 거리를 버스에 서서 가도 몹시 힘들 때가 있습니다.
출근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바쁠 것도 없을 탠데 버스는 급브레이크를 잡고
노란불이 켜진 신호등을 무시하고 급하게 달리기도 해서 위험하기도 하고
손잡이를 잡고 서서넘어질 듯앞뒤로 쏠리기도 하여 간간히 비명이 나왔습니다.
같은 거리를 타고 다니는 버스가 기사에 따라 편안하기도 하고
버스 안에서 휘청거리다 넘어질 번도 하고 그럽니다.
짧은 거리를 타고 다녀도 그런데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분들은
매일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솜털같이 감미롭기도 하고 부드러운 현의 울림이 가물가물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다시 작아졌다 커지는 등 잠이 올 듯 나른해 지기도 했습니다.
첼로 현의 파동은 심장 깊숙한 곳을 젖어들게 했습니다.
어린 날 소꿉장난 하던 고향집 뜰에 앉은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가을바람 소솔한 날의 정갈하고 청명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이 들수록 첼로의 음색은 점점 더 좋아집니다.
하이든 홀에 들어가 앉는 순간 저 바깥 세상의 소란을 잠시 피하여
영혼의 쉼을 맛 볼 수 있는 순간을 누릴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일산에 사는 행운이기도 하구요.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 여름이 연주 되었는데 현악기에서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듯했고
비오는 날 내가 빗속을 뛰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엔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호수 공원 그늘막에 앉아서 듣던
빗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눈앞에 비가 쏟아지는 듯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CD를 듣는다고 해도 현장에서 듣는 음색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1번이 연주 될 때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어떤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일본 히비키 스트링즈 현악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했는데
첼로와도 클라리넷과도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연주자를 정면으로 마주앉아서 내려다보면 대단한 만족감이 있습니다.
아람누리 하이든 홀의 2층 B열의 맨 앞자리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자립니다.
아래층 관객은 전혀 보이지 않고 눈 아래로 무대만 오롯이 보입니다.
좌우 양쪽 관객도 시야에는 잡히지 않고 어느 땐 연주자와 독대를 하고
나 혼자 음악을 독차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 자리는 VIP석이 되기도 하여 연주회에 따라서는 몇 십 만 원짜리 좌석이지만
이런 패키지 공연에는 미리 서둘러 예매를 하면 같은 가격에 고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친구만 옛 친구가 좋은 것이 아니라 음악도 오래 익숙한 음악이 좋습니다.
그만큼 오래 사귀었다는 것도 되고 알게 모르게 늘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정답고 듣기 쉽고(!)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추억이 들추어진다는 것입니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이 현실을 떠나 내 생각을 어디쯤으로 가져갑니다.
음악에 실려 가는 생각여행, 그 순간이 즐겁고 행복한 것입니다.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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