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3)

시오노나나미지음

송태욱옮김

아민말루프지음

김미선옮김

십자군이야기(3)는(1)권이나(2)권과달리두께가두껍다(595쪽).내용은원정과전쟁의반복이다.이세권의책을읽었다고해서‘십자군전쟁’의실체를모두알았다고는할수없을것이다.그렇지만처음책을읽기시작했을때의궁금증은어느정도해소되었다.


2백년에걸쳐8차에걸친중세의전쟁이왜시작되었는가?전쟁의실체는무엇인가?그렇지만책을읽고난후의느낌은처음‘십자군이야기’를읽기시작했을때와는많은차이를보인다.이제는다음과같은질문이생긴다.


왜그리싸워야만했는가?그시대에살지않은사람으로서,종교가없는사람으로서이해하기는쉽지않은문제일것이다.흔히종교전쟁이라고이야기하지만그시대의정치적,종교적,경제적이해관계의복합적인산물일것이다.


이책을읽는중에도서관에갔다가‘아랍인의눈으로본십자군전쟁’이라는책이있다는것을알게되어같이읽었다.이슬람교도의입장에서는수백년간지배해온예루살렘을어느날갑자기서유럽의그리스도교도들이내놓으라고쳐들어온것이십자군전쟁인셈이다.‘십자군이야기’에서성안에서수비의하고있는그리스도교도들의상황을이야기하고있다면이책은성밖에서공격하는이슬람교도들의이야기를담고있는책이다.무엇인가새로운이야기가들어있나싶어읽었지만내입장에서는그리스도교도들의’십자군이야기‘나이슬람교도들의’그리스도교도들에의한침략전쟁‘이나다를바가없어보인다.


세권의‘십자군이야기’그리고그사이같이읽은‘아랍인의눈으로본십자군전쟁’을보면서편향되지않고,보편타당한사고를한다는것이어렵다는사실을새삼느끼게된다.

폭염속에책의내용을정리하자니쉽지않아책의내용일부를소개하고마치고자한다.


<십자군이야기(3)중에서>

말이나온김에덧붙이자면,제3차십자군의또한가지특색은그리스도교측에든이슬람측에든기적이나은총에대한기록이전무하다는점이다.제1차십자군때는왕왕등장했던,기적이일어난다거나신이나성인이도움을준다거나하는현상이일어나지않은것이다.

물론양쪽수뇌부사이에오간서신에서는‘신에게감사한다’든가‘신의도움으로’라는문구를찾아볼수있었지만,이는당사자의독실한신앙심을담은것이라기보다는그시대의관용구에가까웠다.지위가높지않은이가남긴기록도반드시이러한문구로시작한다는것이그증거다.

한마디로정리하면,제3차십자군은세속의인간들이일으킨전쟁이었다.신도,신의도움도끼어들여지가없는,오직인간들사이에서벌어진전쟁이었던것이다.설사한쪽이십자를새겨넣은옷을걸치고,다른한쪽이코란의글귀를흰색으로써넣은녹색군기를휘날리고있었다해도.

이러한특색은제3차십자군의주역인살라딘과사자심왕리처드의기질때문이아닐까싶기도한데,두사람은신을제쳐놓고남자대남자의대결을하고싶어하는성향의소유자라는점에서유사했다.십자군의역사는이제3차십자군때부터,여전히십자군이라불리기는해도,그양상이바뀌기시작한것이다.75쪽중에서

프리드리히와강화교섭을하던당시알카밀은프리드리히에게내몰려하는수없이양보해야하는입장이아니었다.오히려비교적유리한위치였는데,그런그도그리스도교측에예루살렘을양도하면이슬람세계가맹렬히반발하리라는것을충분히예상할수있었다.그런데백부나아버지도전혀고려하지않았던완전양도를단행한것이다.잊어서는안되는것은,이집트를침공한제5차십자군과맞서싸울당시의알카밀은술탄의자리에막오른직후여서권력기반이약했었다는사실이다.그런그가십자군의침공만없다면중근동의그리스도교도와충분히공생할수있으리라고생각했다해도무리는아니다.그리고더이상십자군이원정을오지않도록예루살렘을그들에게양도해버리면문제가해소되지않을까,라고생각했을수도있다.397쪽중에서


예루살렘이다시그리스도교도의것이되었다고해서지금껏그곳에살던이슬람교도가전부사라진것은아니었다.‘이슬람지구’로제한된그들의성지를관리하는이들을비롯해아직많은이스람교도가예루살렘에살고있었다.이들의거주는알카밀과의강화로도인정한바였다.그리스도교화한예루살렘에서퇴거당한것은그전까지이도시에상주하던수비대,즉이슬람측의군사력뿐이었다.404쪽중에서


이런사태는지금까지150년의십자군역사에서,그리고여섯차례에걸친십자군원정에서한번도없었던일이다.위로는왕에서아래로는병졸에이르기까지거의전원이적에게항복한것이다.물론항복하자마자모두무장해제를당했다.

