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천국

김승구지음

꼭일주일전주말,일간지에실린[BOOKS]란에몇권의책이소개가되어메모를해놓았는데며칠전도서관홈페이지에서검색을해보니그중한권이들어와있었다.책제목은[음식의제국].[BOOKS]란에소개된후그주에도서관에책이들어온것은매우이례적인일이다.대개몇주지나야검색이되었다.책을대출받은후에신간도서를모아놓은곳을보니[음식의제국]과같이소개된또한권의책[식민지조선의또다른이름,시네마천국]이있어같이대출받았다.아무래도성격이가벼운이책을먼저열었다.읽던책이몇권있음에도불구하고.

이책은일제식민지시대의영화,영화관,그리고영화를즐기던당시사람들에대한이야기이다.무성영화가유행하다가유성영화로바뀌고,영화관의시설이라던가,영화광고,그리고식민지시대에당시사람들의영화에대한인식등다양한내용들을담고있다.영화관에대한이야기는내가어렸을때경험한영화관과비슷한내용도있다.

60년대후반이태원에는‘태평극장’이있었다.언제문을닫았는지는분명치않다.지금은찜질방이있는자리다.기억이정확하지는않지만[미워도다시한번]이라는영화를그극장에서보면서눈물깨나흘렸던기억이아직도남아있다.영화내용에따라서는요즘의영화관람태도와는달리야유를보내거나박수를치기도하였다.책의부제가‘비내리는필름에웃고울고’인데요즘은보기어렵지만당시필름에비(스크래치)가내리는것은당연한일이었다.

어렸을때집담에극장포스터를붙이는대신영화표를두장씩받았는데그표로심심치않게영화를보았다.영화관한편에는임검석이있어경찰이한명씩나와앉아있는경우가있었고,상영에앞서모두일어나애국가를따라불렀다.요즘과같은냉난방시설이없어여름에는덥고,겨울에는추웠다.그렇지만TV보급이잘안되어있던시절에영화는오락거리의대표주자였다.

이책에는당시신문에실린영화평이나영화광고,그리고언론사에의한영화제등당시발간되는신문에대한이야기가많이나온다.신문말고는달리광고방법이없던시대적인상황과연관이있다.

내용은비교적가볍게읽을수있는내용들이다.영화에대한이야기뿐이지만시대적인상황이식민지시절이란특수상황이어서그당시의사회상에관심이있다면영화에대해깊은관심이없더라도읽어볼만한책이다.

책내용중한가지흥미로운것은당시상영된<벤허>에대한이야기이다.이영화는내가중학교때단체관람을했던영화이기도하다.지금보면엉성하겠지만그당시에는스케일이큰대작이었고세간에큰화제를불러일으킨영화였다.지금생각으로는재미있게본기억뿐이다.이책에는<벤허>에대한당시의평이나와있는데해석이의미심장하다.이념적인관점에서영화를해석한것인데아래책내용중에일부를적었다.

책내용중에서

1929년11월2일<동아일보>에의하면춘천군청고원(雇員)의월급이23원이었다.그런데이와비슷한시점인1929년11월17일경성조선극장의입장료는성인기준50-80전이었다.—중략—월급이100만원이라면영화비가2만5천원인셈이다.따라서일반가정에서부부동반으로영화구경한번하기란무척어려운일이었다.그러다보니주머니상황이풍족하지못한청소년들은비이성적인충동에휩싸여범죄의유혹에빠져들기도했다.39쪽중에서

일상적오락거리가되기전오랫도안영화는서구에대한지식과정보에목마르던식민지조선인들에게간접적으로서구를체험하게하는훌륭한교재였다.이것이야말로‘활동사진’이수입되던초창기이땅에서가진뚜렷한위상이었다.그래서도덕적타락을우려한기성세대마저영화를교육적측면에서부정하지못했던것이다.그러던것이어느새일상적오락물로바뀌어통속소설같은영화가주류를이루자,근대적계몽의매체라는영화에대한사회적신망이서서히철회되기시작하였다.41쪽중에서

흔히영화를보러갈때‘극장간다’라는말을사용한다.그러나엄밀히말하면극장은연극을상연하는공간을지칭하는표현이므로,영화를보러갈때는영화관에간다는표현이더적절하다.그럼에도우리문화속에서극장과영화관은비슷한공간으로이해되고있다.이는다른나라에서는찾아보기힘든독특한것이다.—중략—영화가대중의호응을얻으면서점차독립적인공간을확보하기에이른것은1910년경이다.이때부터영화는극장과별도로영화관이라는독립적인상영장소를마련했지만,영화관에서전적으로영화만상영한것은아니었다.주요프로그램은영화상영에맞춰져있었지만,부분적으로연극,만담,가요등을공연함으로써복합적인흥행공간으로존재했다.42쪽중에서

어쨌든이미국영화가조선에서뿌리를박는동안조선사람의문화에적지않은영향이있었으니,기독교가준영향보다도모든생활위에감염시킨바가적지않다.그것은대중적인오락기관이전무한데다가극이발달치못했고또는발달치못한것이아니라없었던까닭에이영화가조선대중에게빨리영접된것이니,이영화는조선사람들에게신속히도교육(좋은의미로나그렇지않은의미로나)을시킨바가적지않다고할수있다.이것은조선뿐아니라이영화라는진객(珍客)이들어간곳마다그렇겠지만,값싼요금으로하루의위안을살수있고또는자기생활에대한불만을가진무리들은스크린에서만허락할수있는황홀한세계를찾게되었을것이고여기서그들의정신생활에자기도모르게받은영향이적지않을것이다.그래서한때는종로통대로로활보하는남녀청소년들이영화에나타난인물의분장을하고다닌때도있었으며,그들의섭어(囁語,소곤거리는말)는영화의자막을외는것같은그런것이었다.

