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있는 근처 은행에 통장을 새로 하나 만들까 해서 갔었습니다.
사용하고 있는 통장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새 통장이 하나 필요해서요.
은행 창구가 한가하기에 통장을 빨리 만들 수 있겠구나, 간단하게 생각했습니다. 번호표를 뽑고 잠깐 기다리자 내 차례가 되어 은행원 앞 의자에 앉았습니다. 전에는 창구 앞에 선 채로 바쁘게 입출금을 하곤 했지만, 요즘엔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니까 은행에 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통장을 가지고 입출금 용지를 써서 도장까지 찍어 현금을 찾았고 입금을 했습니다. 지금은 급여도 통장으로 들어오고 공과금이나 카드 사용 금액도 알아서 통장에서 나갑니다. 현금이 필요하면 은행 ATM에서 카드로 찾으면 되고 결혼식 부조나 조카들에게 주는 적은 액수의 용돈은 카톡으로 보내면 됩니다.
은행에 갈 일이 거의 없다가 오랜만에 은행에 갔다가 충격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통장 개설을 위해 주민등록증과 번호표를 내면서
“입출금 통장을 하나 만들어주세요.” 했더니. 은행원이 나를 쳐다봅니다.
은행원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요즘 대포통장 때문에 말썽이 많은 거 아시지요?”라고 말합니다.
나는 웃으면서
“제가 대포통장 만들 사람으로 보이나 봐요?”라고 농담으로 받았습니다.
은행원은 빙그레 웃으며
“새 통장 만들려면 서류가 필요합니다.”라면서 안내문을 보여줍니다.
재직증명서나 자동이체를 3건 이상 해야 새 통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직장에 재직 증명서를 발급받아 급여 자동이체를 신청하는 것이 새 통장을 발급받기에 가장 쉽다고 설명합니다. 직장에서 재직 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급여 이체를 바꿀 정도로 긴한 일이 아니라서 자동이체를 생각해 보겠다고 했더니 개인 정보를 열람하는 일에 동의하냐고 물었습니다.
동의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은행원이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A4 용지 한 장에 은행 거래 내용이 적혀 나왔습니다.
약국을 할 때는 근처 은행에서 은행원들이 자기네 은행을 이용해 달라고 메모지나 볼펜 달력 같은 것을 들고 수시로 찾아와서 졸랐는데 통장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워졌나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졌습니다.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은행원이 요즘 대포통장 때문에 사고가 워낙 많아서 그런다고 설명을 다시 합니다. 법이 그렇다니 뭐 은행원을 데리고 말해 봐야 그렇고 해서 다음에 오겠다고 했더니 은행원은
“죄송하지만 은행 개설을 위해 손님 정보를 우리 은행에서 열람했기 때문에 한 달 이내에는 다른 은행에 서류를 가지고 가도 통장 개설이 어렵습니다. 이점 양해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은행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데 그 인사조차도 불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은행 통장도 하나 맘대로 못 만드는데 무슨 행복한 하루가 되겠어요?
은행통장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워진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노인들은 은행 거래를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금융사고가 많은 탓이겠지만 통장 개설이 거절되는 상황이 묘하게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금융사고를 낸 적도 없고 큰 이자소득을 얻은 적도 없는 평범한 사람에게까지 은행 문이 이렇게 높아졌구나 하는 것을 체험하고 급 자격지심까지도 생기는군요.
내가 대포통장 만들 사람으로 보이나?
노숙자 같은가?
나이 탓인가? ㅠㅠ
데레사
2018-11-18 at 16:58
아니 주민증과 도장만 있으면 본인 확인후
바로 통장을 만들어 주지 않는가요?
하기사 최근에 새로 만든적은 없지만 이상하네요.
다른 은행도 이용 안된다하고 그야말로 이건
갑짙입니다.
비풍초
2018-11-19 at 00:26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법이 그렇게 만든거지요. 은행뿐만아니라 저축은행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증권회사에서는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지만 비슷할 겁니다. 즉, 수시입출금 계좌를 개설하려면 예전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김수남
2018-11-20 at 00:22
네,언니! 그런 일이 계셨군요.고객의 안전을 위한 법이겠지만 불편한 부분도 많아졌네요.
언니가 느끼신 그 마음 정말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