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돌이 안 된 손녀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지방에 살던 친구가 서울로 왔습니다.
친구는 지방 행정수도에서 보건소 소장을 하던 친군데 여러 가지 사정상 손녀를 봐주지 않으면 안 되어서입니다. 아들내외가 결혼하고 오래 자녀가 없다가 어렵게 얻은 손녀인데 얼마 전까지는 아이의 외할머니가 봐 주시다가 건강 때문에 어렵게 되었나 봅니다. 아이가 세 돌이 거의 되어가니까 어느 정도 자랐다 싶고, 며느리 직장에는 어린이집이 있어서 며느리가 출퇴근 때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되니까 별 어려움이 없겠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엄마가 출근을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서 직장 내에 있는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점심시간이나 틈 날 때 마다 아이를 찾아보고 퇴근시간에 함께 손잡고 퇴근하면 이상적이고 멋지고 세련되 보이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아이엄마의 직장근처로 집도 이사를 했거든요.
막상 해 보니까 아이를 엄마 출근시간에 맞춰 잠을 깨우기가 어렵더랍니다. 아기를 깨워 함께 출근을 하려고 보면 아침시간이 너무 바쁘고 아기도 지처해서 아침마다 자는 아이를 깨워서 함께 출근하는 일이 너무 어렵더랍니다. 차선책으로 아침시간에 아이를 푹 재운 후에 도우미가 아이를 어린이집까지 대려다 주는 것으로 했답니다. 아이에게 아침잠 시간을 보장해 주면 될 것 같아서입니다. 그런데 도우미도 해결방법이 안되었답니다. 아이는 낯선 도우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더 불안해 하고 낯선 사람에 대해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도우미를 바꿔봤는데 아이는 성격이 예민해지고 정서가 불안정해서 도저히 남에겐 아이를 맞길 수가 없겠다 싶어서 친할머니인 내 친구에게 봐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친구는 20대에 시작한 공무원생활을 여태 했고 관직에 오래 있던 베테랑 직업여성이라 집에 서 어린손녀를 키운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 보지 않았는데 막상 손녀를 돌봐야 한다는 일이 피할 수 없이 되자 주변 여러 사람에게 상담을 했답니다. 손녀를 봐 주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자신의 페이스대로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게 옳은가 물어보니 두 그룹으로 의견이 갈리더랍니다. 대게는 “여태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 지금 와서 함께 살지도 않았던 아들집에 손녀를 봐 주러 상경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크나큰 낭비다.”라며 적극 반대를 하였고 “세상에 어떤 일보다 손녀 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며” 며 손녀를 봐주라고 강력 권하는 그룹으로 의견이 팽팽하더랍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결단을 못하는 사이에 손녀는 점점 짜증이 심해지고 힘들어한다고 해서 결정을 해야 했지만 결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보건소장을 그만두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손녀를 보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그렇게 결단할 수 있게 용기를 준 사람은 의외로 손자 손녀를 키우고 있는 우리 모범생 친구들이었습니다.
내 친구들은 자녀교육에 무한 헌신한 사람들이라 자녀들이 다 잘 풀렸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잘 키운 만큼 딸들이 전문직에 종사를 하다 보니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기 어려워서 손자 손녀를 대신 키워 줘야하는 황혼육아 전담이 되었습니다. 딸들이 의사나 기자 교사 등등 잘나가는 직업군에 속하는데 직업상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문제거든요.
할머니가 그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아이의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면 어떻겠냐고 말하는 분이 많았지만 그 친구 며느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로펌의 변호사라 섣불리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너무 잘나가는 며느리를 본 어려움입니다.
고민 끝에 친구는 2월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에 와서 주중엔 손녀를 돌보고 주말엔 자기 집으로 가는데 지난 주말에 만난 친구는 손녀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속에 설움이 가득하여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도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친구는 강인한 성품이고 리더십도 있고 친구입장에서 봐도 거물로 생겼습니다. 여태는 말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을 움직였는데, 지금은 조그만 손녀 하나가 맘대로 안 되는 겁니다. 이리 가자하면 저리가고, 자자고 하면 놀자고 하고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해서 그럼 집에서 하루 놀자고 했더니 한 시간이 못 되어 어린이집에 가자고 조르는 등 아기 비위 맞추기가 왜 이렇게 어렵냐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그 사정을 이해하고 다들 공감했습니다. 꼬맹이 하나가 할머니 알기를 만만의 콩떡으로 여기니 억울하기도 한 겁니다. 그 아이가 자신에게 귀한 손녀라 어찌 되었든 잘 봐 주려고 하는데. 그게 맘먹은 대로 안 되니 속이 보통 썩는 것이 아닙니다.
