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박천홍지음

이책은742쪽의장편이며주(註)및찾아보기까지합하면800쪽이넘는다.책의저자가낯설어검색해보니사학을전공한자유기고가라는설명과함께그밑에<매혹의질주,근대의횡단>이라는책에대한설명이붙어있다.

제목을본순간"아!이책과유사한데가있구나."라는생각이들었다.

<매혹의질주,근대의횡단>은읽은기억이나기는하는데정말읽었는지아니면당시읽으려고했던것인지분명치않다.벌써4년넘게지났으니그럴만도하다.인터넷에서책의내용을소개한것을보니읽은기억이되살아난다.당시에는지금보다두배이상책을읽었으나메모를해놓지않아책의제목이나내용이가물가물한경우가많다.이곳에책을읽고난후짧은감상이라도남겨야겠다는생각을한이유이기도하다.

이책은3면이바다인조선에일부러해도측정을위해서온경우,목적지를가다가세계에잘알려지지않은조선이궁금해들른경우,표류해온경우등다양한이유로우리나라를찾은외국배들에대한이야기이다.조선과상대방에남겨진자료를조사하여정말많은외국배들의조선방문에대해기술하고있다.그러나경우는달라도조선의대처방법은대동소이하다.수백년에걸쳐일관된입장을견지한것을일관성이있다고좋아할일이아닌것이문제이다.많은이양선에대해일부는조정에까지보고되지만일부는보고조차되지않고지나가는경우도많았다.내용이비슷하고조선조정및지방의말단간부,그리고일반백성들의대처방법들이모두비슷하다보니수백년에걸친전체자료를정리,기술한다는것외에무슨의미가있는것일까궁금해진다.

조선후기에조선조정에서이양선에대해각지방에내린지침은비교적분명하다.이양선이표류라면그들을돌보아주고일정한조사를거친후육로를통해중국으로보낸후그들나라로보낸다는것과이양선과교역은하면안되며,지방관리는그들이방문한목적,배의형태,배및배및선원과관련된모든사항을자세히조사하여보고해야한다.그러나말이통하지않아어느나라에서온배인지도확인할수없고,거리상으로지방관리들이시도때도없이나타나는이양선들을자세히조사할수는없는노릇이라매번이양선이나타난지역은지방관리들만곤혹을치르다보니아예보고자체를하지않는경우도있었다하는데이런경우가더많았을것같다.일부이양선들은교역을요구하는경우가있었지만조선은중국의속국이므로중국의허락없이외국과교역을할수없다는내용도나온다.또한이러한내용들을중국에보고하고,당시청나라는이러한조선의대처방법에대해포상하는내용도포함되어있다.

외국배들도당시에는조선방문과관련한많은자료를남겨서당시조선의상황,주로바닷가에연한일반백성들의의식이나생활상을알수있는데대부분이미개하거나거칠고생활이곤궁하다고기술하고있다.1854년러시아함대가거문도를방문했을때는당대러시아의문호이반알렉산드로비치곤차로프가동승하였는데그는항해일지를기록하고러시아와일본사이의협정문서를작성하는임무를수행하였으며그외에도함대가조선이곳저곳을방문할때조선에대한기록을남겼다.이책에서소개한곤차로프의기술은대부분조선인을비하하는내용들이다.모든것이엉성하고비참한내용들을담고있다.예를들어조선인의모자(갓)에대해아무짝에쓸모없는것을쓰고다닌다는내용과주거지역의담을엉성하게쌓았다는내용등이다.고군산도에서는불란서배가물러가면서남긴궤중에자명종이있었는데똑딱똑딱소리에굿을해서도깨비를쫓는수밖에없다하여굿을하니소리가끊어져굿이영험하다고생각했는데그것이나중에자명종소리였다는얘기가전해온다고한다.

이책에서는조선뿐만아니라일본과중국의개항과당시의상황에대해서도비교적자세히기술하고있어1800년대동북아시아의긴박한상황을이해하는데도움이된다.중국은영국과의아편전쟁을통해굴복하지만,일본은비교적큰피해없이미국과협약을맺게되면서당시열강들과교류에나서게된다.한편조선은당시열강들의이해관계에서비교적벗어나있어중국이나일본보다는늦게교류를하게되지만너무늦어버렸다.