이참상의자리에서가까스로도망친것은맘루크가방치한시종과마부,요리사들뿐이었고,그외에는일찌감치나일강을타고다미에타로내려간덕에화를면한제노바의선원정도였다.452쪽중에서


고등학교세계사교과서에서도,중세중기에해당하는이시기의그리스도교세계를서술할때빼놓지않는세가지사건이있다.

‘카노사의굴욕’

‘십자군원정’

‘아비뇽유수’


‘카노사의굴욕’이란1077년로마교황에게파문을선고받은속계의최고권력자신성로마제국의황제하인리히가,용서를구하위해교황이머무르고있던카노사성으로찾아가눈이퍼붓는성밖에허름한옷차림으로사흘밤낮을서있었던사건이다.로마교황의위세가황제를능가함을그리스도교세계전체에과시한사건으로유명하다.

‘십자군원정’은로마교황우르바누스2세가프랑스중부의클레르몽에서선언한1095년에시작되어,1291년아코가함락될때까지8차에걸쳐진행된역사상의일대운동이다.

그리고‘아비뇽유수’는미남왕필리프이래로70년동안프랑스왕들이역대로마교황을아비뇽으로‘납치’한일이다.

‘유수’라지만감옥에들어갔던것은아니다.그러나이시기프랑스남부에있는아비뇽은시가지전체가프랑스왕의감시를받았고,그도시에서살던교황이죽은뒤다음교황을정하는교황선출콘클라베도아비뇽에서열렸으며,프랑스왕의뜻대로프랑스태생성직자가교황으로뽑히는일이7대째이어졌다.그사이로마의교황궁라테르노궁은주인을잃었으며,산피에트로대성당에서열리는미사도주최자가없는상황이이어졌다.548-549쪽중에서


<아랍인의눈으로본십자군전쟁중에서>

이책의겉장에는다음과같은문장이있다.

성지회복이라는종교적명분아래수행된십자군원정에는교황의영향력확대,병사들의일확천금에대한야망,베네치아상인들의돈벌이등불순한동기가숨어있었다.7만명이넘는무슬림과유대인이학살된십자군전쟁은중세역사상가장‘잔인한전쟁’이었다.


프랑크인들이들이닥치기전까지이도시의주민들은그들의원형성곽안에서평화롭게살고있었다.그들은올리브와무화과,포도를재배하면서풍족하지는않지만조촐한생활을영위하였다.도시는알레포의리드완이라는명목상의봉건군주를섬기는,큰야심은없으나용감한지방호족이다스리고있었다.마라의자랑거리중하나는아랍문학에서추앙받는위대한문인중한사람을배출한것인데바로1057년에사망한아불알라알마리였다.자유로운사상가였던이맹인시인은금기에도아랑곳않고당대의풍속을솔직하게묘사하였다.가령이런글이있다.

“세상사람들은두종류로나뉜다.

한편은머리는가졌으나종교를갖지못하였으며,

종교를가진자들은머리를갖지못하였다.“68-69쪽중에서


날이밝아오자프랑크인들이들이닥쳤다.학살이시작되었다.사흘에걸쳐그들의칼날에십만명이상의사람들이죽어갔고많은이들이포로로잡혔다.사실이븐알아시르가기록한이숫자는과장이라고볼수밖에없다.함락되기전에이도시의인구는만명남짓이었기때문이다.그러나그들을기다리고있는상상할수조차없는운명을생각한다면희생자들의숫자에담겨있는공포는하찮은것이었다.

마라에서우리들은이교도어른들을커다란솥에넣어삶았다.또그들의아이들을꼬챙이에꿰어불에구웠다.이것은프랑크군대의연대기저자인라울드카엥의고백이다.70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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