황혼육아를 하고 있고 황혼육아에 적극적인 내 친구들은 여러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우선 손녀와 신뢰관계를 쌓아야 하니 조급해 하지 말고 잘 참고 비위를 맞춰주고 견디라고 했습니다. 요즘엔 유아교제도 많으니까 책을 읽어주고 맛있는 것을 해 주고 사랑해 주면 아기는 따르게 되어 있다 구요. 어떤 친구는 “애들은 변덕을 부리기 때문에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되고 할머니가 원칙을 가지고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말도 해주었습니다. 체력도 딸리고 힘든 황혼육아를, 상황이 주어지자 거부하지 않고 친구들은 열심히 하는 모습입니다. 자기 손자를 키우는 일에 생색낼 것도 없이 당연히 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요즘엔 젊은 엄마들 보다 할머니가 더 육아에 열심을 내는 것 같습니다.
호랑이 사육사를 닭장 우리에 넣고 병아리를 키우라는 것 같아 보이긴 합니다.
도무지 조그만 손녀를 어떻게 돌봐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는 모습이 가엾어 보입니다.
할머니라고 해서 평생 하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봐줘야 하는지?
대안이 없으니 하긴 하는데 그다지 행복해보이진 않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은 열심히 설득을 합니다.
아이를 엄마가 기를 수 없을 때는 남의 손에 키우기보다 조부모가 돌보는 것이 맞고
어떤 일보다 손자를 잘 기르는 일이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라고.
그러나 며느리가 과감하게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는 것도 순리일 수 있겠는데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며느리를 집에 들어앉히면 그것도 낭비이긴 할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아이 키우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우리 때는 보통 한 부모에 5~7남매였는데 어떻게 컸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자녀 가지고도 이렇게 쩔쩔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순이
데레사
2016-02-23 at 12:39
별별다방 상담내용 같습니다.
손녀를 보는게 좋은가, 아니면 하던 일을 계속하는게 좋은가에
솔직히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인생은 살아보지 않고는 모르니까요.
그러나 기왕에 사직하고 손녀 돌봐주기로 작정했으니 마음 굳게
가지시고 잘 해나가셔야 할텐데 제가 다 걱정 스럽네요.
저역시 오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정일에는 서툴거든요.
뭐라고 조언 드릴수도 없고 힘내시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
막일꾼
2016-02-23 at 13:24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네요.
이 글 읽으니 멀리 떨어져 살고있는 자식들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ㅎ
비풍초
2016-02-23 at 14:59
다른 나라에서는 어찌 하는지 궁금합니다.
Pingback: 변호사 며느리 대신 손녀 봐주는 거물 친구를 보니 [블로그타임스 20160224] - 블로그타임즈
睿元예원
2016-02-24 at 05:39
아기 돌보기가 힘드신다니
안타깝네요.
저라면 즐겁기만 할텐데..
놀이기구와 아기랑 소통만 되면 아기 혼자 잘 놀지요.
그외에는 경제적으로 되는 댁 같으니 도와주시는 분이
계실테고요.
제가 아는 댁은 베이비씨터와 함께 돌보기도 하더라고요.
벤자민
2016-02-24 at 06:40
여기서는 과감하게 child care 에 맡깁니다
자식과 손자에 목을 메는 나라는 한국이 대표적인 나라지요
그런곳에 맡기면 첨에는 울고 불고 하지만
조금 지나면 또래애들과 잘 놀아요
옥이야 금이야 키워 나중에 잘풀리면
부모덕이 될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 잘봐줬다고
꼭 성공하라는 법이 없지 않겠어요 ㅎㅎ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긴 하지만
내 인생 버리고 자식에 메달리는다는건
여기서는 미련한 생각이라는거지요
또 경제적 여건이 충분히 되는데도
꼭 할머니에게 부탁하는 며느리도 문제같군요
영지
2016-02-24 at 18:46
여자가 잘 나가든 못나가든 맞 벌이를 해야하는 세대에 삽니다.
모든 맞벌이 부부의 공통점은 집안일도 서로 돕고 나눠 해야하고,
아침에 출근전에 화장하고 아침 준비하느라 바쁘면 남편은 애 깨워
옷입히고 준비하고 등등 .
더구나 엄마 직장에 탁아소까지 있는데 애가 잔다는 것 때문에 주의 사람을
요청한다는건 좀 이해하기 힘드네요.
출장을 간다든가의 특별한 경우에는 주위 협조를 받더래도,
탁아소에서 서로 감기도 주고 받고 사회성도 높이고 또 애들은
애들끼리 놀아야.
애들도 저녁에 국민학교 까지는 저녁 8시정도에는 무조건 잠자리로,
물론 잠자리 분위기를 아기때부터 조성, 규칙적으로 아기 일정을 조정하면 자연히 따라와요.
아기도 아침에는 일찍 깨우면 되고요.문제는 부부의 일과 계획성에 딸려 있어요.
아침에 바쁜 출근시간을 위해서 전날 탁아소 들구갈 보따리를 미라 준비해 현관 앞에 둔다든가 등등.. 또 아이들은 어떤 한계가 필요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아니지요)
부부는 물론 주위 어른들이 일관성 있게 대하지요. 물론 아이들이 어느곳이나 다 귀엽고 소중한 존재지요. 하지만 아이 비위 맞춘다고 하자고 하는대로 다 해준다면 과연 아이에게 이득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