여성들의안면화장,양말신은모양,구두,또는스커트가오르고내리는것도영화의여배우를따랐었고,지금은퍼머넌트웨이브가양가의집처녀의깜장머리카락을못살게굴고,또는옥시풀로머리의깜장물을빼서여우털같이만드는이기관(奇觀)역시영화가가져온범죄다.

90쪽중에서(안석주,필명안석영이쓴컬럼중에서)

조선영화최초의발성영화인<춘향전>은1935년10월4일에개봉되었다.이후로는조선영화를상영할때더이상변사가필요없었지만,서구의발성영화에서는사정이달랐다.앞에서지적한것처럼자막만으로는영화내용을이해하기힘들었기때문에,외국영화의경우에는발성영화를상영할때에도변사가필수적인존재였다.그러나갈수록발성영화와변사가서서히충돌하기시작했는데,일례로중문학자정래동은한잡지에기고한글에서발성영화에서변사가해설하는방식이가져오는불편함을호소하고있다.영어로된발성영화에변사의조선말해설이덧붙여지다보니,소리의상쇄작용으로인해상영관이‘듣기싫은잡음’의공간이되어버렸다.

131쪽중에서

카프비평가윤기정은이영화<벤허>의부정적인측면을주로이데올로기적측면에서비판하고있다.그는이영화를통해관객이‘고대유대민족의생활상’과영화가의도한측면을거꾸로뒤집어벤허를‘전향’하게한기독교라는‘종교의해독성’을알수있다고설명했다.그러면서이영화가관객들에게공감을줄수없을것이라고이야기하는데,이는억압자와타협하라고선동하는듯한이야기구성때문일것이다.

윤기정은또다른글을통해이영화를‘반동영화의전형적표본’이라고규정하고,이영화가예상치못하게재상영까지이어지는상황에대해다음과같이비판한다.

한개의영화가재상영은말고삼사회거듭상영을한다고하더라도기적이될것이없겠지마는,이영화가신흥중국광동에가서하루의공개도못하고도로쫓겨온것인데,조선에와서는재상영까지된다는것이기적이아니고무엇일까?이와같은기현상이절대로기적은아니다.다만민중운동이그러한분순한영화를추방,항거,상영금지등에까지미치지못한것이다.176-177쪽중에서

1920년대후반할리우드의화제작을놓고국내배급업자들이종종쟁탈전을벌였다는사실이이를반증한다.이는흥행업자로서부득이한선택이라고할수있는데,이런경쟁의여파로고비용을투자한영화나정평이난감독의작품은매우비싼가격에거래되었다.<날개>는그때기준으로따지면고예산영화로서항공전장면이화제가된영화였다.이때문에입장료도매우높게책정되었던듯하다.

배급및흥행과정상의과도한쟁탈전과이로인한수입및흥행단가의상승은결코바람직한현상이아니다.왜냐하면그과정에서피해를보는쪽은관객이기때문이다.206쪽중에서

그리고제작사를소개한후‘一千萬弗大雄篇’이라고해서이영화의제작비가1천만달러임을알리고있다.이처럼제작비를내세워영화를홍보하는것은외국영화흥행업자들이종종사용하던방식이었다.식민지조선에서무성영화의편당제작비가5천원정도였다는점을고려하면천만달러라는금액은관객의상상을뛰어넘는수치임에분명했으므로,이문구를광고에삽입함으로써독자의관심을불러일으키려했던것이다.지금까지도제작비를홍보의한수단으로활용하는우리영화업계의관행을생각하면,이런관행이고예산할리우드영화가시작된1920년대에이미국내에정착되었다는점은다소흥미로운사실이다.208쪽중에서

세계영화의심장부할리우드를아는것은곧영화를아는것이었다.그리하여식민지조선의청년들은할리우드와관련된가십을챙기거나배우의생활을탐문하는것을자랑으로여겼다.그들은자신의정보와지식을자랑하는데서나아가,영화에서본것을일상생활에서실천하는문화주체로서의지위를확보해나갔다.영화속의사랑이나로맨스를현실의연애나결혼의모델로삼아실천하기도하였다.그리고상품을구매할때흥행영화에서보여준배우들의스타일을따르기도하였다.239쪽중에서

소개한책내용중에는요즘이야기인지,당시이야기인지구분이안되는내용이많다.외형적으로는비교할수없는변화가있는것이분명하지만내용적으로는크게변하지않았다는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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