조선의바다를통해조선후기수백년동안많은이양선들이다녀갔지만조선은그변화를이해할만한상황에이르지못하였다.당시조선의배들보다우수한함선들이그리많이다녀갔지만그저이양선이었을뿐이다.이를통해세계를보려는노력은보이지않고,단지멀리하고해만없으면된다는일관된태도를보인것이결국굴욕적인역사를맞게된이유가된것같아아쉽다.

저자는책의마지막부분‘나오는말’에서9쪽에걸쳐이책의요약을잘기술하고있다고생각되어소개한다.논문으로치면결론부분이라할수있겠다.

–중략–

그모든일은바다에서비롯되었다.서양이앞다투어동쪽바다로밀려왔을때,동아시아3국의조건은그다지큰차이가없었다.하지만결과는사뭇달랐다.압도적인화력과빈틈없는상업정신그리고과학기술로뒷받침된합리주의철학등으로상징되는서양의패권앞에서중국은반식민지로강등되었고,조선은’꼬마’서양으로발돋움한일본의식민지로전락했다.유일하게일본만은예외였다.’쇄국’에서’개국’으로숨가쁘게몰아치는역사적격랑에서난파당하지않고오히려재빠른변신을거듭하며열강을따라잡아갔다.

이처럼세나라의운명을가른요인은무엇이었을까.먼저중국의경우바깥에서밀려오는압력의강도와밀도가감당할수없을만큼컸다.반면집권층의문화적우월감은지나치게완고했고,사회내부의결속력은너무헐거웠다.자본주의상품시장으로서중국의매력은서양열강을유혹했고,결국중국은군사력을동원한열강의각축장으로변하고말았다.

하지만천하의패자를자처하는집권층의오만과자존심은서양의본질을자각하지못하게하는가리개였다.중국사학자전목이말한것처럼중국인들은“서양이이익을탐내고무력의강대함을믿고나오는수작에그치는것으로오해해서그배후에책동하고있는서양문화의진정한역량과진정한성질을소홀히”했던것이다.또한태평천국의난이상징하듯민중과통치계급은분열되어있었고,서로다른세상을꿈꾸고있었다.

일본이성공적으로세계체제에편입되는과정은눈부셨다.거기에는객관적정세도무시할수없었다.자본주의열강은중국에눈독을들이면서일본시장은상대적으로낮게평가했다.페리함대가일본에내항한목적도중국시장으로진출하기위한거점이필요했기때문이었다.게다가크림전쟁으로러시아의야망이발목을잡히는행운도따랐다.또한조선과는달리중화질서체제의제약이느슨했고,그만큼거기서탈피하는것도쉬웠다.

근대일본의역동성은내부에서찾을수있다.바쿠후는다이묘를통제하고민중을지배하기위해기독교를금압했지만,상업과종교를분리함으로써나가사키항구를열어두고있었다.나가사키항구는바깥세계를향해열려있는눈과귀였고거기서난학이꽃피었다.네덜란드상인이바쿠후에제출했던<화란풍설서>는긴박한국제정세를읽을수있는일급정보원이었다.<해체신서>(1774)로촉발된일본의난학과번역운동은서양의진보적학문과기술에눈을뜨게했을뿐만아니라,낡은세계관을해체하고바쿠후의붕괴를앞당겼다.전투를직업으로삼았던통치계급의상무적기풍은서양의물질문명을적극수용할수있는정신적토대이기도했다.

조선이서양의충격에대처하는과정은중국이나일본과크게달랐다.이단종교에대한강박관념은관용의정신을몰아내버렸다.고도로추상화된관념과이념은생동하는감각과구체적현실을압도했다.서양의자본주의열강에게조선은상품시장으로그다지혹할만한곳이아니었다.열강들은중국시장에군침을삼켰고,일본에대해서는막연한동경과환상을품고있었다.그에비하면조선은미미한존재였고,그나마폐쇄된공포의왕국쯤으로알려져있었다.중국과일본에비해바깥의압력은그다지높지않은편이었다.

–중략–

근대는발톱을감춘난폭한맹수처럼조선을덮쳐왔다.그것은타율적인개항과억압적인식민지화로귀결되었다.후대의경험만을현미경적시선으로확대시켜본다면,우리의근대는언제나실패와비극,고통과전율로점철되어있는것으로보인다.하지만시간을거슬러기원의시공간으로올라가보면훨씬역동적이고중층적인가능성이열려있었다는것을눈치챌수있다.근대로향하는길목에는여러갈림길들이놓여있었다.

–중략–

작가박천홍의<매혹의질주,근대의횡단><악령이출몰하던조선의바다>모두역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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