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하)

시오노나나미지음

김석희옮김

1월4일내린눈이아직도하얗게지붕을덮고있어눈온지며칠되지않은것같은느낌을준다.나무위에모자를쓴것같은모습도아직볼수있다.두주가다지나도록눈이녹을기회를주지않고추위가계속되더니그나마어제오늘은조금지낼만하다.그제저녁에강변도로를지나는데한강가운데까지얼은모습이다.

로마멸망이후의지중해세계상권에이어하권을읽어야겠는데도서관홈페이지에하권은국제C에만책이들어와있는것으로나온다.그러려니했는데한편에보니국제C에있는책을신청하면서울C에서대출할수있다는안내가있어신청을하였는데생각보다일찍연락이온다.

책뒤의겉장에는다음과같이적혀있다.

“지중해세계는바다를가운데놓고800년동안이나아랍인이주도하는이슬람세계와기독교세계로나뉘어대결해온긴역사를갖는다.하지만앞으로는투르크가주도하는이슬람세계와기독교를믿는유럽각국의대결이된다.

그렇기는하지만이슬람교와기독교의대결구도는조금도변하지않았다.이슬람쪽도초록색바탕에하얀반달이었던것이붉은색바탕에하얀반달로바뀌었을뿐이니까.투르크술탄술래이만의야망은기독교세계인유럽전역을오스만쿠르크제국의속령으로삼아서쿠르크가주도하는‘이슬람의집’으로만드는것이었다.”

상권에이어하권에서도로마멸망이후의지중해세계는내내해적이야기이다.프랑스,에스파냐(스페인),그리고로마교황청을축으로하는기독교계와이슬람교의투르크의대결이계속된다.같은기독교계인프랑스와에스파냐는서로앙숙인관계로인해프랑스가투르크와손을잡는모습도보인다.이런관계를보면누가낫다고하기힘든상황이다.주로해적에의한공방전이계속되다보니하권을다읽어도전편과다른점이딱히남지않는다.

기독교계의단합이잘되고세력이커지면투르크의지원을받는해적이뜸해지고,반대가되면해적질이난무하는지중해.그러는사이해안에사는사람들의수난은계속된다.

해적이라는표현에는기독교계의시각에서본것이라부정적인의미가포함되어있다.이슬람의입장에서는어떤방법이던지‘믿음이없는개’로취급하는기독교계에타격을줄수있다면해적질이라도좋다는입장이었으나당하는입장에서는생사가달린괴로운일이었을것이다.하루이틀이아니라수백년계속된이해적질은다음과같은과정을거쳐양대세력간에불법으로선언하게된다.

1740년,투르크는해적행위를전면적으로금지한‘해적금지령’에조인했다.

이단계에서해적은공적인지원을받고있었던‘코르사로’가아니게된것이다.따라서그후의해적은사적인이익을위해서만해적질을하는‘피라타’로되돌아갔다.

1816년,일찍이해적의3대기지였던북아프리카의주요도시인트리폴리와튀니스와알제에서도해적금지법이시행되었다.

1830년,프랑스가알제리를식민지화하기시작한다.

서유럽국가들이모로코,튀니지,리비아.이집트(주요해적의근거지가속해있는지역들)로진출하는식민제국주의시대로접어든것이다.

1856년,‘코르사로’든‘피라타’든모든해적행위를엄금한다고선언한‘파리선언’이성립되었다.해적금지는이제국제적합의가되었다.이리하여적어도지중해세계에서는해적이자취를감추었다.445쪽중에서

상하권을읽으면서,특히하권을읽으면서여타책들보다는낫지만[로마인이야기]때보다는약간부족한느낌이들었다.이런느낌은저자의다른책을읽었을때와비슷하다.비교가적절하지는않지만작고하신박경리작가의[토지]를읽은후[김약국의딸들]을읽은느낌과비슷한부분이있다.그렇지만읽고싶었던책을읽을수있어좋았다.주로지중해에국한된이야기이기는하지만중세는어떠했는지하는궁금증은다소해소되었다.과거에는막연히암흑의중세라는느낌을가지고있었는데주로는해적이야기이기는해도당시의상황을이해하는데도움이되었다.또한저자의덕에적지않은분량의책을읽을수있었다.

책의내용중에서

현대의이탈리아해군에는사관후보생훈련용인대형범선이있는데,그것을본사람이라면누구나그아름다움에탄성을지를게분명하다.범선의이름은‘아메리고베스푸치’(AmerigoVespucci)다.서기1500년무렵두차례에걸쳐대서양을횡단하고아메리카가대륙이라는것을유럽에전한사람의이름을딴것이다.제노바사람인콜롬버스는자기가도달한땅이인도의일부라고계속믿은모양이지만,그보다10년뒤에같은위업을이룩한피렌체태생의베스푸치는그곳이신대륙이라는것을깨달았다.그래서인지어떤지는모르지만,아메리카라는이름도이사람이이름인‘아메리고’에서유래했다.134쪽중에서

16세기전반을역사학자들은유럽정치의파워게임시대라고부른다.이시대의주인공은프랑스왕프랑수아1세와에스파냐왕이지신성로마제국황제이기도한카를로스다.이들두사람사이에치열한파워게임이벌어지게된요인을열거하면다음과같은것이다.

첫째,두사람은즉위했을때부터이미광대한영토를지배하는전제군주였다는것.—중략—

둘째,두사람은나이차이가여섯살에불과하니까같은세대에속해있었다는것.상대의나이가훨씬많으면상대가죽기를기대할수도있지만,나이차이가고작여섯살이면그것도기대할수없었다.

셋째,거의같은시기에젊은나이로권력을잡고,게다가프랑수아는32년,카를로스는42년이라는오랜치세를누린군주였다는것.192쪽중에서

42세가된프랑수아1세는프랑스군도그최고사령관인자신도전투에능하지못하고그래서약하다는현실을인정할수밖에없었는지도모른다.특히에스파냐병사만이아니라독일병사들도부릴수있는카를로스에게는도저히이길수없었다.그래서이비관적인상황의타개책으로새로운자기편을찾았는데,그것이기독교국가의우두머리로서는생각할수도없는상대였다.

파리와콘스탄티노플사이의연락은오로지프랑스왕의밀사가투르크궁정에가는방식으로이루어졌다.이것을보아도프랑스와투르크의동맹을제의한것은술래이만이아니라프랑수아쪽이었을가능성이높다.그렇다해도당시최고수준의‘첩보기관’을자랑하는베네치아가전혀눈치채지못하게동맹을실현한것은참으로교묘했다.

이듬해인1537년에분명해진프랑스와투르크의동맹에기독교세계는깜짝놀랐다.로마교황은비탄에빠졌고,각국은일제히프랑스를비난했다.197쪽중에서

바르셀로나와마르세유,제노바,피사,나폴리,시라쿠사,팔레르모에오래된건물이남아있는것은그항구도시들이방위력을가지고있었기때문이다.다른도시나마을들은해적의습격을걱정하지않아도되는시대에지어진건물이태반을차지하고있다.어쨌든7세기부터18세기까지1천년넘는세월동안,북아프리카에서습격해오는이슬람해적을빼고는지중해세계의역사를이야기할수도없었기때문이다.

해상에서이들관광지를바라볼때마다,그리고지금은레스토랑이나나이트클럽으로쓰이고있는‘사라센의탑’을만날때마다‘팍스’(평화)란결국일반서민의안전을보장하는것이라고생각지않을수없다.그리고치밀어오르는쓴웃음을지으며생각한다.인간이란안전만보장되면자기들끼리그런대로잘해나갈수있는존재라고.444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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