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바라보이는아내의뒷모습은언제보아도사랑스럽다.긴목에쓸어올려묶은생머리는마흔이얼마남지않았는데도아직이십대같은느낌을준다.그렇지만이런생각을아내에게말해준적은없다.괜히손해볼것같은생각이들어서이다.사실젊어서는아내의미모때문에고민한적이많았다.아주예쁜얼굴은아니었지만지적인느낌을주는데다키도당시로서는꽤크고늘씬해서지나가면남학생들이한번쯤은돌아다보곤했다.대학생때부터쫒아다니던남학생들이꽤있었고둘이데이트하는데도앞에서말붙이는학생까지있었다.몇년전까지만해도결혼한줄뻔히알면서치근덕거리는직장동료들도좀있는눈치였다.동철은나이가든티가조금씩나는아내가오히려반가울지경이었다.
“오랜만에바다바람을마시니너무좋아.”아내는바다를떠나온지두시간이지났는데도아직바닷가에서있는듯한얼굴을하고있다.
“여보,운전조심해.뒤에하늘같은남편이타고있으니.”뒷좌석에앉은동철이가한마디한다.
날이어두워지면서반대편차들에서뻗어나오는불빛에시야가좋지않다.옆에앉으면운전하기불편하다고뒷좌석에앉기를고집하는아내탓에아내가운전하는경우에는언제나뒷좌석에앉는동철은이렇게얘기했지만아내의기분을이해할것같다.사실결혼하고서둘이바다구경한지가언제인지잘떠오르지않는다.결혼초당시속초에살던친척에게인사간다고가본이후한10년은지난모양이다.회사다니랴,하나있는딸아이뒤치다꺼리한다고매일매일이눈코뜰새없이바쁜그녀다.결혼조건으로결혼후나아이를가진후에도직장생활하는것을내걸었을때그리내키지는않았지만워낙강경하게주장해승낙할수밖에없었다.직장생활을열심히한덕에아내는회사에서마케팅팀장으로부하직원만10여명이된다.
“하늘?무슨하늘?”혜민이동철의말이끝나기도전에한마디한다.
혜민은별것아닌동철의말에갑자기기분이가라앉는느낌이들었다.결혼한지10년이넘었지만자신의기분하고는항상달리한다는느낌을갖고있던터이다.
“내말에보조좀맞춰주면안돼요?”혜민의목소리톤이조금높아진다.흥분하면나타나는징조다.
“여보,조금가면휴게소있는모양인데들렀다갈까?피곤하지?피곤하면내가운전할께.”동철은눈앞에휴게소안내판이보이는것이반갑다.이럴때는일단방향을조금바꾸는것도한방법이다.
“당신이아까마신소주는어쩌고?”혜민의목소리는아직도정상이아니다.그래도더높아지지않는것이다행이다.동철이점심에반주삼아소주몇잔마신것을두고하는말이다.
점심에어시장근처에있는식당에서생선회와매운탕을시켜놓고점심을먹는데동철은혜민이말리는것을뿌리치고소주한병을시켜몇잔을마신터이다.혜민은동철이아무때나기회가생기면술마시는버릇을좋아하지않는다.그렇다고동철이술마시고밖에서실수를한것도아니요,혜민에게술주정을하는것도아닌데혜민은지나치다싶을정도로술냄새자체를좋아하지않는다.술이라도한잔마시고들어간날은동철은아내와각방을쓸각오를해야한다.젊어서몇차례술김에아내를안아보려다가그때문에싸우기도많이싸웠다.혜민은술마시고들어온동철의술냄새도술냄새지만술취해들어온동철이술김에안으려고하는것을더싫어하였다.자신을술집여자로생각할지도모른다는생각이들어술마시고들어온날은무슨일이있어도동철을받아들이지않았다.그렇게지내다보니동철도술마신날은서재로쓰는방에서자는것을당연하게생각하게되었다.
“그게얼마나된다고.소주세잔이야,세잔.그리고벌써몇시간이지났는데.”
동철은이렇게이야기하면서도혹시불면걸릴지도모르겠다는생각이들었지만운전안하면되지하는생각에약간안심이되었다.동철의말에혜민은대답이없다.반대편불빛에비치는아내의얼굴이약간굳어있는듯하다.
갑자기비가차앞창을때리기시작한다.빗방울이굵어서인지차천장을때리는소리도만만치않다.차들도속도를줄여서잘빠지던차들이조금씩밀리기시작한다.그래도한참을왔으니집까지는한시간조금넘게가면될것같다.조금가니마지막휴게소라는팻말과함께휴게소입구가보이는데갑자기내리는비탓에잠시쉬어가려는차들로입구부터혼잡하다.아내는줄지어서있는차들이빠지기를기다리면서도별말이없다.조금씩밀려서휴게소내로들어가는데빈자리가보이지않는다.혜민은동철에게군것질거리와음료수좀사오라며편의점앞에차를세운다.동철은갑작스런혜민의요구에조금짜증이나기는했지만조금전자신이휴게소들렀다가자고한말때문에차문을열고나섰다.생각보다많은비가내리고,뒤차는조금의기다림도없이헤트라이트를번쩍거린다.뒤차에미안하다고한손을들어주고서는편의점으로계단을뛰어올라갔다.
동철을내려준혜민은뒤차가헤트라이트를번쩍거리는것을본순간짜증이났으나비켜주려면앞으로진행하는수밖에없었다.주차장끄트머리에있는주유소가보이도록가보아도빈자리는보이지않는다.여기저기서빵빵거리는소리가나고우산없이이리저리뛰어다니는사람을피하느라혜민은머리속이지끈거린다.그순간조수석에놓아둔혜민의휴대폰에서요즘유행하는‘Nobody’음악소리가흘러나온다.혜민은이노래가한물간터라컬러링을바꾸어야겠다는생각하면서전화를받으니시어머니전화이다.학원다녀온딸아이를봐달라고옆동에사시는시어머니께부탁을드렸다.
“너희들언제오냐?집에가서너희아버지저녁상차려드려야하는데.”시어머니의카랑카랑한목소리가이어폰을통해흘러나온다.시어머니의목소리는일흔이넘은지금도젊은이못지않다.처음시어머니를만났을때는시어머니의목소리때문에주눅이든적도있었다.
“한시간정도면들어갈수있어요,어머니.조금만더봐주세요.”혜민은가능한상냥한목소리로말을잇는다.
“갑자기비가오는데조금밀려서요.”
“그래?애아범에게운전조심하라고그래라.”시어머니는이말을하고서는혜민이대답도하기전에끊어버린다.
시가두분의전화요금을내드리는데도휴대폰쓰시는것을탐탁하게생각하지않으신탓이다.어쩌다집에오셨다가혜민이회사일로몇십분통화하게되면그돈이얼마냐,그돈은누가내냐고묻고는하신다.이런생각을하다가친정어머니도휴대폰에대한생각은시어머니와같다는생각이들어슬며시얼굴에웃음이돌았다.친정어머니도마지막에는혜민이대답을하기도전에전화를끊고는한다.한번은민지가외할머니와통화를하다가눈을동그랗게뜨면서혜민에게말한적이있다.
“엄마.외할머니나한테화나셨나봐.”
“왜?”혜민이물었다.
“내가인사도하기전에전화를끊으셨어.”
“민지야,화나신게아니고휴대전화오래쓰면전화요금많이나온다고짧게통화하려고그러시는거야.”
“피,전화요금이나오면얼마나나온다고손녀가인사도하기전에전화를끊어.”
혜민은민지의말에수긍을하면서도수십년간몸에밴친정어머니의전화습관을바꾸지는못할것이라는생각이들었다.
혜민은자연스럽게주차장을지나고속도로로다시진입을하였다.비는계속되고차천장을때리는빗소리에어수선하다.동철은뒷자리에있겠거니하는생각으로앞만바라보고정신을집중하고있었다.
한편동철은편의점에서혜민이좋아하는콘칩과옥수수차를사가지고나오다가담배가다떨어졌다는생각에다시들어가담배한갑을사가지고는비를피할수있는곳에서담배를한대피워물었다.술도술이지만담배냄새도싫어하는아내가부담스럽지만차타기전에껌하나씹어야지하면서담배연기를내뿜는다.아내와결혼한것은정말이지동철에게는행운이었다.평범한학생이었던동철은아내를미팅에서처음만났다.미팅에서파트너로만난것은아니고미팅으로인한인연이결혼까지골인하게되었다.동철이군대다녀와4학년말에직장을잡은뒤친구들과마지막방학을따뜻하게보내자며잘아는후배를졸라미팅을주선하라고압력을넣었는데참석을해보니여학생이한명안나온것이었다.참석한남학생들이각자소지품을내놓았는데동철은당시아버지가쓰시던것을가지고다닌탓에회중시계를내놓았는데여학생들이회중시계만남겨놓은것이었다.미팅을주선한후배는미안하다며어려서부터친하게지낸다는친구와그누나를불렀는데그때아내와처음만나게되었다.처음만난날아내는거의말이없었다.겨울이라빨간색코트에하얀색목도리를하고나왔는데동철은그모습에빠져너무쳐다보는통에후배가옆에서허벅지를찌르기도하였다.당시에는혜민이왜이런자리에나왔는지궁금해하기도하고,혹시얼마전에실연한것이아닌가생각했던일들이기억에떠올라잠시착찹한생각이들었다.아내의외모에미팅에서안된것이내심잘되었구나싶었지만한편지레포기할생각도갖고있었다.저정도면남자친구가있던가,없다고하더라도나같은놈하고사귀지는않을것같았기때문이다.이런생각을하면서주차장을바라보니어둡기도하고비가내려차가구별이잘되지않는다.마지막으로담배를한모금빨고서는꽁초를재떨이에버리고서휴대폰으로아내에게전화를걸었다.
“여보,나편의점앞에있는데어디에있어?”동철은당연히아내가차를주차장에대놓았다고생각하고물었다.
“당신차에안탔어요?”말이끝나기가무섭게뒤를돌아다보니비어있다.뒤에서빵빵거리는차에다시어머니전화까지받느라정신줄을놓은탓이다.
“어떻하지?나지금고속도로로들어선지꽤지났는데.여보,어떻해.”혜민의말에동철은할말을잊었다.고속버스타고가다가휴게소에서차놓치면어떻게하나하는생각을해본적이없는것은아니지만내경우는아니었는데오늘은아니다.빗줄기는계속굵어져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